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여 평생을 줄곧 시골에 묻혀 농사만 지으며 살던 할머니입니다. 그렇게 살던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 와서 함께 지내게 된 것도 벌써 1년이나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긴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자, 시골에 혼자 떨어져 쓸쓸하게 살고 있던 할머니였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애석하게 여긴 아들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모셔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어머님이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어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무 걱정 마시고 그저 마음 편히 잡숫고 싶으신 것이나 잡수시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도록 하세요. 그리고 저희들이 힘 자라는 데까지 정성껏 모실 테니 어머니는 그저 건강하기만 하시고요."
아들이나 며느리는 틈만 날 때마다 이렇게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곤 하였습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극진히 모시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는 효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할머니가 서운하거나 쓸쓸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며 정성껏 모시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동안 직장에 나가면서 알뜰히 생활한 결과 제법 그럴 듯한 집도 한 채 마련하였으며 그런대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입맛에 맞는 음식도 마음대로 사드릴 수 있었고, 또한 용돈도 넉넉히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나 며느리의 그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어떻게 된 일인지 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흡족하지를 않았습니다.
"에이구, 이렇게 복작거린 데서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가누…….”
할머니는 늘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할머니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오곤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들 내외에게 뭐라고 꼭 꼬집어 불만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점점 할머니의 마음만 답답해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어쩌다 아들 내외가 히히덕거리며 정겨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 다정한 모습만 눈에 띄어도 문득 할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으레 할머니는 슬그머니 아들 내외의 눈을 피해 손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얘, 진우야, 이 할미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한 가지만 해 줄게 들어보련?”
할머니는 한창 장난감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는 손자를 덥석 안아 무릎에 앉힌 다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손자는 이제 옛날이야기 같은 것은 듣기조차 싫다는 듯 할머니를 뿌리치고는 다시 장난감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할머니! 이번에도 또 옛날에 할아버지하고 지내셨던 얘기를 하시려고 그러시는 거죠?”
“아니라니까. 그게 아니란 말이야. 이 녀석아.”
“그럼 시골에서 도깨비나 귀신이 나오는 얘기가 아니면 백년 묵은 구미호 얘기를 하시려고요?”
“그래, 맞았다. 넌 그런 얘기가 재미없니?”
손자에게나마 재미를 붙이려고 기대를 걸었던 할머니의 표정이 금세 실망의 빛이 가득합니다.
“재미없는 게 아니라 벌써 몇 번이나 듣고 또 들은 얘기인데 무슨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건 이 세상에 없는 순 거짓말이래요.”
손자는 이제 그런 이야기는 전혀 흥미조차 없다는 듯 여전히 장난감만 가지고 열심히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 손자를 보자 할머니는 한꺼번에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손자에게도 버림을 받은 천덕꾸러기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쫓겨나듯 손자의 방에서 슬그머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곧 앞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앞마당에 있는 꽃밭에는 갖가지 꽃들이 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분에 활짝 핀 여러 가지 예쁜 꽃들이 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하며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린애처럼 이 꽃, 저 꽃을 살펴보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베추니아, 샐비어, 튤립, 고무나무, 소철……등, 그 모두가 시골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낯선 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꽃들이지? 하나같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이름모를 꽃들만 모여있구먼!”
그런 낯선 꽃들을 구경하고 있던 할머니는 문득 시골에서 정성껏 물을 주고 기르던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 과꽃, 그리고 해바라기 등이 문득 머리에 떠오르며 그리워졌습니다.
할머니가 이번에는 앞마당 담장 가까이 가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어이구, 맙소사, 집들이 마치 콩나물 시루 속에 있는 콩나물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저런 속에서 답답해서 무슨 재미로 살아간담!”
할머니는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금방 숨이 막힐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문득 또다시 시골이 그립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었습니다.
드넓은 벌판에서 소를 몰며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 공기 맑고 깨끗하며 맑고 새파란 하늘,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만나는 이웃마다 정답게 주고 받는 티없이 순진한 인정이 가득한 다정한 인사말…….
할머니의 입에서는 그만 안타깝고 허전한 마음에 긴 한숨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나? 이런 게 바로 지옥이지!”
할머니는 고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어느새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습니다. 고향을 송두리째 영영 잃어버리고야 만 아쉬움에 마음속으로 슬피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어머님! 거기서 뭘하고 계세요? 어서 진지 드셔야지요.”
어느 틈에 뜰로 나온 며느리가 슬금슬군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끌고 있었습니다.
