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꼬마 흑염소

by 겨울나무

“음메에해~~~ 매해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까만 털빛깔의 새끼 염소 다섯 마리가 이따금 귀여운 목소리로 울어대며 주인 아저씨의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 가고 있습니다.


“염소 사려! 염소 사려! 보약으로는 그만인 흑염소 사려!”


조금 지친 듯한 아저씨의 목소리는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메아리쳐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 다하여 염소를 팔기 위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저녁때가 가까워지자 도시의 골목마다에서는 쌀쌀하고 찬 바람이 사납게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아저씨의 걸음걸이는 지칠대로 지쳤는지 제멋대로 비틀거리며 터벅터벅 걷고 있습니다. 힘이 빠지고 지친 것은 아저씨뿐이 아닙니다.


벌써 일주일째나 끈으로 목을 묶인 채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아저씨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염소들은 너무나 지쳐 아저씨보다 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새끼 염소들을 끌고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좀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라면 서슴지 않고 어디든지 끌고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기랄! 염소를 사는 사람이 이렇게도 없서서야 어디 장사를 해 먹겠나!“


아저씨는 어느 공원에 다다르자 무거운 쌀가마를 내동댕이 치듯 긴 의자에 털썩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아픈 듯 아픈 다리를 두 주먹으로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다섯 마리의 염소들도 땅바닥에 옹기종기 털썩 주저앉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지쳐 뻐근한 다리를 쭉 펴고 서로의 얼굴만을 지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일단 땅바닥에 엎드려 턱을 괸 채 지친 몸을 풀다 보니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옵니다.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너무나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눈이 저절로 감겨지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얘, 이대로 여기서 오래오래 실컷 잠이나 잤으면 좋겠지?”


염소 한 마리가 지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누가 아니라니. 그나저나 인성 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우리 주인인데 그런 사정을 봐 주겠니?“


"맞아.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세상에 모두 잘못 태어났어. 무슨 죄가 있다고 겨우 걸음마를 배우자마자 우리들을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목에 끈을 묶어서 죽도록 끌고 다니니, 끌고 디니길……?”


“난 무엇보다도 엄마가 제일 보고 싶고 그리워서 미칠 것만 같아.”


한 마리의 염소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다른 염소들도 덩달아 저마다 신세 타령과 푸념을 늘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섯 마리의 염소 중에 그나마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염소가 꼬마 염소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습니다.


“난 뭐니뭐니해도 네가 제일 가엾어 못 배기겠구나, 난지 겨우 보름 밖에 안 된 어린 아기를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매일 끌려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고 고생이 되겠니? 쯧쯧쯧…….”

위로의 말을 들은 꼬마 염소의 눈에서는 어느 새 눈물이 핑 돌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견디기 힘든 자신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나이 많은 염소의 위로가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따뜻하고 정겨운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꼬마 염소는 다른 염소들보다 훨씬 어리고 약했기 때문에 아저씨를 따라 다니기가 너무나 힘에 겨웠습니다. 종아리가 땅기고 온몸은 납덩이를 삼킨 것처럼 무거웠지만 아저씨는 조금도 꼬마 염소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벌써 일주일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아저씨가 맨처음에 집을 나설 때는 일곱 마리의 염소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을 안 다닌 곳이 없이 헤맨 끝에 겨우 두 마리만을 팔고 이제 다섯 마리만 남은 것입니다.


염소들은 먼저 팔려나간 염소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까맣게 모릅니다. 그래서 가끔 다른 친구들보다도 자기 자신이 먼서 팔려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아저씨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기가 고통스럽고 힘에 겨웠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우리들이 팔려나가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니?“


꼬마 염소는 문득 궁금한 마음에 친구늘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에 꼬마 염소를 위로해 주던 염소가 아직도 그것도 모르고 있었느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것은 뜻밖에도 무섭고도 끔찍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여태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니? 우리들은 팔리기만 하면 그날이 바로 죽는 날이란다.”


꼬마 염소는 놀라움에 두 눈이 커다랗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굴색이 금방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날로 죽다니? 난 여태까지 우리들을 부자집에서 잘 기르기 위해 사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러게나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니!”


나이가 좀 먹은 염소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꼬마 염소는 도무지 히해할 수 없다는 듯 문득 고개를 들더니 원망스러운 눈으로 주인 아저씨를 노려 봅니다.

