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가 오랜만에 다시 꽃 가게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섰습니다. 꼭 한 달 만이었습니다. 화분마다 돌아다니며 한창 물을 주고 있던 꽃집 아주머니가 몹시 반가운 목소리로 살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어이구, 네가 온 걸 보니 벌써 또 한 달이 지났나 보구나?“
”…….“
언제나 그랬듯 민우는 오늘도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끄덕였습니다.
"이번엔 어떤 꽃을 가지고 가려고?“
”…….“
민우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예쁜 꽃이 가득한 진열대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날씨는 매서운 겨울 못지않게 춥습니다. 하지만 꽃 가게 안은 아늑하고 포근했던 엄마의 품처럼 따뜻합니다. 제법 넓고 아담한 꽃 가게 안에는 갖가지 꽃이 뿜어내는 짙고 독특한 향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이번에도 백합을 사갈 거니?”
백합꽃 앞에 서서 서성거리는 민우를 보자 꽃집 아주머니가 활짝 핀 함박꽃 같은 웃음을 보내며 물었습니다.
”…….“
“날씨가 이렇게 추울 땐 생화보다 조화가 어떻겠니? 금방 얼어 죽을 염려도 없지만, 값도 훨씬 싸고 오래가거든.”
”…….“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민우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끄덕였습니다. 아주머니는 곧 예쁜 조화 몇 송이를 골라 민우에게 내밀었습니다.
"어떻니? 생화인지 조화인지 구별하기가 어렵지? 아마 모르긴 해도 엄마도 이걸 보시면 아주 좋아하실 거야.“
”…….“
아주머니가 골라 준 조화는 민우 마음에도 쏙 들었습니다. 민우는 서둘러 꽃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 시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민우를 보자 운전사 아저씨가 반갑게 아는 체하였습니다.
"어이구, 너 오랜만이로구나. 엄마를 또 뵈러 가는 모양이구나?“
”…….“
민우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하고 빈자리를 찾아가 앉았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민우는 금방 산 조화 다발을 아주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벌써 몇 해째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달 꼬박꼬박 엄마를 찾아가서 뵙고 있다니……. 요즘 세상에 정말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효자는 없지. 아암, 없고말고…….”
운전사 아저씨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다시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에 놓인 꽃다발만 바라보고 있던 민우가 문득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조금 떨어진 통로 왼쪽에는 웬 아저씨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의 눈길이 민우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
민우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눈길을 돌렸습니다. 헙수룩하고 초라한 옷차림에 모자까지 푹 눌러쓴 아저씨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두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전혀 표정이 없는 굳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흘금흘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초리가 왠지 무섭게 느껴져 몸이 점점 더 움츠러들고 있었습니다.
"얘야! 다 왔다. 그리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고.“
그때 마침 한동안 달리던 버스가 제법 넓은 벌판 한가운데에 멈춰 서면서 운전사 아저씨가 민우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황량하고 외진 벌판이었습니다.
민우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자신도 모르게 모자를 쓴 아저씨를 다시 한번 홀금 바라보았습니다. 아저씨 역시 여전히 민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가 민우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민우는 얼른 운전사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달랑 민우 혼자뿐이었습니다.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동안 멀리 사라져 가는 버스를 바라보던 민우는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어느새 넓은 들판 길을 지나 낮은 산들이 옹기종기 정답게 이마를 맞대고 있는 산기슭에 다다랐습니다. 민우는 쉬지 않고 산기슭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솔길은 흡사 지렁이가 기어간 자국처럼 이리 꼬불 저리 꼬불 산꼭대기를 향해 뻗어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민우의 이마와 등에서 어느새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얘야, 같이 좀 가면 안 되겠니?“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민우는 그 자리에 멈춘 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허거걱!!“
순간 민우는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버스에서 만났던 바로 그 아저씨가 급히 따라오며 소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민우는 온몸이 굳어진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아까 분명히 아저씨가 버스에서 내리지 않은 걸 분명히 두 눈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민우가 넋이 나간 듯, 그리고 약간 겁먹은 얼굴로 멍하니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아저씨가 어느새 숨을 헐떡이며 민우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또 만나게 되다니 정말 반갑구나.”
“……?”
