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부터 병실 밖에서는 땅거미가 내리는가 했더니 사방이 어느새 컴컴한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선희는 아까부터 병실 출입문 쪽을 목이 빠지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선희의 모습을 옆에서 애처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엄마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눈에 띄는 것마다 엄마의 눈에는 사방이 온통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만 보입니다.
병실 천장이 그렇고,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육중한 벽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들이 입은 가운이 그렇고, 침대를 씌운 시트와 선희가 덮고 있는 이불이 그렇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유난히 새하얀 것은 오랜 세월을 몹쓸 병에 시달려 뱃짓장처럼 하얘진 선희의 피부 색깔입니다.
'아아! 하느님, 제발 우리 선희에게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엄마는 아까부터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렇게 막연히나마 계속해서 빌다 보면 언젠가는 기적이라는 게 분명히 나타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시 선희의 입에서 나온 가냘픈 목소리가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습니다.
"엄마, 오늘 저녁에는 김 박사님이 왜 이렇게 늦으셔?“
선희는 벌써 몇 번이나 이렇게 똑같은 말로 물었는지 모릅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그렇게 묻고 있는 선희가 너무나 측은하고 애석해서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가슴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삼키면서 마지못해 조심스럽게 입을 일었습니다.
“선희야, 아무 걱정 말라니까. 박사님 말씀은 아예 들어 보나마나일 거야. 틀림없이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엄마는 굳게 믿고 있거든.”
엄마가 이렇게 대답하자 지금까지 출입문만 바라보고 있던 선희의 시선이 모처럼 엄마 쪽을 향합니다.
엄마는 황급히 선희의 시선을 피해 눈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어떤 대답을 해 주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지금 선희를 자꾸만 속이고 있는 것이 가슴이 미어질 것처럼 괴롭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까 내가 잠든 사이에 미리 김 박사님 만나 봤어?“
"아, 아니…….“
선희의 물음에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번 가슴이 덜컥하였습니다. 그렇게 얼버무려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선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엄마는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올 거라는 걸 어떻게 믿고 있는 건데?”
"으, 으응, 그, 그건 말이지? 네가 너무 예쁘고 또한 마음도 천사보다 더 곱기 때문이란다. 옛날붙너 하느님은 절대로 착한 사람한테는 벌을 주시지 않거든.“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난 엄마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특별히 착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지만, 옛부터 곧은 나무는 먼저 베어진다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거든.“
선희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힘겹게 고개를 돌려 아까처럼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위로의 말은 선희에게 더이상 아무 도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잠시 마음을 진정하려고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에 김 박사님이 몹시 침울한 표정으로 들려준 목소리가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이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그, 그럼……?“
엄마의 안색이 금세 백짓장처럼 하얗게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로서는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보았습니다만…….“
"……?!“
"늦었습니다. 검사 결과 선희의 병이 워낙 깊어져 그만…….“
순간, 엄마의 입술은 마치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리면서 온몸이 석고처럼 단단히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박사님이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저 역시 이런 말씀을 드릴 때가 가장 난처하고 괴롭습니다. 어쨌든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고작해야 한두 달을 넘기기가……. 그러니까 병원에서 공연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필요가…….
”……!?“
그러자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김 박사님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신을 잃은 엄마가 마치 짐짝처럼 의자 밑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 저, 정신 차리세요! 이 봐요. 간호사 간호사!“
당황한 김 박사가 급히 엄마를 부축해 일으키며 크게 외치는 소리에 삽시간에 서너 명의 간호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습니다.
엄마는 곧 이동 침대에 실려 급히 응급실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응급치료를 받고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병실로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희는 여전히 출입문 쪽만 바라보며 김 박사님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선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엄마는 침이 바작바작 마르고, 지친 나머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그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이구, 선희가 일어나 앉아 있는 걸 보니 오늘은 기분이 썩 좋은 모양이구나!“
김 박사님이 애써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병실로 들어섰습니다. 그 소리에 엄마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희는 몹시 기다렸다는 듯 그제야 반색을 하며 김 박사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김 박사님이 활짝 밝아진 표정으로 선희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냐?“
"그냥……. 그보다도……?“
선희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김 박사 님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선희에게 무엇보다도 궁금하고 중요한 것은 검사 결과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선희는 지금 김 박사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매우 초조하기만 합니다. 엄마 역시 곧 심장이 멈출 것처럼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긴장한 표정으로 김 박사와 선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기에 바쁩니다.
그러자 김 박사님이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선희야, 정말 축하한다. 일 년이 넘도록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
뜬금없이 출하한다는 말에 선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김 박사님의 얼굴만 빤히 바라봅니다.
