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깨뜨린 꽃병

by 겨울나무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희네 집에 와서 같이 붙어서 놀던 민수입니다. 그런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민수가 다시 윤희네 집으로 급히 달려 왔습니다.


윤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민수를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어서 와 민수야, 그럼 이번에는 무슨 놀이 하면서 놀까?”


“우리 이번에도 아까 하던 거 또 할까? 선생님 놀이 말이야.”


“그래그래. 그게 좋겠다!”


윤희는 너무 좋다는 듯 손뼉까지 치면서 펄쩍 뛰고 있었습니다.


민수와 윤희는 지난봄에 같은 학교에 입학한 동갑내기입니다. 가끔은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다툴 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 갈 때나 집에 와서도 잠시도 서로 떨어지지 않고 늘 붙어 다니면서 그처럼 다정하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윤희는 곧 칠판이랑 긴 막대기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긴 막대기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쓰는 지시봉입니다.


“야, 이제 다 됐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생님 하는 거다?”


윤희가 얼른 긴 막대기를 집어 들면서 말했습니다.


"아까도 네가 먼저 선생님 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먼지 해야지.“


"아니야. 아까는 네가 먼저 했잖아.“


"아니야 네가 먼저 했단 말이야.“


윤희는 아까 분명히 제가 먼저 선생님을 하고도 끝까지 민수가 먼저 했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렇게 생떼를 쓰고 있는 윤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먼저 양보를 하는 것은 민수입니다.


"좋아. 그럼 이번에도 네가 먼저 해.“


"헤헤헤……. 민수야, 고마워.“


윤희의 입이 금방 헤 벌어집니다. 민수는 윤희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맨 처음 순서는 읽기 공부였습니다.


민수는 윤희가 시키는 대로 국어책을 또박또박 잘 읽었습니다.


"민수 어린이, 아주 참 잘 읽었어요. 민수 학생은 아마 어제 집에서 예습을 많이 했나 봐요.”


“…….”


윤희가 제법 선생님 목소리를 그럴듯하게 내면서 민수를 칭찬하였습니다.


윤희에게 칭찬을 받은 민수는 약간은 겸연쩍은 듯 싱글싱글 웃으면서 연신 머리만 긁적이고 있습니다. 읽기 공부가 끝나자 그다음에는 시계 공부 차례였습니다. 윤희는 어느새 시계 모형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야, 너만 자꾸 선생님 하면 어떻게 하니? 이번에는 내 차례란 말이야. 지휘봉 이리 달란 말이야.“


민수가 벌떡 일어나면서 막대기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윤희는 막대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재빨리 뒤로 감추면서 소리쳤습니다.


"아니 지휘봉을 달라니? 학생이 감히 선생님한테 어디서 배운 못된 버릇이야?


"넌 여태까지 많이 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할 차례라니까."


"얘가 점점 선생님을 보고 너라니? 학생이 무슨 말버릇이 그 모양이니? 너 벌서고 싶어?“


윤희는 빽 소리를 지르면서 막대기를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탁자를 향해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런데 바로 순간이었습니다.


"쨍그랑!“


장식장 위에 얌전히 놓여 있던 꽃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막대기를 힘껏 휘두르는 바람에 그만 꽃병이 맞아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제 엄마가 정성껏 갈아 꽂아 놓은 예쁘고 싱싱한 튤립도 바닥에 나동그라지면서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엉? 이거 큰일 났네. 어쩌면 좋지?“


윤희는 더럭 겁에 질린 채,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게 누가 너더러 막대기로 식탁을 치랬니?“


민수 역시 잔뜩 겁이 난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그 꽃병은 윤희 엄마에게는 아주 귀한 꽃병이었습니다. 얼마 전,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아빠가 장미 꽃다발과 함께 선물로 사온 꽃병입니다. 그러기에 엄마는 그 어느 물건보다도 소중히 아끼던 꽃병이었습니다.


"난 몰라. 너 때문에 꽃병이 깨졌단 말이야.“


윤희는 엄마한테 야단을 맞을 생각을 하니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울상이 된 얼굴로 민수 탓만 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구? 내가 뭘 어쨌는데? 꽃병을 막대기로 후려친 건 너잖아?“


민수는 여전히 겁이 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이게 다 네가 선생님 말을 잘 듣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생겼잖아!“


"치이! 뭐든지 잘못한 건 다 내 탓이라지.“


민수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윤회 엄마한테 야단을 맞을 일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러니까 윤희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도망가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습니다.

"이잉이잉~~ 그럼 난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잉~~~”


민수가 슬그머니 현관문을 열고 꽁무니를 빼며 나가버리자 윤희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윤희가 우는 소리를 들은 민수는 갑자가 윤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있는 자신이 비겁하고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민수는 곧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되돌리고 말았습니다.


"윤희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민수가 이번에는 활짝 밝아진 환한 얼굴로 윤희에 말을 걸었습니다.


"집으로 도망간 줄 알았는데 왜 또 왔어?“

윤희는 그런 민수가 반갑기는 하지만 여전히 뾰로통해진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야, 우리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깨진 꽃병부터 치우자, 응? 그리고 니네 엄마가 오기 전에 이 꽃병과 똑같은 꽃병을 사다가 놓자 이 말이야.“


민수의 말에 윤희의 표정이 금방 밝아집니다.


"그래? 근데 너 돈 있어?“


"그런 건 걱정 마. 내 돼지 저금통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꽃병 하나쯤은 살 수 있을 거야. 아마 튤립도 사다가 꽂을 수 있을 걸!"


"오호! 그래? 민수야, 난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더라.“


"후후훗……. 그래?“


조금 선까지만 해도 잔뜩 겁을 먹고 울고만 있던 윤희의 얼굴이 금방 밝아졌습니다.

민수는 윤희의 말에 흐뭇해진 얼굴로 조심스럽게 깨진 꽃병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윤희는 부지런히 걸레질을 합니다. 두 아이의 얼굴에는 금방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혀 힘든 줄을 모릅니다.

"민수야, 후훗…….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말이지. 너는 실이고 나는 바늘이래.“


걸레질을 하고 있던 윤희의 입에서 느닷없이 엉뚱한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 니네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구? 그거 참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데?“


"우리 엄마나 아빠도 가끔 그런 말을 하거든.“


"정말 그랬니? 호호호…….“


"후후훗……. 그래, 정말이라니까.“

서로 마주 보며 밝게 미소를 짓고 있는 두 아이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함빡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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