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지나니 이제 집쟁이가 되어간다
요즘 건축주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소장님, 이제 진짜 집쟁이가 되어가시네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난다.
처음부터 집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건축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숫자로 보면 제법 오래된 시간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일을 내가 선택했다고 말하기는 조금 애매하다.
처음에는 그저 직업이었다.
어쩌다 보니 건축 현장에 들어왔고
그 이후로는 이 일을 하는 이상 좋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대부분의 현장은 목구조였다.
기둥이 세워지고
보가 올라가고
벽이 만들어지고
지붕이 덮인다.
아무것도 없던 땅 위에 집의 형태가 조금씩 드러난다.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자리.
현장소장이 늘 서 있는 자리다.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늘 비슷했다.
공정이 잘 돌아가는지, 일정이 밀리지는 않는지,
마감이 깔끔한지.
현장은 감정보다 공정표가 먼저였고 이야기보다 일정이 앞섰다.
그래서 집은 건축물이었고 현장은 프로젝트였다.
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건축 일을 시작하고 비교적 초기에 집을 지어드렸던 건축주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집을 지은 지는 벌써 6년이 지나 있었다.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분이었다.
집 근처를 지나가면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는 연락을 종종 받았다.
잠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근황을 나누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일.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을 조금 의례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영업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쯤으로 여겼던 때도 있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들렀다 가는 커피 한 잔.
그게 그 관계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생각이 조금 부끄럽다.
그분은 대학교 법대 교수님이었다.
오랫동안 법학을 가르쳤고
은퇴 후에는 집에서 천천히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 겨울 집에 수리할 부분이 있다며 연락을 받고 그 집을 다시 찾았다.
예전에 봤던 모습보다 교수님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거동도 힘들어 보였고 말수도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혈액암이라고 했다.
겨울이 오기 전 집을 조금 손보고 싶다고 했다.
차에서 장비를 꺼내자 조용하던 집에 공사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망치와 공구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그 순간 괜히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거실 한편에는 교수님이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원고가 펼쳐져 있었고
천천히 종이를 넘기며 글을 쓰고 있었다.
망치 소리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같은 공간에서 섞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두 가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집을 고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정리되고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집이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네요, 소장님.”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집을 나서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이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다.
그때는 그냥 인사처럼 들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아마 마지막으로 집에서 느끼고 싶었던 온기였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사모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수님 상태가 안 좋아져 새벽에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이야기였다.
그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조용히 공사를 마무리했다.
망치 소리가 빈 집 안에 울렸다.
집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의 시간은 어딘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은 변하지 않았는데 집 안의 이야기는 조용히 끝나가고 있었다.
일주일쯤 뒤
사모님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교수님 상태가 조금 좋아져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작게 들려오는 교수님의 목소리.
“다음에 여유 있을 때 놀러 오세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1월.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장은 조문객으로 붐볐다.
그 공간에 서서야 이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빈소에 들어갔을 때 사모님은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옆에 있던 아들분은 나와 비슷한 또래쯤 되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에 침착하게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우는 모습이 조금 놀란 듯했다.
그리고 사모님은 나를 안으며 말했다.
“이제 그 집에 저 혼자 사는데… 어떡하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쪽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집을 지어준 현장소장이었을 뿐인데
그 집은 그분들의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날 집에 돌아와 사모님이 건네주신 책을 읽었다.
교수님이 마지막까지 집필하던 그 회고록.
책장을 넘기다 보니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오며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가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법을 가르치던 교수로서의 시간,
그리고 한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조용히 그 책 안에 담겨 있었다.
그날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집을 짓는다는 건 과연 어떤 일일까.
누군가에게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조금 늦게 찾아왔다.
집을 짓는다는 건 단순한 시공이나 거래가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마음이 천천히 머물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그날 이후 집을 지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집에는 어떤 시간이 쌓이게 될까.
어떤 사람이 어떤 계절을 지나
어떤 이야기를 남기게 될까.
아마 집쟁이가 되어간다는 건
집을 잘 짓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집 안에 쌓일
시간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