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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12. 2022

내가 어렸을 때는(4)

[수색 구름다리 붕괴 사건]

트랙터가 구름다리 위를 완전히 올라서자 가끔 우지직~~ 우지직~~~’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트랙터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모두 그러려니 하고 넋을 잃은 채 다리 위의 트랙터만 멀거니 바라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피란 짐을 지고 오느라고 너무 지치고 지쳤기 때문인지 다리 위에서 소리가 나건 말건 그저 다리 밑에 편히 누운 채 피로에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트랙터가 천천히 다리 중간쯤에 왔을 때였다. 우지직소리가 좀 더 요란스럽게 들리는가 했더니 마침내 다리가 무너지면서 트랙터와 함께 다리 밑으로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멀쩡하던 다리는 순식간에  ‘V’자 형으로 꺾이면서 다리의 중간이 트랙터와 함께 기찻길로 아래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그렇게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무너져내리면서 다리 밑은 온통 흙먼지로 뒤덮이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다리 밑 양쪽으로는 온통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한동안 한치의 앞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리 위의 도로가 시멘트 포장이 아닌 흙으로 포장된 도로였던 것 같다.       

    

엄마아어디 있어! 엄마아--!”     


“××! 엄마 여기 있어!”     


아빠아~~!”       

   

아수라장이 된 다리 밑에서는 갑자기 서로 가족을 찾는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리 밑에서 쉬고 있던 어른들이나 아이들 모두가 뜻밖의 날벼락을 맞게 된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각자 가족들을 찾느라고 혈안이 된 채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도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전쟁도 그런 전쟁이 따로 없었다. 북한군만 쳐들어오는 것만 전쟁이 아니었다.  


잠시 뒤, 뽀얀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눈앞을 분간할 수 있게 되자, 피란민들 중에는 다리가 무너지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꽤나 많아 보였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 남아있는 것만 해도 천행으로 여기면서 죽으나 사나 다시 서둘러 각자 흩어져서 피란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트랙터를 운전하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트랙터만 남겨놓은 채 어느 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 역시 천만다행으로 다친 사람 하나 없이 모두 무사했다. 그런데 큰 걱정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놈의 이불 보따리가 문제였다. 지게에 올려놓은 채 버티어 놓고 있던 이불 보따리가 다리가 ‘V’자 형으로 주저앉으면서 그만 닫리에 깔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님은 두 손으로 이불을 잡고 아무리 빼내려고 힘을 써 보지만 워낙 무거운 다리에 심하게 깔린 이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아버님이 할 수 없이 다리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강한 막대기 하나를 구해왔다. 그리고 이불 밑에 깔려있는 흙을 막대기로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 이불을 빼낼 수 있었다. 그제야 마음을 놓고 이불 보따리를 지게에 진 채 막 출발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으음~~ 으으음~~~“          


어디선가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신음 소리를 따라 여기저기 살펴보게 되었다. 아아, 그런데 그곳에는 바로 우리 고향의 옆집 아주머니가 쓰러진 채 신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옆집 아주머니가 다리 밑에 앉아 쉬고 있다가 다리가 무너질 때 그만 머리를 맞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정신을 잃은 채 그 자리에 죽은 듯이 쓰러져 누운 채 이따금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리면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옆에는 열 살 쯤 된 아주머니의 딸이 갓난아기 동생을 업은 채 쪼그리고 앉은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덩달아 울고 있었다.      


허어, 이거 큰일이로구먼!“     


아버님이 다가가서 아주머니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주머니는 전혀 의식을 잃은 듯 아무 반응이 없이 가끔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눈도 감고 있었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함께 피란을 가던 마을 사람들은 이미 모두 떠나고 다리 밑에는 오직 그 아주머니와 딸, 그리고 우리 식구들 밖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피란길이 급한데 다친 채 누워있는 아주머니를 그대로 모른 체하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님은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던 끝에 어디론가 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달려간 곳은 구름다리 위였다. 그때 마침 구름다리 옆 양쪽 도로에는 무장을 한 국군들이 이렬 종대로 남쪽으로 뛰다시피 급히 후퇴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막다른 일에 다다르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던가. 아버님은 국군들에게 뛰어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구원을 청했던 모양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잠시 뒤에 두 명의 국군이 부리나케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급히 뛰어 내려왔다. 팔에는 위생병이라는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곧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아주머니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재빠른 동작으로 응급처치를 하였다.      


