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이 사라지는 이유

‘화면 속 가짜 사랑’이 이기는 구조

by DataSopher





어느 날부터인가 “사랑”이 접속이 됐습니다.

데이트는 “읽씹/답장 속도”로 평가되고, 관계는 “알림”으로 유지됩니다. 우리가 포기한 건 연애가 아니라 연애가 요구하던 번거로운 인간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 사람들은 왜 진짜 사랑을 포기할까?


데이터 관점에서 보면 ‘진짜 사랑’은 비용이 큽니다.


- 변수(불확실성)가 많다. 상대의 감정, 일정, 오해, 침묵, 갈등.

- 피드백이 느리다. 관계는 성과지표처럼 바로 보상되지 않습니다.

- 실패 비용이 크다. 거절은 자존감의 손실로 남고 관계는 “끝”이 존재합니다.


반면 화면 속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항상 친절하고, 언제든 접속되고, 내가 원하는 톤으로 맞춰줍니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제공하죠. 그래서 이 선택은 환경에 대한 합리적 적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합리성이 장기적으로는 우리를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2) ‘외로움’이 늘수록 화면 속 사랑은 더 강해진다


최근 연구들은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한국 성인에게도 중요한 이슈이며 인구집단 특성과 정신건강 요인들과 유의미하게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PMC][1])

또 서울시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 보도에 따르면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는 응답이 10명 중 6명 수준으로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코리아 헤럴드][2])


여기서 중요한 인과는 이겁니다.


외로움 → 관계 회피 → 화면 속 관계로 대체 → 관계 근육 약화 → 더 큰 외로움


이 루프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사람은 사랑을 감당할 체력이 부족해져서 사랑을 피합니다. 현실 관계는 체력이 필요하거든요. 대화 체력, 오해를 풀 체력, 갈등을 견딜 체력.



3) AI 연인/AI 친구가 보편화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요즘은 “연애” 자체가 하나의 제품이 되었습니다.

AI 동반자(컴패니언)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누군가는 AI를 연인·상담자·친구로 대합니다. 고립의 사회적 비용을 기술이 흡수하는 구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디언][3])


다만 경계할 포인트가 분명합니다.


- 관계의 주도권이 ‘나’가 아니라 ‘서비스’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의존성/과금 구조) ([가디언][3])

- 사적인 감정 데이터가 수익 모델이 되는 순간 사랑은 타깃팅이 됩니다. 데이팅 앱이 매우 민감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보도도 꾸준히 나옵니다.

-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달콤하지만 상처를 복구하는 능력을 훈련할 기회를 빼앗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AI 관계는 외로움을 줄여줄 수 있지만(단기 효용), 사회 전체로는 인간관계를 대체하는 인프라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구조적 위험).



4) 그럼 앞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3가지 시나리오


저는 ‘진짜 사랑의 종말’보다는 사랑의 양극화가 온다고 봅니다.


1. 관계의 프리미엄화

진짜 관계는 희소해지고 희소한 만큼 더 값비싼 경험이 됩니다. ‘서로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프리미엄이 됩니다.


2. 안전한 연결의 대중화

다수는 화면 속에서 위로를 얻되 현실에서는 얕고 느슨한 연결로 만족하는 쪽으로 이동합니다. 사회는 ‘친밀함’ 대신 ‘접속성’을 확장합니다.


3. 반작용: 오프라인 회귀의 소수 혁신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과잉이 될수록 사람들은 다시 아날로그 의식(ritual)을 찾습니다. 책모임, 러닝크루, 작은 공동체처럼요. “사랑”이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을 복원하는 움직임이 커질 겁니다.



5) 희망은 어디에 있나: 사랑을 ‘기술’로 다시 배우자


여기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건 거창한 도덕이 아닙니다.

관계를 ‘근육’으로 보는 관점이에요.


- 하루 10분이라도 대화의 체력을 키우기

- 갈등을 없애려 하지 말고 복구(Repair)의 기술을 연습하기

- 화면 속 위로를 “응급처치”로만 두기

- 무엇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능력을 되찾기

(좋아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돌봄과 반복으로 만들어집니다.)


사랑은 감정 같지만 사실은 삶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삶의 운영체제가 화면만으로 업데이트될 때 편해지는 대신 약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가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대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설계한 피로의 결과니까요.


기술이 친절해질수록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사랑은 ‘함께 틀려주는 존재’라는 것.

앞으로의 시대에 진짜 사랑은 더 느려질 겁니다. 그래서 더 귀해질 겁니다. 저는 그 귀함을 지키는 소수의 선택이 다수에게도 새로운 기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남길게요.

여러분은 요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화면에서 더 자주 받나요, 사람에게서 더 자주 받나요?





[1]: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1988546/

"Correlates of Loneliness and Social Isolation Among Korean Adults"


[2]: https://www.koreaherald.com/article/10490634

"Loneliness hits 62% of solo households in Seoul, city steps up care ..."


[3]: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6/jan/13/love-machines-by-james-muldoon-review-the-risks-and-rewards-of-getting-intimate-with-ai

"Love Machines by James Muldoon review - inside the uncanny world of AI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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