민우는 잔뜩 겁먹은 얼굴이 된 채 건성으로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모자를 쓴 아저씨의 머리는 까까머리였습니다.
“왜? 아저씨 꼴이 이 모양이어서 겁이 나니? 하지만 아저씬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안심하렴. 그건 그렇고. 아까 기사 아저씨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효자더구나!”
“……?”
아저씨는 민우를 이렇게 일단 안심시킨 다음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지금 밤골을 찾아가는 중이란다. 그 마을에서 태어났으니까 그 마을이 내 고양이지.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마을에서 줄곧 살았단다. 그런데 하도 오랜만이어서 마을로 가는 길조차 깜빡 잊고 버스에서 내리지 못한 채 한참이나 지나쳐 갔지 뭐냐. 허허허…….“
”……?“
민우는 아저씨 고향이 밤골이라는 말에 문득 반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같이 그 마을에서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러자 문득 민우의 머릿속에 엄마와 같이 살던 때가 새삼 그립게 떠올랐습니다. 비록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오직 엄마만을 의지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추억이 새삼 가슴이 시리도록 그립기만 하였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민우는 밤골에서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엄마와 단둘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언젠가는 꼭 돌아오실 거다. 보고 싶어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보렴. 아빠는 네가 태어나던 해에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고 머나먼 다른 나라로 가셨단다."
민우가 아빠의 행방을 물을 때마다 엄마는 좀 더 기다려 보라는 말로 얼버무리곤 하였습니다. 민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힘이 없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엄마의 말대로 민우는 날마다 아빠가 어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언젠가 꼭 아빠가 돌아오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슴에 품은 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엄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 움직이는 시간보다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차츰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약 5년 전, 그렇게 앓던 엄마는 결국 민우만을 남겨 놓은 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엄마를 잃은 충격 때문인지 민우는 그 뒤부터 차츰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아니 전혀 말이 없는 아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세상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전혀 없게 된 민우는 그나마 다행히 읍내에 사시는 이모님 댁에 가서 지금까지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고 있는 거니?“
이윽고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고 산등성이를 넘어 엄마가 누워서 쉬고 있는 무덤 앞에 다다르자 아저씨가 다시 물었습니다.
”…….“
민우는 여전히 아무 대꾸없이 무덤 앞으로 다가가더니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무덤 앞에는 한 달 전에 꽃은 백합꽃 세 송이가 시든 채 보기 흉한 모습으로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민우는 시든 꽃을 뽑아낸 다음 새로 사 온 조화를 정성껏 보기 좋게 꽂았습니다. 새로 꽂은 꽃의 모습은 마치 그 옛날 엄마의 웃는 얼굴처럼 밝고 아름다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민우는 무덤에 엎드리며 두 번 공손히 큰절을 올렸습니다. 민우의 두 눈에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민우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너무 춥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내가 또 왔단 말이야. 그리고 금방 돌아온다던 아빤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 나 혼자 외로워서 어떻게 살란 말이야 으흐흑…….“
한동안 조용히 무덤을 바라보고 있던 민우는 도무지 슬픔을 이길 수 없었던지 마침내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엄마 품에라도 안기듯 갑자기 넘어지듯 두 팔로 무덤을 꼬옥 얼싸안고 엎드렸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엄마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욱더 힘을 주어 껴안으며 흐느끼고 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광경을 옆에 선 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의 눈가에도 어느새 굵은 눈물이 맺혀 양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네가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보니, 아저씨의 가슴이 더욱 미어지는 것 같구나. 으흐흑…….”
아저씨는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 무덤 위에 엎드려 있는 민우를 두 팔로 와락 껴안으며 덩달아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
민우는 아저씨의 그런 갑작스런 이상한 행동이 이상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여전히 민우를 꼭 껴안은 채 그저 흐느끼고만 있었습니다.
'민우야, 아빠는 외국에 간 게 아니란다. 어쩔 수 없이 나쁜 죄를 짓고 그만……. 이 못난 아빠를 용서해 다오. 흐흐흑……….‘
아저씨는 차마 겉으로 설명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속으로 부르짖으며 더욱더 민우를 힘주어 꼭 껴안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된 채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어디선가 또다시 찬바람 몇 가닥이 몰려오더니 두 사람의 등을 번갈아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