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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08. 2022

내가 어렸을 때는(3)

[피란길 (1)]

미술 시간에 담임 선생님에게 뜻밖의 칭찬을 받은 뒤부터는 그토록 두렵고 싫던 학교가 너무나 좋아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여전히 약골인 나를 보고 놀리며 괴롭히곤 하였지만, 오직 선생님 얼굴 또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심지어는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학교가 좋아졌다.   

   

그렇게 학교에 재미를 붙이며 그럭저럭 다니는 동안 어느덧 그해 6월이 되었다.   

   

그해는 초여름부터 가뭄이 극심한 해였다. 가뭄이 너무 심해서 논에 심어놓은 모가 날이 갈수록 빨갛게 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가슴속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틈만 나면 들판에 있는 논으로 달려가서 각자 논에 물을 대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물을 퍼서 논에 대는 고된 작업은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멈출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물을 대는 일을 잠깐이라도 멈추게 되면 논바닥에 심은 모가 모두 말라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물 한 방울이라도 더 퍼 올리기 위해 집집마다 그야말로 물푸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논에 물을 대는 방법으로는 대부분 논바닥 한 귀퉁이에 깊은 웅덩이를 파놓고 웅덩이에 고인 물을 퍼내는 일이었다.      


집집마다 대부분은 네모로 생긴 큼직한 알루미늄으로 된 새우젓 통에 끈을 네 개 매달고 양쪽에 마주 서서 물을 푸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어떤 집에서는 용두레로 푸는 집도 더러 있었다. 장대처럼 길게 생긴 막대기 끝에 큼직한 바가지를 매달고 그것으로 한 바가지씩 물을 퍼 올리는 집도 있었다. 집에서 쓰던 두레박으로 물을 푸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물을 풀 수 있는 수단이란 수단은 모두 동원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여전히 그토록 갈망하는 비 한 방울 내려주지 않았다.    

그런 극심한 가뭄이 여러 날 동안 지속되고 있던 중 마침내 그해 625일 아침이밝았다.      


난 그날따라 이웃집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이 구슬치기 놀이를 재미있게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 여전히 몸이 쇠약해서 아이들과 한데 어울리지는 못하고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르릉, ! 우르릉 꽈다당!“      


그때 멀리 임진강 북쪽에서는 간간이 천둥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참고로 임진강은 우리 마을에서 직선거리로 약 10Km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난데없이 갑자기 등 뒤에서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 여기서 놀고 있었구나. 아침은 아직 안 먹었지? 어서 집으로 가서 먹자꾸나.“    

 

그리고 나를 발견하자마자 나의 손을 꼭 잡으셨다. 보나마나 아버님은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들판에 있는 논으로 물을 푸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버님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아버님의 얼굴에는 연신 활짝 핀 웃음꽃이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나를 향해 물으셨다.     

  

너도 저 소리 들었지? 북쪽에서 들려오는 저 천둥소리 말이야. 오늘은 아마 그토록 기다리던 소나기라도 퍼부을 모양이다.“     


난 그제야 아버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천둥소리를 들리자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북쪽에서는 여전히 천둥소리가 아까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요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식구들과 같이 아침을 먹었다. 천둥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곧 소나기가 퍼부을 것만 같은 느낌에 아버지는 조급한 마음에 하늘만 자꾸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조금 뒤, 동네 한길 쪽에서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끔 소의 울음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소리지?“     


밖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떠들고 있는 소리가 왁자지껄하며 들려오자 아버지는 궁금한 마음에 바깥마당으로 뛰쳐나가셨다. 그리고는 곧 안을 향해 소리치셨다.      


어서들 밖으로 나와 보렴!“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우리 가족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을 앞 논배미 건너 커다란 한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어 남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도, 그리고 길마 위에 짐을 가득 실은 소들도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게에 짐을 지고 가거나, 아낙네들은 아기를 등에 업고 머리에는 짐을 이고 게다가 무거운 짐을 손에 들고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조금 자라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아이들은 부모님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는 모습들도 보였다. 그런 사람들의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들의 눈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둥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런 희한하고 이상한 행렬은 난생처음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입을 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물었다.  

    

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딜 저렇게 가고 있는 거죠?“     


글쎄다. 가만들 있거라. 내가 얼른 가서 알아봐야 되겠구나.”   

   

아버지는 대답을 끝내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는 한길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곧 되돌아오더니 잔뜩 겁이 난 표정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전쟁이 났다는구나. 전쟁이! 인민군들이 쳐들어오고 있어서 저 사람들 모두가 피란을 가고 있는 거라는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어서 서둘러 피란을 가야 되겠다.”      


천둥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 알고 보니 그것은 천둥소리가 아니라 북한군들이 쳐들어오면서 쏘아대는 대포 소리였던 것이다. 마침내 북한군들이 불법남침의 만행을 저지른 6.25란 한국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곧 집안으로 들어와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피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장 입어야 할 옷가지며 이불, 그리고 양식과 반찬 냄비 등 가지고 갈 수 있는 짐은 모두 싸기 시작했다.  

