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 재미있는 동화도 읽고 맞춤법고 익히고]
수진이네 학교에서는 해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학예회를 열곤 합니다.
수진이는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저학년 대표로 독창 부문에 뽑혀 벌써 며칠 전부터 한창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학예회에 뽑혀 한창 신바람이 나야 할 수진이의 표정이 학예회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수진이가 이렇게 걱정을 하게 된 것은 혹시 학예회 때 엄마가 학교에 오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수진이 엄마는 누가 보기에도 어색해 보일 정도로 몸을 심하게 뒤뚱거리며 걸음을 걷습니다.
얼마 전의 어느 날. 궁금함을 참다 못한 수진이가 엄마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다리가 불편하게 된 거야?”
“......”
수진이의 물음에 엄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엄마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잠시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때문에 그동안 우리 수진이가 친구들 앞에서 많이 창피했던 모양이구나? 엄마가 이런 꼴로 다니니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
엄마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에 걸렸었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아마비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지금도 다리를 절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좀 친구들한테 부끄럽고 창피해도 참고 이해해 달라며 몹시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수진이는 그 뒤로도 엄마와 같이 다니는 것이 왠지 부끄럽고 싫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될 수 있으면 엄마와 같이 다니는 것을 되도록이면 피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 여름날, 학교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창하고 멀쩡했던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요란한 천둥과 번개를 앞세우고 소나기를 주룩주룩 퍼붓고 있었습니다. 소나기는 좀처럼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학교 공부가 끝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점점 더 거세게 장대비가 되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교문에는 우산을 챙겨 들고 마중을 온 엄마들의 모습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교문 앞은 금세 마중을 나온 엄마들과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뜻밖에도 수진이 엄마가 교문 앞에 나타난 것이 수진이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 갈 걱정을 하던 중이이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앗! 우리 엄마다!”
엄마는 한쪽 손에 우산을 든 채 다리를 오늘따라 유난히 더 절룩거리며 교실 쪽을 향해 급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엄마였습니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수진이는 마치 용수철이 튕겨진 듯 엄마를 향해 교실 밖으로 급히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엄마 덕분에 비를 맞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날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제 엄마를 처음 본 아이들이 왜 다리를 절고 다니느냐고 자꾸 귀찮게 묻는 바람에 그렇게 창피하고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수진이는 그때부터 더욱 엄마와 같이 다니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엄마의 모습을 두 번 다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손꼽아 기다리던 학예회 날이 돌아왔습니다.
학교 강당에는 초대를 받고 모여든 귀한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들은 물론 학생들로 발을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이윽고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이 끝나고 학예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예회 때는 으레 랬듯 맨 처음 순서로는 저학년들의 무용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멋진 합주가 이어졌습니다. 강당 안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프로그램 순서가 끝날 때마다 환호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번에는 마침내 수진이의 독창 순서가 되었습니다.
마치 천사의 모습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원피스 차림의 수진이가 무대 위에 나타나자 또다시 환호성과 함께 요란한 박수 소리가 강당 안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수진이는 그동안 열심히 배우고 익힌 ‘어머니 은혜’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어짜나 고운지 관중들의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목소리가 그렇게 청아하고 고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수진이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마치 천사의 음성처럼 맑고 고우면서도 옥을 굴리는 것 같은 수진이의 노랫소리는 계속 울려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아 ♪”
피아노 반주에 맞춰 1절이 끝나고, 막 2절을 부르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때 문득 관중석 맨 뒷자리에 앉아서 몹시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수진이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아~!”
지금까지 독창을 하고 있던 수진이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다 말고 급히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연신 엄마를 크게 부르며 정신없이 엄마가 앉아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엄마, 그동안 내가 엄마한테 너무 잘못했어. 흐흐흑…….”
수진이는 와락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아니 얘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이게 무슨 짓이니? 그리고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 야단이니?”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는 엄마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진이의 등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강당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일제히 수진이에게 쏠리며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것은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노래들 부르던 아이가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글쎄, 그걸 누가 알아요. 보다보다 별일을 다 보겠다니까요.”
그러나 지금 수진이의 귀에는 관중들이 그렇게 떠드는 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엄마의 품에 안긴 채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수진이의 태도가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바로 어젯밤의 일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늦은 밤, 물을 마시기 위해 잠깐 부엌으로 나온 수진이는 그때 우연히 안방에서 아빠와 엄마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여보, 내일이 학예회인데 내 대신 당신이 좀 가 줄 수 있어요?“
"회사까지 빠져 가면서 나보고 학교에 가라니? 그건 왜?"
"그걸 몰라서 그래요? 우리 수진이가 친구들 앞에서는 나하고 같이 있는 거 몹시 싫어하는 거 당신도 잘 알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당신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수진이한테 비밀로 지낼 생각이오?"
수진이는 두 귀를 곤두세우고 아빠와 엄마가 주고 받는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아아!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보니 지금 엄마가 다리를 절고 있는 것은 소아마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수진이가 더 어렸을 때, 엄마는 수진이와 같이 외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지금 막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는 수진이를 향해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엄마는 수진이를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는 깜짝할 사이에 오토바이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큰 사고가 일어나지 직전에 수진이를 무사히 구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엄마는 수진이 대신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난 지금까지 그런 줄을 까맣게 모르고…….’
수진이는 여전히 엄마 품에 안긴 채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이제는 엄마가 조금도 부끄럽거나 창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그 어느 엄마보다도 훌륭하고 자랑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강당 밖에서는 어느덧 햇솜처럼 새하얗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평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 * )
* 우뢰(雨雷) 비가 오고 천둥이 친다는 말로 1988년 한글맞출법이 개정되기 이전까지 표준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우레를 표준어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우레’는 ‘하늘이 운다’라는 순우리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