주인 아저씨는 몹시 추웠는지 털모자를 꾹 눌러 쓴채 발을 동동 구르며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염소들을 잡아 맨 끈만은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 손으로 꼭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만일 한 마리라도 놓치게 되면 마치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꼬마 염소는 주인 아저씨가 새삼 원망스럽고 밉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돈만을 아는 지독한 사람이요, 인정이 없는 가장 잔인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저녁이 점점 깊어지자 살을 에일 것처럼 차고 사나운 바람은 여전히 쉬지 않고 불어 댑니다. 염소들은 점점 꽁꽁 얼어붙는 몸을 조금이라도 녹이기 위해 서로 바짝바짝 몸을 붙이면서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꽁꽁 언 맨땅에 대고 있는 배와 등은 너무나 꽁꽁 얼어들어 마치 예리한 송곳으로 쑤시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꼬마 염소가 궁금함을 참다 못해 다시 덜덜 떠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그나마 돈이나 벌기 위한 희망 때문에 추위를 참고 견디고 있겠지만 우린 이게 뭐야? 기껏 죽기 위해 이런 고생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꼬마 염소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못 배기겠다는 듯 주인 아저씨를 흘겨보며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 아저씨는 꼬마 염소의 이런 넋두리와 푸념을 전혀 알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자! 이놈들아, 이제 그만큼 쉬었으면 다시 또 다녀보자꾸나. 자,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어!”


주인 아저씨는 어느 정도 추위가 가셨는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급히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염소들의 사정은 조금도 아랑곳없다는 듯 줄을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염소들의 목이 길게 늘어났습니다. 아저씨가 목에 맨 줄을 무자비하게 끌어당겼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놈들이 그새 엉덩이가 땅바닥에 얼어붙었나, 왜 이렇게 돈작이 느린 거야?”


주인 아저씨는 화가 난 듯 미처 일어나지 못한 염소들의 궁둥이를 사정없이 뻥뻥 걷어 차고 있었습니다.

“정말 오직 돈밖에 모르는 지독하고 잔인한 사람이로군!”


꼬마 염소는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리며 다른 염소들을 따라 아저씨의 꽁무니를 다시 따라갈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자, 흑염소가 왔습니다. 보약과 만병통치에 특효약인 흑염소 사려어!”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목이 쉴 대로 쉰 아저씨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욱 힘이 빠진 듯하였습니다.

염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있는 대로 기운이 빠져 죽지 못해 겨우 한 발 두 발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쫄랑쫄랑 죽을 힘을 다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공원에서 쉬기 전까지만 해도 주인 아저씨가 몹시 불쌍하다고 생각하던 꼬마 염소였습니다.


가난에 쪼들린 살림에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이 추운 날씨에 매일처럼 돈을 벌기 위해 고생을 하는 아저씨가 측은하다고 생각하던 꼬마 염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싹 바뀌고 말았습니다. 염소들을 잘 길러 줄 수 있는 사람들한테 팔러 다니는 줄로만 알았던 꼬마염소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금방 약으로 잡아먹을 사람한테 팔기 위해 다니고 있다는 것을 바로 조금 전에 알고 나서부터는 주인 아저씨의 얼굴만 보면 소름이 오싹 돋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친 몸의 고통보다는 죽음의 공포로 더욱 불안하고 초조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꼬마 염소가 궁금해서 못견디겠다는 듯 다시 힘없는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우리들을 팔기 위해 매일 입버릇처럼 떠드는 보약이라든가 만병통치라는 게 무슨 뜻이지?”

“음, 그건 몸이 허약한 사람이 먹으면 힘을 얻게 되고 만병통치란 무슨 병이든지 먹기만 하면 나을 수 있는 약이란 뜻이란다.“


꼬마 염소의 물음에 옆에 있던 염소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러나 친절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럼 우리들을 잡아먹으면 병이 든 사람이나 몸이 약한 사람들의 병이 정말 맞는단 말이지?“


"응, 그렇다나 봐, 하지만 우리들도 얼른 팔리지 않고 나이를 더 먹게 되면 그 약의 효과가 적어서 그땐 아무 짝에도 쓸 수 없게 된다던 걸.“


”…….!!“


꼬마 염소는 그제야 겨우 알겠다는 듯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염소들만을 끌고 다니며 이 추운 날씨에 고생을 하고 있는 주인 아저씨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 그랬구나! 닌 여태 그런 것도 모르고 주인 아저씨만을 원망했잖아!”


꼬마 염소의 마음은 어느새 싹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바뀔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도 미처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아!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보람있는 일을 위해 내 몸 하나를 회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내가 팔리면 주인 아저씨는 돈을 벌게 되고 나를 사간 사람의 몸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게 되고…….“

꼬마 염소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자 주인 아저씨를 원망하던 마음도,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도 모두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칠대로 지졌던 몸에서는 갑자기 새 힘이 솟아오르고 발걸음조차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느새 도시에는 회색빛 어둠이 덮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흑염소 사려! 보약으로는 그만인 흑염소 사려어~~~!”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염소를 팔기 위해 소리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음매해해~~~매해해~~~“


아저씨를 따라가고 있는 꼬마 염소의 입에서도 이번에는 지친 목소리가 아닌 힘이 용솟음치는 귀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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