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다리 붕괴 사건

-제1화-

by 겨울나무

1950년 6월.

그해에는 초여름부터 유난히 가뭄이 극심하였다. 가뭄이 너무 심해지자 그 누구보다도 근심과 시름이 많아진 것은 농민들이었다. 그나마 겨우 심어놓은 모가 하루가 다르게 마르며 빨갛게 타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포기가 날마다 하루가 다르게 새빨갛게 타서 말라 죽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의 가슴속도 새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날마다 들판으로 달려가서 각자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그것도 손바닥만한 그늘조차 없는 땡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고된 작업이었다.


물을 퍼서 논에 대는 고된 일은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잠깐이라도 물을 대는 일을 멈추게 되면 모가 모두 말라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물 한 방울이라도 더 퍼 올리기 위해 집집마다 그야말로 물푸기 전쟁으로 혈안이 되다시피하고 있었다.


논에 물을 댈 때는 방법은 수리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대부분 논바닥 한 귀퉁이에 깊은 웅덩이를 파놓고 웅덩이에 고인 물을 퍼내는 힘든 일이었다.

대부분 물을 푸는 방법은 집집마다 네모로 생긴 큼직한 알루미늄으로 된 새우젓 통에 끈을 네 개 매달고 양쪽에 마주 서서 물을 퍼서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나마 용두레가 있는 집은 용두레로 푸는 집도 드물게 보이기도 하였다. 장대처럼 길게 생긴 막대기 끝에 큼직한 바가지를 매달고 그것으로 한 바가지씩 물을 퍼 올리는 집도 있었다.

심지어는 집에서 쓰던 두레박을 가지고 나와 물을 퍼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물을 풀 수 있는 수단이란 수단은 모두 동원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무심하게 그토록 갈망하는 비 한 방울 내려주지 않았다.

그런 극심한 가뭄이 여러 날 동안 지속되고 있던 중 1950년 그해 6월 25일 의 아침 아침 해가 떠올랐다.

난 그날 마침 이웃집 마당에 가서 동네 아이들이 구슬치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몸이 쇠약해서 아이들과 한데 어울리지는 못하고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어린 나이였다.


”우르릉, 쾅! 우르릉 꽈다당!“

그때 멀리 임진강 북쪽에서는 난데없이 간간이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고향 마을에서 임진강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0Km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낯익은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 여기서 놀고 있었구나. 어서 집으로 가서 먹자꾸나.“


아버님은 나를 보자마자 나의 손을 꼭 잡으셨다. 보나마나 아버님은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들판에 있는 논으로 물을 푸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버님의 표정이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아버님의 얼굴에는 연신 활짝 핀 웃음꽃이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나를 향해 물으셨다.


”너도 저 소리 들리지? 북쪽에서 들려오는 저 천둥소리 말이야. 오늘은 아마 그토록 기다리던 소나기라도 퍼부을 모양이다.“

난 그제야 아버님의 표정이 밝아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천둥소리가 들려오자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북쪽에서는 여전히 천둥소리가 ‘우르릉 쾅’ 소리를 내면서 아까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요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식구들과 같이 아침을 먹었다. 천둥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금방이라도 곧 소나기가 퍼부을 것만 같은 조급한 마음에 아버지는 하늘만 자꾸 바라보고 계셨다.

그런데 조금 뒤의 일이었다. 동네 가운데로 뚫린 한길 쪽에서는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끔 ‘음메에~~’ 하는 소의 울음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소리지?“

갑자기 밖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소리가 왁자지껄하며 들려오자 아버지는 무슨 일일가 하도 궁금한 마음에 바깥마당으로 뛰쳐나가셨다. 그리고는 곧 안을 향해 소리치셨다.

”어서들 밖으로 나와 보렴!“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우리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까닭인지 마을 앞 논배미 건너 커다란 한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어 너도 나도 남쪽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도, 그리고 길마 위에 짐을 가득 실은 소들도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게에 짐을 잔뜩 걸머지고 가고 있었다. 아낙네들 중에는 아기를 등에 업고 머리에는 짐을 이고 가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거기다 무거운 짐을 양쪽 손에 들고 힘겹게 걸어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구경을 하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둥그렇게 된 눈으로 그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누나가 아버님을 향해 물었다.


”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딜 저렇게 가고 있는 거죠?“

”글쎄다. 아무래도 내가 저 사람들한테 가서 알아봐야 되겠구나.”


아버지는 대답을 끝내기가 무섭게 곧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는 한길을 향해 부리나케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되돌아오더니 잔뜩 겁이 난 표정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이거 큰일 났다. 글쎄 전쟁이 났다는구나, 전쟁이 났대! 지금 북쪽에서 인민군들이 쳐들어오고 있어서 저 사람들 모두가 피란을 가고 있는 거라는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어서 서둘러 피란을 가야 되겠다.”

“우르릉, 쿵! 우르릉, 쿵……!”

