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아직도 폭력을 통쾌함으로 소비하는가
먼저 기준부터 분명히 하겠습니다.
한국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타인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관련 예방·대응 매뉴얼을 별도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즉, 갑질은 “성공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감정 배출”이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막아야 할 권한 남용입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공개 데이터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을 연도별로 제공하고 있고, 2024년 기준 신고 건수는 2020년 대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여러 법률·노동 전문 매체가 인용하고 있습니다.
2025년 말 공개된 조사에서도 최근 1년 사이 직장인 33%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발표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을 계급 상승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가난했을 때 참았던 모욕, 무시당했던 기억, 낮은 자리에서 삼켜야 했던 분노를 돈과 지위로 되갚으려 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존재를 복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갑질은 성공의 대가가 아닙니다.
갑질은 저급한 행동입니다.
이 문장은 인간을 보는 기준의 문제입니다.
진짜 성공은 선택지가 많아졌을 때 드러납니다. 내가 누군가를 짓누를 수 있을 때도 그러지 않는 것, 내가 쉽게 모욕할 수 있을 때도 언어를 절제하는 것, 내가 상대의 생계와 평판을 흔들 수 있는 위치에서도 선을 넘지 않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의 수준이 보입니다.
권력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춰져 있던 사람의 본색을 확대합니다.
돈이 없을 때는 갑질을 못 합니다.
지위가 낮을 때는 함부로 소리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원이 생기고 권한이 생기고, 타인이 나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위치에 오르면 그 사람 안에 있던 미성숙이 행동으로 번역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성공해서 변했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공해서 변한 것이 아니라 감춰져 있던 저급함이 실행 가능해진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런 장면을 자꾸 소비합니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누군가가 돈과 권력을 손에 쥔 뒤 상대를 짓누르면 어떤 작품들은 그것을 통쾌한 복수처럼 연출합니다. 한때 당했던 사람이 나중에 더 세게 되갚는 장면, 상대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장면, “이제 누가 위인지 알겠지?”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
이런 연출은 자주 박수를 받습니다.
저는 이런 서사가 대단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폭력의 주체만 바꾼 뒤 폭력 자체는 정당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억압받던 사람이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억압이 정의가 되지는 않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치유를 본 것이 아니라 전염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창작물은 이 전염을 성장으로 포장합니다. 그건 통찰이 아니라 게으름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인간과 권력을 너무 얕게 이해한 결과물입니다.
좋은 작품은 분노를 자극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분노가 어떤 구조에서 발생했고, 왜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닮아가고 싶지 않던 얼굴로 변하는지, 그 반복을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까지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수준 낮은 창작물은 여기까지 가지 않습니다.
대신 쉬운 버튼을 누릅니다.
“당한 만큼 돌려줘.”
“이제 네가 당해봐.”
“성공했으니 복수해도 된다.”
이건 정의가 아닙니다.
이건 구경거리입니다.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갑질하는 개인만이 아닙니다.
갑질을 멋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집단적 감각의 타락입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회는 결국 누가 더 강한가만 계산하는 사회가 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실력보다 줄이 중요해지고, 존중보다 서열이 중요해지며, 품격보다 조롱이 더 빠르게 퍼집니다. 그 끝에서 모두가 서로를 잠재적 도구로 대하게 됩니다.
성공은 사람 위에 서는 능력이 아닙니다.
성공은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하는 능력입니다.
돈을 많이 벌수록 더 신중해져야 하고 더 높은 자리에 갈수록 더 조용해져야 하며 더 큰 영향력을 가질수록 더 인간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힘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품격이고, 그것이 문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갑질은 센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내면이 약한 사람이 외부 권력을 빌려 자신의 결핍을 과장하는 행동에 가깝습니다.
정말 강한 사람은 굳이 사람을 작게 만들지 않습니다.
정말 큰 사람은 타인을 벌벌 떨게 만들지 않습니다.
정말 성공한 사람은 복수로 자신의 서사를 완성하지 않습니다.
성공 이후에 사람을 더 함부로 대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낮아진 것입니다.
통쾌해해야 할 장면은 누군가를 짓밟는 장면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힘을 가졌음에도 끝내 선을 넘지 않는 장면입니다.
모욕할 수 있는데도 존중하는 장면입니다.
되갚을 수 있는데도 반복을 멈추는 장면입니다.
저는 그런 장면이 더 많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덜 야만적이 됩니다.
그래야 성공의 정의도 바뀝니다.
갑질은 성공의 대가가 아닙니다.
갑질은 그냥 저급한 행동입니다.
이제는 정말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더 좋아지려면 “성공한 가해자”를 멋있게 소비하는 문화부터 버려야 합니다.
성공의 미학은 지배가 아니라 절제에 있습니다.
사람을 눌러서 시원한 이야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존중하면서도 강한 이야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는 쉬운 서사보다 수준 높은 서사를 더 많이 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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