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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14. 2022

추억의 '펜팔’ (1)

[라디오 방송을 통해 펜팔이 시작되다]

오래전, 한때는 펜팔활동이 한창 유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펜팔이란 말은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은 눈부신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펜팔이란 말은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 기억의 저편으로 멀리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    

  

펜팔이란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 미지의 상대와 서로 편지를 이용하여 친분을 쌓고 사귀던 일을 일컫는 말로 젊은 남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였다.      


이 펜팔은 전혀 상대방을 서로 모르는 동성 간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주로 이성 간의 사귐을 원할 때 이 방법이 가장 많이 이용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명 많은 사람들이 연애편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960년대 초, 나는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주부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 프로그램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우리 집뿐만이 아니었다. 60여 호나 되는 우리 시골 마을에 라디오가 있는 집은 단 한 집뿐이었다.     

 

라디오가 있는 그 집은 라디오를 가진 죄(?)로 매일 방송이 시작될 때마다 라디오를 듣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TV가 처음 나올 때만큼이나 문전성시를 이루곤 하였다. 그러기에 그 집은 매일 찾아오는 불청객들을 쫓아낼 수도 없고 몹시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라디오를 듣기가 어려운 시절에 어느 날,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랫마을 낮은 뒷산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대형 스피커 하나를 매달아 놓고 온동네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매일 라디오 방송을 들려주게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동네 이장과 마을 사람들의 힘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 스피커는 워낙 성능이 좋아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잘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스피커는 KBS 라디오 한 가지 방송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 라디오 방송국은 오직 남산 산기슭에 오직 KBS 라디오 방송국 한 곳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늘 그랬듯 그날도 나는 매일 오전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주부시간을 동냥으로 얻어듣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은 늘 여성 아나운서가 곱고 차분한 목소리로 진행하고 있었으며 중간중간 조용한 음악도 흘러나오고 주부들이 익혀야 할 여러 가지 상식도 방송되고 있어서 주부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들을만한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또한 그 방송이 끝날 때마다 마지막에는 으레 전국의 청취자가 보낸 많은 사연들 중에서 하나를 선정하여 남성일기라는 이름으로 그 편지를 진행자가 직접 낭독해 주곤 하였는데 갖가지 사연들이 너무 재미도 있기도 하고 또한 흥미로웠다.    

   

그리고 남성일기를 낭독하기 전에는 으레 아나운서가 그 사연을 보내준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꼬박꼬박 소개하고 낭독해 주었다. 그리고 일기 낭독이 끝난 뒤에도 다시 한번 주소와 이름을 되풀이해서 불러주곤 하였다. 남성일기를 낭독해 주는 소요 시간은 약 5분 안팎 정도가 아닌가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주부시간을 애청하며 즐기던 어느 날, 아마 그때는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이미 전역을 한 해였으니까 1964년 경이 아닌가 기억하고 있다.      


난 문득 남들이 쓴 일기를 계속 듣기만 할 게 아니라 나도 사연을 하나 써서 소개가 된다면 얼마나 영광일까! 하는 부질없는 욕심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욕심이 생기자 나는 곧 그동안 취미로 낙서 비슷하게 써두었던 여러 가지의 글들 중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글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는 그 글을 원고지에 정성껏 정리를 해서 우편을 통해 장난삼아 방송국으로 우송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뒤로 무슨 일 때문인지 방송국에 투고했다는 일을 까맣게 잊은 채 한동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꿈같은 기적이란 말인가!      


어느 날, 밖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급히 뛰어나갔다. 알고 보니 늘 우리 마을을 자건거를 타고 다니며 편지를 배달하고 있는 낯익은 집배원 아저씨가 나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마음에 얼른 봉투부터 살펴보니 방송국에서 등기 우편이었다. 난 뛸 듯이 기쁜 마음에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뜯어보니 얼마 전에 내가 보낸 사연이 방송되었다며 그 속에는 소액환도 함께 동봉해 있었다. 그때 소액환에 적힌 액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언제든지 우체국에 가면 현금과 교환해 준다고 하였다.      

비록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내가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아보기는 이번이 난생처음이며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몹시 아쉽기도 하였다. 그 곱고 청아한 여성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낭독을 하는 소리를 직접 들어봤다면 더욱 좋았을 것을……!     


본격적인 펜팔이 시작되다     


그런데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얼마 뒤부터는 더욱 깜짝 놀랄만한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송이 나간 것만 해도 감지덕지 했는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방송으로 내 사연을 들은 전국의 여성 청취자들로부터 펜팔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완전히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나에게 주어진 뜻밖의 놀라운 보너스며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너무나 설레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벌써부터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하며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아마 편지를 보낸 그 여성들은 틀림없이 방송이 흘러나올 때마다 필기도구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주소와 이름을 소개할 때 재빨리 적어 놓았다가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이름과 주소를 기억했다가 편지를 쓰기에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 뒤부터 본격적인 펜팔이 시작되면서 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 * )      



                         -다음 회에 다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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