천둥소리는 아까보다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 알고 보니 그것은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북한에서 인민군들이 쳐들어오면서 쏘아대는 대포 소리였던 것이다. 마침내 북한군들이 불법 남침의 만행을 저지른 역사적인 6.25란 한국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곧 집으로 들어와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피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장 입어야 할 옷가지며 이불, 그리고 양식과 반찬 냄비 등 가지고 갈 수 있는 짐은 모두 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짐을 싸면서도 몹시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철이 없는 나는 공연히 신바람이 났다.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두려움을 모르고 피란을 간다는 일 자체가 마냥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난생처음으로 철이 없던 초등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피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지게에 가득 이불 등 짐을 지고, 어머니는 머리와 손에, 그리고 누나도 간단한 짐을 이거나 들고 마침내 남쪽을 향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란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파란민들이 가고 있는 뒤를 따라 무작정 정처없는 걸어가게 되었다.


나는 몸이 너무 허약해서 초등학교 1학년 내내 시오리나 되는 먼 학교를 식구들의 등에 업혀 다닐 정도로 허약한 몸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도 겨우 가까운 거리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기에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 짐도 없이 맨몸으로 식구들의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라고 하셨다. 이를테면 나에게만 특혜를 주신 것이었다.

이쪽에서도 ‘쾅!’, 저쪽에서도 ‘쾅!’

북쪽 멀리에서는 여전히 인민군들이 진격해 오며 쏘아대는 총소리들이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남쪽에서도 국군들이 후퇴를 하면서 가끔 적군을 향해 마주 쏘아대는 대포 소리들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젖을 얻어먹지 못한 아기들은 벌써부터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엄마 등에 업힌 채 계속 칭얼거리며 울어대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도 제대로 끼니를 채우지 못하고 지친 상태이니 젖이 잘 나올 리 없었다. 그러기에 아기의 배를 채워줄 방법이 없으니 그저 엄마의 속만 시꺼멓게 탈 일이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쯤 걸어가다가 어느 마을 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 마을이 바로 말만 듣던 봉일천이라는 곳이라고 하였다. 우리 식구들은 이상한 광경에 모두 겁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집집마다 불이 나서 화염에 무섭게 훨훨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이 난 어떤 집에서는 가끔 ‘딱! 딱!’ 소리를 내며 시뻘건 불덩이들이 무섭게 공중으로 날아갔다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하며 떨어지기도 하였다. 기왓장이 불에 시뻘겋게 달구어지다 못해 기왓장이 공중으로 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럼 왜 집집마다 불이 난 것일까?

그것은 우리 국군들이 후퇴를 하면서 비행기로 폭격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멀쩡한 집을 폭격을 해서 불을 놓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만일에 적군이 쳐들어 왔을 때 그 집 안에 인민군들이 숨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어서 폭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만일 적군들이 쳐들어 왔을 때 그 집에 인민군이 숨어 있는지 민간인이 숨어 있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어서 함부로 폭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집을 모두 태우고 나면 적군들이 숨을 곳이 없어서 겉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발견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은 적군들이 후퇴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6.25 전쟁 때는 멀쩡한 집이 모두 불에 타거나 폭격을 맞아서 나라가 온통 불바다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이 피란을 가던 마을 사람들 중에도 벌써부터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우리 국군이 쏜 총에 맞은 것인지 적군이 쏜 총에 맞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어쩌면 그런 경우를 가리켜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총소리와 대포 소리, 그리고 비행기 폭격 소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피란민들은 언제 그 총알이나 대포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그야말로 살얼음판 같은 위험한 상황이 매일 이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짐을 진 지게 위에 올라앉아 피란을 가고 있던 어떤 어린아이는 비행기 폭격하는 바람에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바로 굴러떨어지면서 목숨을 잃는 끔찍한 광경도 바로 옆에서 목격하기도 하였다.


☘ 수색 구름다리 붕괴 사건

우리 식구와 피란민들은 봉일천을 지나 다시 남으로 남으로 정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북쭉에서는 여전히 인민군들이 쏘아대는 포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따콩! 따콩!’ 하는 이른바 따콩총 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포함한 피란민들은 총소리와 포 소리에서 얼른 멀리 벗어나기 위해 더욱 조급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무거운 짐을 지거나 이고 가는 바람에 힘에 겨워 땅바닥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 배가 고파서 젖을 달라고 우는 아기들, 그리고 너무 걸어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쉬었다 가자고 보채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길바닥에 버티고 선 채 더 이상 못가겠다고 울며 버티는 아이, 그리고 배가 고파 죽겠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울며 보채는 아이, 그리고 연세가 많은 노인을 모시고 가는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아무래도 걸음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들은 아무 데나 그늘진 곳에 털썩 주저앉아서 젖을 먹이거나 간식(주로 주먹밥이나 개떡)을 먹이며 쉬었다 가기도 하였다.


그나마 젊고 힘이 있는 건강한 사람들은 벌써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힘이 들어도 가고 또 걸어가고…….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가는 사람들은 자연히 피란길이 자꾸만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가다가다 지쳐서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 데나 빈집이 눈에 띄면 그 집에 들어가서 쉬었다 가기도 하였다.