"어머님! 혹시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며느리가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걱정스러운 낯으로 물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애써 쓸쓸한 속마음을 감추는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아들 내외가 아무리 신경을 써가며 할머니에게 효성을 다하고 있지만 할머니의 텅 빈 마음만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다. 언짢다니?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러는 거란다.”
억지로 이렇게 웃어보이며 대답하고 있는 할머니의 눈에서는 어느새 이슬이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그 옛날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시골에서의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행복했던 일들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여러 달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쓸쓸하고 우울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외출을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어딜 거는 것인지 이른 아침에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보자 어느 날, 아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어머님, 요즈음 어딜 그렇게 가끔 가세요? 점심은 어떻게 하시고요? 다음부터는 어디 가실 일이 있으면 저한테 미리 말씀을 하세요. 제가 차로 편하게 모셔다 드릴 테니까요.”
“아니다. 그만 둬라. 그냥 할 일 없이 바람 좀 쐬러 다니는 건데 차는 무슨 차를 타고 다니냐? 네 일 보기에도 바쁠텐데…….”
아들의 물음에 할머니는 으레 이렇게 얼버무리곤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요즈음 식구들 모르게 자주 찾아가는 곳은 서울 부근에 모신 할아버지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러나 식구들에게는 전혀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마침내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를 찾아갔다가 마침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고 그예 몸살이 나고 만 것입니다.
한번 몸살이 난 할머니의 병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끔 헛소리까지 하면서 점점 더 심해가고 있었습니다.
"영감!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혼자만 그리도 매정하게 떠나셨단 말이우. 정든 시골도 잃고 영감을 잃어버린 난 이제 더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 어쩌면 좋단 말이유.“
할머니는 이렇게 시골 타령이 아니면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헛소리를 자주 하곤 하였습니다.
"여보! 어머님이 저토록 위독하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죠? 약을 드려도 소용이 없고 의사 선생님을 불러 계속 왕진을 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무래도 입원을 시켜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내가 겁이 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한숨을 쉬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어머님의 병환은 입원을 시켜드려도 쉽게 차도가 있으실 것 같지 않아요. 내가 좀 생각한 것이 있으니 당분간은 왕진으로 계속 치료를 해 드리도록 합시다.“
”……?“
그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출근을 하겠다며 이른 아침에 일찍 집을 떠난 남편은 점심때가 좀 지나더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웬일이세요? 퇴근하려면 아직 멀었잖아요?”
아내가 외외라는 듯, 눈이 커다랗게 되어 물었습니다.
”…….“
남편은 대답 대신 금방 차에 싣고 온 큼직한 화분 두 개를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는 난초, 그리고 또 하나의 화분에는 탐스럽게 생긴 함박꽃이 심어진 화분이었습니다.
“여보, 이게 뭐예요? 그리고 어디서 가지고 오신 거예요?”
아내는 여전히 둥그렇게 된 눈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응, 이 화분은 어머님이 사시던 시골집 뒤뜰에 가서 캐온 꽃이거든. 그리고 흙도 거기서 가지고 온 거고. 자, 이 화분을 어서 어머님이 계시는 방에 갖다가 잘 놓아 드립시다. 아마 어쩌면 어머님이 몹시 좋아하실는지 모를 일이 아니겠소?“
”…….“
아내와 남편은 곧 낑낑거리며 무거운 화분을 하나씩 들고 들어가 어머님이 계시는 방에 보기 좋게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니, 그건 또 어디서 가지고 온 꽃들인 게냐?“
“네, 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제가 방금 시골집으로 내려가서 뒤뜰에 있던 꽃을 캐온 것이랍니다. "
아들이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시골집에서 가지고 왔다는 말에 할머니는 갑자기 생기가 나는 듯 활짝 밝아진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 그게 바로 우리 시골집 뒤꼍에서 해마다 탐스럽게 피던 함박꽃과 난초란 말이지? 그리고 이 흙도 우리 고향의 흙이고? 어디 좀 보자꾸나!”
할머니는 너무나 좋은 듯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나더니 화분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화분에 코를 바짝 대로 흙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난초와 함박꽃을 번갈아 쓰다듬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마치 어린애처럼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고향을 다시 찾았으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저럼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제야 내가 다시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구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내게 되었니? 애비야, 정말 고맙구나.”
할머니는 여전히 함박꽃과 난초를 번갈아 어루만지며 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눈에서는 어느새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아들과 며느리의 눈에서도 어느틈에 눈물이 글썽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