이분 모르긴 해도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같습니다.“      

 

서둘러 응급처치를 끝낸 위생병들은 하얀 붕대로 머리를 잔뜩 감아주더니 이런 말을 남기고는 다시 급히 그들의 대열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이제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이렇게 심하게 머리를 다쳐서 정신까지 잃은 사람을, 게다가 조금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자 아버지님이 이번에는 근처에 있는 어느 집 울타리 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울타리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하나 잘라왔다. 연장이 없어서 제대로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몸이라도 의지할 수 있도록 임시 지팡이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그 아주머니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지팡이를 손에 쥐어 주었다.    

    

아주머니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양쪽에서 부축을 해서 지팡이를 짚고 한 발 두 발 조금씩 내딛고는 있었지만 아버님은 무거운 짐보따리를 실은 지게를 진 채, 그리고 어머님 역시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부축을 하고 있었으니 그때의 샇황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그나마 아직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을 그대로 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고 보니 우리 부모님의 마음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으리라.       

   

그러나 아버님과 어머님보다도 더욱 힘이 드는 것은 아주머니였으리라. 그러기에  아주머니는 걷기가 너무 힘에 겹고 고통스러움을 견디다 못해 애원을 하듯 가끔 이런 말을 되풀이하곤 하였다.     


제발 날 버려고 그냥 가도록 해요.“         


하지만 아버님과 어머님은 차마 이대로 길바닥에 버리고 갈 수 없었음인지 여전히  부축을 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쉬고 조금 가다가 다시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가까운 거리를 가기에도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조금씩 걷다 보니 얼마 못 가서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환자도 환지이지만 모두가 지치고 지쳐서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외딴집 한 채가 보였다. 빈집이었다.  

    

우린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우선 아주머니를 아랫목에 편안히 눕히고 난 다음 빈 집 여기저기를 뒤져서 저녁밥을 간단히 준비하여 허기진 배를 채우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듯 아까보다 더욱 신음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급히 따로 장만해서 떠 먹여주는 미음을 고맙게도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런 힘겨운 상황 속에서 악몽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어느새 이튿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이 밝자 다시 피란을 서둘러야만 했다. 북쪽에서는 계속 적군들이 진격해 오고 있는 총소리들이 점점 더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피란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그 집에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어서 마음만 더욱 조급하고 불안했다.      


”난 더 이상 갈 수가 없으니 이대로 두고 먼저 어서들 가라니까요.“     


아주머니는 정신이 좀 들었는지 이제 절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며 우리 식구들만 먼저 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집에 남아 누워 있겠다고 하였다. 그건 안 된다며 억지로라도 힘을 내서 같이 가보자고 하였지만 절대로 갈 수 없으니 제발 이대로 두라고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머님은 한동안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며칠 분의 양식거리를 마련해 놓은 뒤 어린 딸에게 당부하게 되었다. 장만해 놓은 음식들을 엄마와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부디 간병 잘 해드리고 있으라고, 그리고 서로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만나보자고……. 산 사람을 빈 집에 놓아두고 이렇게 가슴 아픈 생이별을 하게 되다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지금 생각해 봐도 눈물겹도록 가슴아픈 추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우리가족은 부천군까지 피란을 가서 약 석 달 정도 힘든 피란 생활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석 달 후에 국군이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아! 그런데 이게 또 무슨 꿈같은 일이란 말인가!      


그동안 어쩌면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그 아주머니가 무사히 살아서 건강한 몸으로 우리보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매우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빈집에 딸과 함께 그냥 내버려 두고 가야만 했던 죄책감에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란 말인가.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에게 고마운 게 아니었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크게 다친 그 아주머니를 다른 사람들은 모른 체하고 모두 떠났지만, 우리 식구들만 남아서 그만큼 도와주었는데 아주머니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떻게 다 죽어가는 사람을 빈 집에 달랑 남겨두고 혼자만 피란을 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서운했다면서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의 동생과 같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서 두 눈에 불을 켠 채 따지며 무섭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그리고 좋은 일 해주고 뺨을 맞는다더니 고마워하기는커녕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이런 덤터기를 쓰게 될 줄을 미리 알았더라면 차라리 그때 구름다리 밑에서 죽건 말건 못본 체하고 그냥 우리끼리만 갔다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을……. 그러기에 어쩌면 좋은 일도 상대를 가려가며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그 뒤에도 몇 차례 더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따지며 입에 거품을 내며 우리 어머님과 싸우곤 했지만  난 너무 무섭기도 하고 어렸기 때문에 그때마다 옆에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목숨은 파리의 목숨처럼 약하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모질게 질기기도 한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아주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90세까지 장수하다가 운명하였다.( * )  


                                   -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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