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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산업의 빛과 그림자. 누구를 위한 촬영인가?

by DataSopher


"돈은 연예인이 벌고, 고통은 시민이 감당한다"

이 문장이 최근 한국 드라마·영화 촬영 현장을 가장 정확히 요약하는 현실이 아닐까.



■ 납골당에서 울지 못한 유가족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공분을 샀다.


유가족이 조용히 조문 중이던 납골당에서 드라마 촬영 중이라며 스태프가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웃음소리가 터졌던 것도, 고성이 오갔던 것도 아니었다.

오직 ‘존재’만으로 방해가 된 것이다.


이 일화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연예산업 중심주의, 시스템 부재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다.

한쪽은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컷!"과 "NG"를 외치며 상품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과연 어떤 현실이 더 '비현실'적인가?



■ 공공장소에서 시민은 '배경'일 뿐인가?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장의 일반 관람을 막았다.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병원 응급환자 진입을 통제해 비판을 받았다.

공통점은 '촬영 중'이라는 말 한 마디면 법보다 위에 서는 듯한 기이한 권력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민은 '배경'이 아니다.

그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주체이고, 납골당의 유가족은 소중한 이와 마지막 작별 중이었다.

그 순간에 필요한 건 예술이 아니라 존엄이었다.



■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구조적 분석


1. 촬영 스태프의 불안정한 지위

다수의 스태프는 프리랜서이고, 일용직에 가깝다.

이들은 공공성보다 현장 통제력으로 평가받는다.

위에서 “시간 맞춰 찍으라”는 압박이 오면, '무례한 요청'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 된다.


2. 촬영 허가 절차의 불투명

공공장소의 촬영 허가는 지자체나 기관에서 일시적으로 허가하지만, ‘통제 권한’은 모호하게 떠넘겨진다.

시민은 어디에도 ‘이의 제기’할 수 없다.

결국, 가장 약한 시민의 목소리가 묻힌다.


3. 유명세를 앞세운 제작사의 갑질

"누구 드라마인지 알아요?"라는 말 한 마디는 그 자체가 위계다.

이름값이 방패가 된다.

연예인의 브랜드가 공간과 사람을 잠식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할까?


① 공공장소 촬영 가이드라인 제정: 시민의 통행·소음권을 침해하는 모든 촬영은 시간대·공간·행동 범위를 명시하고 시민 의견 수렴을 전제로 해야 한다.


② 스태프 노동권 보장 및 교육 강화: ‘현장 통제’가 시민 무시가 아니라, ‘조율과 배려’임을 인식하게 만드는 제작사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


③ “촬영 중입니다” 대신 “시민과 함께합니다”: 공공영역에서의 촬영은 협조가 아니라 참여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거기에는 연예인이나 감독보다 시민의 일상이 우선이라는 가치가 녹아 있어야 한다.




■ 사유하는 데이터의 시선 ‘비용’은 어디로 귀속되는가?


이 모든 과정의 결과로 생기는 수익은 누구에게 가는가?


대부분의 돈은 플랫폼, 연예인, 소수의 스타 PD에게 간다.


그 비용(시간의 침해, 감정의 소모, 시민의 배려)은 익명의 시민들, 불안정 노동자들, 현장 스태프에게 전가된다.


이건 거대한 외주 구조다.

수익은 집중되고, 고통은 분산된다.




■ 끝으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한 문장


촬영은 공공의 예술이어야지 사적인 통제가 되어선 안 된다.


"이 장면은 반드시 필요해요"라는 말보다,

"이 사람들의 하루도 소중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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