"엄마한테 아직 무슨 얘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구나?“
"아, 아뇨. 아직 못 들었는데요.“
선희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와 김 박사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겨우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김 박사님이 이번에는 선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다시 말문을 열었습니다.
“허어, 그랬구나. 선희가 열심히 치료를 받은 보람이 있어서 건강이 아주 몰라보게 좋아졌지 뭐냐.”
"그런데 왜……?”
선희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김 박사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건강이 좋아졌다면서 왜 아직도 기운을 차릴 수가 없느냐 이 말이니?“
”…….“
선희는 이번에는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건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서 생활을 했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하자면 운동이 부족해서 그렇다 이거지. 자 그리니까 이제 안심을 하고 아무 때나 선희가 퇴원하고 싶을 때 하렴. 알겠지?"
"그, 그게 지, 진짜예요?“
"녀석도 차암, 내가 왜 쓸데없이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니? 허허허…….“
선희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엄마에게 눈빛으로 묻고 있었습니다.
"그래, 엄마가 아까 뭐라고 그랬니? 박사님 말씀이 옳다니까 자꾸만 그러네. “
엄마는 이렇게 얼버무려 대답하고는 얼른 외면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엄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굵은 눈물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선희의 얼굴빛은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은 듯 기분좋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박사님 말씀이 정말 맞는 거지?“
"아, 그렇다니까 자꾸만 그러네.“
엄마는 겨우 이렇게 대답하고는 가슴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삼키느라 몹시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우와! 신난다. 박사님, 고맙습니다. 엄마, 그럼 나 내일 당장 퇴원할 거야. 그래도 되는 거지?“
“아암, 그야 그렇지.”
"엄마, 그런데 엄만 왜 자꾸만 울고 있어? 내가 퇴원하는 게 엄만 안 좋아?“
"안 좋다니……. 엄마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런단다.“
엄마는 가슴 속에서 복받쳐 올라오는 슬픔을 그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선희를 와락 껴안고는 크게 소리내어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김 박사님도 차마 그 광경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지, 그만 자리를 피해 슬그머니 병실을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조금 뒤, 엄마가 겨우 슬픔이 진정되었는지 선희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선희야, 너 병원에 더 있다가 완전히 몸이 회복된 다음에 퇴원하는 게 어떻겠니?"
“아니야. 병원은 이제 지긋지긋해서 싫단 말이야. 집에 가서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많이 사 주면 이제 금방 나을 거야.”
"아암, 그럼 네 생각 대로 그렇게 하자꾸나. 그럼 집에 가서는 혼자 무얼 하고 놀지?”
“그게 무슨 소리야? 친구들과 함께 다시 사이좋게 학교에도 다니고, 그동안 배우다가 그만둔 피아노도 열심히 치고 싶단 말이야.”
“…….”
신바람이 나서 계속 지껄이고 있는 걸 보면 선희는 이제 더 이상 몹쓸 병에 걸린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참! 엄마, 나 공부도 열심히 하고 피아노도 열심히 쳐서 이다음에 어떻게 할 건지 알기나 해?”
“…….”
“공부도 열심히 하고, 피아노도 더 열심히 쳐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그렇게 해서 돈 많이많이 벌면 어떻게 할 건지 알아?”
“…….”
엄마가 이번에는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만 흔들고 있었습니다.
“에이, 벌써 까먹었구나? 엄마와 아빠한테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그전에도 약속한 적이 있었잖아.”
“…….”
엄마는 선희를 껴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어 꼬옥 껴안으면서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오오! 하느님, 제발 이 불쌍하고 착한 우리 선희를 살려 주시옵소서!‘
엄마는 문득 소녀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는 '마지막 잎새'란 소설책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있던 어느 소녀가 마지막 잎 하나 때문에 희망과 건강을 되찾게 되었던 기적이 선희에게도 다시 일어나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계속해서 우는 모습을 본 선희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난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왜 자꾸만 울고 있는 거야?“
"엄마는 네가 이렇게 건강을 되찾게 되어 너무 기뻐서 그런다니까. 누구나 기쁘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엄마처럼 눈물이 나오는 거란다. 호호호…….”
“으응, 그렇구나! 난 병원에 입원할 때부터 금방 병이 나을 걸 미리 알고 있었어. 요즈음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엄마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어?”
"아암, 엄마도 벌써부터 알고는 있었지.”
엄마는 이렇게 대꾸하고는 아까보다 선희를 더욱 힘껏 껴안으면서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제발 우리 아이에게도 기적을 내려 주시옵소서! 제발 기적을…….”
어느새 병실마다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선희가 있는 병실도 불이 켜지면서 병실이 대낮보다 더 환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