   

아버지과 어머니는 짐을 싸면서도 몹시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공연히 신바람이 났다.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였기에 전쟁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피란을 간다는 것이 마냥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난생처음으로 피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지게에 짐을 가득 지고, 어머니는 머리와 손에, 그리고 누나도 짐을 이거나 들고 마침내 남쪽을 향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란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가는 뒤를 따라 무작정 정처없는 피란을 가게 되었다.      


학교에 업혀 다닐 정도로 몸이 약했던 나는 아직도 겨우 조금씩 걸음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약했다. 그래서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냥 맨몸으로 식구들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피란길     


북쭉에서는 여전히 인민군들이 쳐들어오면서 쏘아대는 포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소총 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포함한 피란민들은 총소리와 포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정처없이 계속 걷고 또 걷다 보니 배가 고파서 젖을 달라고 우는 아기들의 울음소리도 여기저기서 자주 들렸다. 보채고 우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아파서 더이상 못 가겠다고 버티며 우는 아이, 배가 고프다며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울며 보채는 아이, 연세가 많은 노인을 모시고 가는 집은 더욱 걸음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들은 아무 데나 그늘진 곳에 털썩 주저앉아서 젖을 먹이거나 간식을 먹이며 쉬었다 가기도 하였다.   

   

그나마 힘이 좀 있고 건강한 사람들은 벌써 어디가지 갔는지 모를 정도로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힘이 들어도 가고 또 걸어가고…….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가고 있었다. 게다가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가는 피란길이 자연히 자꾸만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피란을 가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 데나 빈 집에 들어가서 쉬었다 가기도 하였다. 일단 빈집에 들어가면 그 집 세간살이를 뒤져서 집주인이 두고 간 양식을 가져가거나 아예 그 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였다. 모두가 피란을 가는 바람에 텅텅 빈 주인 없는 빈집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피란 첫날은 날이 어두워지자 일산에서 하룻밤을 잤다. 고향에서 일산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워낙 짐이 많고 날씨도 더워서 걸음걸이가 더뎠기 때문에 걸음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수색에 도착하게 되었다. 지금은 도시개발로 인하여 모두 구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 마을 피란민 일행이 도착한 곳은 수색역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구름다리였다.   

       

이 구름다리는 경의선 기찻길 위를 가로질러 놓여 있었으며 이 구름다리를 경계로 경기도 고양군과 서울특별시로 행정구역이 구분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날은 마침 흐린 날씨에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쪼이는 무더운 날씨보다는 훨씬 덜 지치기도 하고 걷기에도 그런대로 괜찮은 날씨였다.    

  

구름다리에 도착하자 피란민들은 가랑비를 피해 구름다리 밑에 지게와 짐을 내려잠시 쉬고 있었다. 4, 50여 명쯤 되는 피란민들은 피곤하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모든 게 귀찮다는 듯 벌렁 눕거나 혹은 앉은 채로 한창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르릉, ! 우르릉 꽈다당……!”      


따콩! 따콩……!”      


북쪽에서는 여전히 북한군들이 진격해 오며 쏘아대는 대포 소리와 따콩총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구름다리 옆 큰 도로에는 무장을 한 우리 국군들이 줄을 지어 남으로 남으로 다급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후퇴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후퇴를 하고 있는 국군들을 보니 피란민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도 아이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그리고 신기한 듯 다리 밖으로 나와 서서 두리번거리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기에 바빴다. 그때 구름다리 저쪽에서 는 난생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자동차 한 대가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부릉, 부르르릉…….”      

    

이상하게 생긴 자동차는 연신 엔진 소리를 내면서 다리 위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자동차 구경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자동차 소리를 들은 아이들 모두가 호기심에 모두 다리 밑 양쪽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이상하게 생긴 자동차가 다리 위를 지나가는 모습을 고개를 한껏 젖히고 올려다보며 신기한 듯 넋을 잃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동차는 얼른 보기에도 예사 자동차가 아니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마도 트랙터였던 것 같다. 어쨌거나 전쟁통에 무슨 일로 그런 차가 그 다리 위를 통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운전을 하는 사람이 군인이었는지 민간인이었는지도 지금도 기억이 전혀 나지는 않는다.       

      

트랙터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어쩌면 사람의 걸음걸이보다 더 느렸던 것 같다. 차의 속도가 그렇게 느린 바람에 더 자세히 오랫동안 구경할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그런데 큰 문제가 벌어진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그 차가 다리 중간쯤 왔을 때 그만 뜻밖의 큰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구름다리 밑에서 이토록 끔찍한  사고가 벌어질 줄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 * )  


    

                          - 다음 회에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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