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밤이 가고 아침 해님이 동쪽 산 위로 슬그머니 이마를 내밀었습니다. 그 바람에 캄캄하게 어둠에 갇혔던 들판이 금세 불을 밝힌 듯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밝았습니다.
새 아침이 밝아지기가 무섭게 들판에 있는 꽃밭이 다시 수런거림으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유, 눈이 부셔서 못 살겠네!“
맨 먼저 잠에서 깬 애기똥풀이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애기똥풀의 소리에 잠이 깬 금계국도 덩달아 따라서 한 마디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어휴, 너무 눈이 부셔서 정말 눈을 못 뜨겠는걸!“
애기똥풀과 금계국이 떠드는 바람에 이번에는 곱게 화장을 한 민들레도 끼어들었습니다.
”우와아, 정말이지 눈이 부셔서 못 살겠다!“
꽃들이 저마다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자 이번에는 소루쟁이가 제법 점잖은 목소리로 끼어들었습니다. 언제나 아니꼬울 정도로 잘난 체를 잘하는 소루쟁이였습니다.
”얘들아! 시끄럽다. 그만 좀 떠들어라. 만일 해님이 없다면 너희들이 이렇게 잘 자랄 수 있는 줄 아니? 뭘 좀 알기나 하고 떠들어야지! 헛허음…….“
”…….“
”…….“
소루쟁이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모두가 입을 꼭 다문 채 잠잠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냥 입만 다문 게 아닙니다. 하나같이 입을 실룩이며 못마땅한 표정들입니다. 입만 벌렸다 하면 자기 자랑만 늘어놓기에 바쁜 소루쟁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만히 보면 소루쟁이로서는 어찌 보면 자랑을 늘어놓을 만도 합니다. 소루쟁이는 다른 꽃이나 들풀에 비해 잎부터 그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두툼하면서도 진한 초록색으로 싱싱하고도 널찍하게 자라고 있는 이파리,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몰라볼 정도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소루쟁이의 키, 그런 소루쟁이의 위엄은 그 누구도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소루쟁이는 그 어느 들꽃이나 들풀 못지 않게 꿈도 컸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크게 자라서 그 누구 못지않게 크고 아름다우며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싶은 게 소루쟁이의 꿈이었습니다.
들꽃과 들풀들이 모두 입을 꼭 다문 채 조용해지자, 소루쟁이가 다시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얘들아, 아침 햇살이 너무 눈이 부셔서 귀찮기는 하지만, 만일 그런 햇빛이 없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되는지 너희들 알기나 하니?“
”…….“
”…….“
소루쟁이의 물음에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자 소루쟁이가 답답하다는 듯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왜 아무 대답이 없지? 아하! 내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해서 그런 모양이구나, 그렇지?“
”…….“
”알았어. 그럼 내가 자세히 알려주지. 우리들은 공기 중에서 섭취한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 엽록체 안에서 탄수화물을 만드는 직용을 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거란다. 즉, 다시 말해서 그런 걸 바로 어려운 말로 산소동화작용이라고 하는 거란다. 알겠니?“
”…….“
소루쟁이가 이렇게 혼자 잘난 체를 하며 떠들자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금계국이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피이, 누군 저만 못해서 가만히 있는 줄 아니? 산소동화작용이 아니라 탄소동화작용이라고 하는 거란다. 이 무식한 녀석아. 흥, 무얼 알기나 하고 떠들어야지.‘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입을 열지 않자 소루쟁이가 다시 거만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 이파리 좀 보렴. 얼마나 탐스럽고 두툼하면서도 싱싱한가를. 그러니까 난 이다음에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우면서도 큼직하고 탐스러운 꽃을 피울 거란 말이야. 알겠니?“
소루쟁이의 말에 이번에는 애기똥풀이 지겹다는 듯 입을 실룩이며 중얼거렸습니다.
’흥, 이 세상에 꿈이 없이 살아가는 꽃이 어디 있담! 그 소리가 또 그 소리……. 아마 골백 번은 들었을 거다!‘
애기똥풀에 이어 달맞이꽃도, 질경이도, 그리고 모둔 꽃과 들꽃들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삐죽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새 초여름이 되었습니다.
