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의 오래된 시스템 버그
“과로는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산업의 설계 문제다.”
프롤로그 — 왜 ‘이번만’의 일이 아닌가
2025년 10–11월,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유족은 주당 80시간 내외의 장시간 노동을 주장했고, 회사의 초기 대응은 사회적 신뢰를 더 흔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곧장 불매·분노의 감정으로 번졌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이것이 제빵업만의 문제도, 특정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산업 전반에 배어 있는 “장시간·저자율·저신뢰”의 운영 설계가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죠. ([한겨레][1])
1) 반복되는 3단 고리: 시간·감시·대체가능성
시간의 압축: 생산성을 “인력 × 시간”의 곱으로 오해합니다. 주 60·70·80시간이 ‘성실함’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장시간은 짧게 매출을 밀어 올리지만, 사람과 브랜드의 내구성을 무너뜨립니다. (과로·심신 소진 → 숙련의 붕괴 → 이직·교육비 증가 → 품질 저하 → CS 비용 증가 → 다시 장시간으로 메우는 악순환) ([노동오늘][2])
과잉 감시와 보정: CCTV·메신저 로그·계약 쪼개기 등으로 ‘사고’를 예방하려 합니다. 하지만 감시는 통제의 비용을 키우고, 자발성·장인성을 말립니다. 결국 감시가 성과를 만든 게 아니라, ‘권한 위임과 표준화’가 성과를 만든다는 깨달음에 뒤늦게 도달합니다. ([뉴닉][3])
대체가능성의 환상: “안 되면 다른 사람 뽑으면 되지.” 문제는 서비스업·제조업 모두 숙련은 천천히 자라고, 신뢰는 한 번에 무너진다는 겁니다. 이번 사태에서 부적절한 커뮤니케이션과 책임 회피가 브랜드 자본을 급격히 잠식했습니다. ([한국경제][4])
2) 산업 전체의 구조 신호: 왜 ‘한국적’으로 터지는가
낙수식 오너십: 결정과 책임이 위로만 몰린 구조. 현장 권한이 없으니, ‘현장 표준’이 문서로만 존재합니다.
속도 중심의 성장 KPI: 매장 확대·판매량·오더 처리 속도… “몇 개 더”가 ‘어떻게 더 잘’을 압도합니다.
외부 투자·M&A와 거버넌스 전환기: 소유구조 변화는 시스템 개편의 기회이자 리스크입니다. 브랜드는 금융 자산이지만, 브랜드 자본은 노동 환경에서 복리로 쌓인다는 사실을 놓치면, 인수 직후 브랜드 리스크가 폭발합니다. (런베뮤의 지분 변동 보도 참고) ([한겨레][5])
3) 해법: “사람을 갈아넣지 않는 성장”을 수치로 설계하라
(1) 시간 대신 ‘가치 흐름’
KPI를 “시간투입”에서 “LPH(근로자 1시간당 가치)”로 전환하세요. 매장·라인·팀 단위로 LPH 추이를 주별 공개.
스태프 로테이션 도표(고강도·중강도·저강도 작업 믹스)로 회복 시간을 설계합니다.
(2) 감시 대신 ‘가시성’
CCTV는 통제보다 문제 예방의 러닝 데이터로 써야 합니다. 관찰→개선 회고를 모두가 보게 만드는 워크로그 공개 대시보드가 핵심. (불량률·폐기율·대기시간·컴플레인 유형을 익명화해 전 직원 공유)
(3) 권한 없는 책임 금지
“결정권 없는 책임 금지” 원칙을 취업규칙에 명시. 교대 파트장은 교대표·우선순위·휴식 승인에 실질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4) 임금·스케줄 투명화
시급/연장/야간/휴일 가산을 화면 하나로 일 단위 정산 미리보기. “나의 이번 주 예상 실수령”이 실시간으로 보이게. (노사 모두 분쟁 비용 급감)
(5) M&A/투자 후 90일 어젠다
Day 1: 노동·안전 리스크 딥다이브(익명 설문·면담·근무표 로그).
Day 30: 표준작업·휴식규칙 개편(파일럿 지점 1→N 확장).
Day 60: 보상·커리어 매핑(숙련 단계별 페이밴드·교육시간 유급화).
Day 90: 브랜드 자본 점검(불매·컴플레인 트렌드, 추천지수 NPS, 이직률).
4) 경영진을 위한 체크리스트(바로 쓰는 10문항)
1. 주 52시간 준수 실측 로그가 있는가?
2. 교대별 휴식 슬롯이 시스템에 강제 반영되는가?
3. “오늘의 실패 학습”을 공유하는 오픈 회고가 주 1회 있는가?
4. CCTV·로그의 활용 목적이 “징계”가 아니라 프로세스 개선으로 계약에 박혀 있는가?
5. 부점장 이상에게 스케줄 결정권이 있는가?
6. 산재·과로 리스크를 이사회 리스크 레지스터에 올렸는가?
7. 인수 후 90일 계획에 노동환경 KPI가 있는가?
8. 온라인 평판(NPS·불매 언급량)과 직원 만족도를 같이 보나?
9. 승진 요건에 “사람을 소진시키지 않고 성과낸 사례”가 포함되어 있나?
10. 현장의 ‘나침반’을 만드는 데이터 공개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가?
한국 산업은 속도의 문명에서 품질과 존엄의 문명으로 전환 중입니다. 좋은 일터는 윤리의 문제를 넘어 가장 강력한 경쟁우위입니다. 우리 팀은 “사유하는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장기주의 관점에서 사람을 소모하지 않는 성장 설계도를 계속 제안하겠습니다. 이번 글이 그 첫 장입니다.
댓글 질문: 여러분이 몸담았던/몸담고 있는 업에서 “사람을 덜 쓰고 더 잘하는 법”은 무엇이었나요? 현장 사례를 댓글로 나눠 주세요. 다음 편에서 독자 사례를 데이터로 시각화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읽을 거리
최근 보도·정리 기사: 한겨레·매일노동뉴스·뉴닉·한국경제의 기사에서 사건 경과·근무 실태·대응 논란·불매 확산 흐름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날짜 표시는 KST 기준입니다. ([한겨레][1])
[1]: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225837.html?utm_source=chatgpt.com "“'런베뮤'서 일주일 80시간 노동”…20대 직원, 숙소서 숨진 채 ..."
[2]: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869&utm_source=chatgpt.com "런베뮤 과로사 의혹] '주 80시간 초장근로' 스물여섯 청년 숨지다"
[3]: https://newneek.co/%40newneek/article/36554?utm_source=chatgpt.com "런던베이글뮤지엄, 계약 쪼개기에 CCTV 감시는 일상이었다고? 끊이지 않는 제빵업계 노동 착취 문제"
[4]: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10286651?utm_source=chatgpt.com "거만한 대응으로 위기 자초한 '런던베이글뮤지엄'"
[5]: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226696.html?utm_source=chatgpt.com "[단독] 런베뮤 직원 “사람 아닌 매장 빛내줄 오브제였다”"
[6]: https://news.nate.com/view/20251029n25629?utm_source=chatgpt.com "[종합] 런베뮤 '과로사 논란' 폭발…\"청년 죽음 외면\" 불매 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