솔직함은 왜 밤이 되면 무거워질까

말해버린 뒤에야 찾아오는 생각들에 대하여

by 서대희

밤이 되면 항상 무섭다.


낮에는 맞는 말이었는데
밤이 되면 갑자기 무거워지는 말들이 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밤이 되면 그 말이 도착했을 얼굴을 혼자 계속 떠올리게 된다.

낮에는 분명 괜찮았던 말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밤이 되면
그 말이 누군가에게 도착했을 장면을 혼자 계속 상상하게 된다.

그 사람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잠깐 멈췄을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을까.

혹은 내가 보지 못한 표정이
그 말 뒤에 잠깐 스쳐 지나갔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마 인간뿐일 것이다.

동물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그냥 간다.
생각한 방향과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지 않다.
말해 두고 다른 길로 가는 일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말로는 한 방향을 정해 놓고
행동은 종종 그 말을 배신한다.

그래서 인간은 가장 정직할 수 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거짓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 문장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기준 같았다.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작은 신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해지는 대신
있는 그대로 말하는 쪽을 택했다.

그게 정직이라고 믿었다.


예전의 나는 말을 조금 직선적으로 하는 편이었다.

현장에서 누군가가 일을 대충 하면
그냥 대충 넘어가지 못했다.

“이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현장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말을 돌려서 할 여유가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면 문제는 빨리 정리되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낮에는 그랬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 말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 사람은 그 말을 어떻게 들었을까.

그 사람에게는 그 말이 조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상처였을까.

이상하게도 밤에는
말의 내용보다 말의 방식이 더 크게 떠오른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기보다
“꼭 그런 방식이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조용히 올라온다.

KakaoTalk_20260314_190311588.jpg 아버지 뻘 되는 작업자 분들에게 가끔 쓴소리를 하고 나면 집에 가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KakaoTalk_20260314_190533756.jpg 좋은 말 보다 쓴소리가 먼저 나오는 현장에선 항상 나는 달가운 존재는 아니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술자리에서였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너 요즘 좀 힘들어 보인다.”

그 말은 걱정이었고
나름대로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말이 그 사람에게 걱정으로 들렸을까.

아니면 그 사람이 애써 숨기고 있던 걸 내가 괜히 건드린 건 아니었을까.

사람은 참 이상하다.

낮에는 말의 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밤이 되면 말이 남긴 여운이 더 중요해진다.

후회를 한다는 건 어쩌면 예전의 나와 조금 달라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말의 진실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틀린 말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이 남길 여운까지 생각하게 된다.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사람은 종종 내용보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요즘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기보다
솔직함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전히 솔직하고 싶다.

다만 이제는 말이 끝난 뒤의 밤까지도 함께 감당할 수 있는 말이었으면 한다.

낮에도 괜찮고 밤에도 괜찮은 말.

지금의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종종 밤에 누워 낮에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조금씩 배워 가는 것일 테니까.

낮에도 괜찮고 밤에도 괜찮은 말.

그런 말을 조금씩 배워가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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