애기똥풀과 민들레, 그리고 금계국은 어느 새 크게 자라 곱고도 샛노랑색깔의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망초는 새하얗고 귀여운 작은 꽃망울을, 그리고 토끼풀은 마치 작은 방방이처럼 생긴 꽃을 피운 채 바람이 불 때마다 저마다 자랑스럽게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들꽃들 중에 민들레가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습니다.
”얘들아, 저 소루쟁이 좀 봐!“
”어디 어디?’
민들레의 떠드는 소리에 들꽃과 들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소루쟁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소루쟁이는 어느 틈에 크게 자라 굵은 줄기를 높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굵은 줄기에는 시뻘겋기도 하고 시꺼먼 색깔의 꽃인지 잎들이 흉측하게 더덕더덕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 저게 소루쟁이의 꽃이니?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얘.”
“그러게 말이야. 저게 꽃이니 뭐니? 왜 저렇게 무섭게 생겼지?”
꽃들 모두가 너무 무섭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루쟁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스러운 자세로 여전히 이 세상에사 가장 아름답고 예쁜 꽃을 피우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꽃들 모두가 소루쟁이를 바라보며 겁난 표정으로 한창 수런거리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벅, 저벅…….”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이쪽으로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보니 바로 외딴집에 살고 있는 아저씨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저씨의 오른쪽 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히 꼴도 베고 나무도 하러 다닐 때 쓰던 낫이었습니다.
바짝 긴장을 한 얼굴로 숨을 죽인 채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민들레가 소곤거리는 입속 말로 조용히 물었습니다.
“나무를 하거나 꼴을 베러 가려면 지게를 지고 가야 하는데 왜 낫만 들고 오는 걸까?”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그러는 사이에 이윽고 아저씨가 꽃밭 앞에 다다르더니 우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소루쟁이 앞으로 가더니 낫을 쥔 오른쪽 손에 침까지 뱉더니 힘을 주었습니다.
“허어, 이놈이 왜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키만 훌쩍 자라고 있지? 이놈 때문에 꽃밭이 엉망이란 말이야!”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을 들고 온 걸 보면 아마 벌써부터 아저씨의 눈에 거슬렸던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아저씨는 곧 크게 자란 소루쟁이들마다 따라다니며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으아악! 으아아악…….”
꽃들은 소루쟁이가 잘릴 때마다 바짝 긴장을 한 채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루쟁이도 자신의 몸이 잘려나갈 때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아저씨는 금방 베어낸 한 아름이나 되는 소루쟁이를 옆구리에 끼고 어딘가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소루쟁이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간 곳은 개울가였습니다. 아저씨는 곧 소루쟁이 더미를 개울물 위로 힘껏 던져버렸습니다.
“철버덩!‘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개울로 떨어진 소루쟁이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처럼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던 소루쟁이의 꿈은 낫에 의해 어처구니없게도 순식간에 싹둑 잘려나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소루쟁이는 그런 중에도 실망하지 않고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크고 탐스러운 꽃은 피우지 못할망정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지!“
그런데 잠시 뒤의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것은 소루쟁이가 떨어진 바로 밑 물속에서 들려오는 고기들의 목소리였습니다.
”히야아~~~ 이렇게 시원하고 좋은 그늘이 생길 줄이야!“
”시원한 거 뿐이겠니? 이제야 우린 살았다. 이 밑에 숨으면 백로나 물오리한테 들킬 염려도 없고 얼마나 좋으니?“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도 오는구나!“
붕어와 송사리, 그리고 개구리 같은 물속에서 살아가던 고기들 모두가 소루쟁이 그늘 밑으로 모여들며 좋아서 야단들이었습니다.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개울에는 물고기들은 많은데 풀이 별로 없어 백로와 황새, 그리고 물오리와 같은 짐슴들한테 지금까지 수시로 먹힘을 당해 왔던 것입니다.
소루쟁이는 그제야 기분이 몹시 좋아졌습니다. 비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더 큰 보람을 얻게 되었다는 기쁨에 마냥 마음이 들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루쟁이는 또 거기서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큰, 그리고 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선 물고기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줌은 물론 그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