일단 빈집에 들어가면 그 집 세간살이를 뒤져서 집주인이 두고 간 양식을 가져가거나 아예 그 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였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모두가 피란을 갔기 때문에 그때는 텅텅 빈 주인 없는 빈집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피란 첫날, 우리 가족은 날이 어두워지자 겨우 일산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고향에서 일산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워낙 짐이 많고 날씨도 더워서 걸음걸이가 더뎠기 때문에 그것도 부지런히 간 것이 겨우 일산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수색에 도착하게 되었다. 지금은 도시개발로 인하여 모두 그때의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 마을 피란민 일행이 도착한 곳은 수색역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구름다리였다.


이 구름다리는 경의선 기찻길 위를 가로질러 놓여 있었으며 이 구름다리를 경계로 경기도 고양군과 서울특별시로 행정구역이 구분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날은 마침 잔뜩 흐린 날씨에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쪼이는 무더운 날씨보다는 훨씬 덜 지치기도 하고 걷기에도 그런대로 견딜만한 날씨였다.

구름다리에 도착한 피란민 일행들은 마침 잘 됐다는 생각에 가랑비를 피해 구름다리 밑에 지게와 짐을 내려놓고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4, 50여 명쯤 되는 피란민들은 피곤하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모든 게 귀찮다는 듯 벌렁 눕거나 혹은 앉은 채로 한창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르릉, 쾅! 우르릉 꽈다당……!”

”따콩! 따콩……!”

북쪽에서는 여전히 북한군들이 진격해 오며 쏘아대는 대포 소리와 따콩총 소리가 피란민들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구름다리 옆 큰 도로에는 무장을 한 우리 국군들이 줄을 지어 남으로 남으로 부지런히 후퇴를 하고 있었다. 쫓기며 후퇴를 하고 있는 국군들을 바라보는 피란민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그리고 신기한 듯 다리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기에 바빴다. 그때 구름다리 저쪽에서는 난생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자동차 한 대가 구름다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부릉, 부르르릉…….”


그 괴물처럼 생긴 자동차는 연신 ‘부르릉’ 소리를 내면서 마침내 다리 위로 들어서고 있었다. 더구나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때만 해도 자동차 구경하기가 극히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나 말고도 자동차 소리를 들은 아이들 모두가 호기심에 모두 다리 밑 양쪽으로 뛰어나와서 자동차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동차가 다리 위를 천천히 통과하는 모습을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며 신기한 듯 넋을 잃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동차는 얼른 보기에도 생김새가 예사 자동차와는 그 모습이 달랐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마도 트랙터였던 것으로 짐작한다. 어쨌거나 전쟁통에 무슨 일로 그런 차가 그 다리 위를 통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운전을 하는 사람이 군인이었는지 민간인이었는지도 지금도 전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트랙터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어쩌면 사람의 걸음걸이보다 더 느렸던 것 같다. 차의 속도가 그렇게 느린 바람에 더 자세히 오랫동안 구경할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구경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못했던 큰 문제가 벌어진 것은 그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자동차가 다리 중간쯤 왔을 때 그만 뜻밖의 큰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구름다리 밑에서 이토록 끔찍한 사고가 벌어질 줄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트랙터가 구름다리 위로 올라서면서부터 가끔 ‘우지직~~ 우지직~~~’하는 이상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트랙터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약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모두는 그러려니 하고 넋을 잃은 채 다리 위의 트랙터의 움직임만 넋을 잃고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들은 피란 짐을 지고 오느라고 너무 지치고 지쳤기 때문인지 다리 위에서 소리가 나건 말건 전혀 관심이 없이 그저 다리 밑에 편히 누운 채 피로에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트랙터가 천천히 다리 중간쯤에 왔을 때의 일이였다. 다리에서 ‘우지직’ 소리가 좀 더 요란스럽게 들리는가 했더니 마침내 다리가 무너지면서 트랙터와 함께 다리 밑으로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다리는 순식간에 ‘V’자 형으로 꺾이면서 다리의 중간이 트랙터와 함께 기찻길로 아래로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다리가 갑자기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무너져내리자, 다리 밑은 온통 흙먼지로 뒤덮이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다리 밑 양쪽도 온통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한동안 한치의 앞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리 위의 도로가 시멘트 포장이 아닌 흙으로 포장된 도로가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아— 어디 있어! 엄마아--!”

“××야! 엄마 여기 있어!”

“아빠아~~!”


아수라장이 된 다리 밑에서는 갑자기 서로 가족을 찾는 배명과 함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리 밑에서 쉬고 있던 어른들이나 아이들 모두가 뜻밖의 날벼락을 맞게 된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각자 가족들을 찾느라고 혈안이 된 채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비명도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 현재 전쟁으로 인해 피란을 가는 중이었지만, 전쟁도 그런 전쟁이 따로 없었다.

조금 뒤, 희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어느 정도 눈앞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피란민들 중에는 다리가 무너지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있는 것만 해도 천행으로 여기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죽으나 사나 다시 서둘러 각자 흩어져서 피란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트랙터를 운전하던 사람은 그새 어디로 갔는지 트랙터만 남겨놓은 채 어느 틈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가족들 역시 다친 사람 하나 없이 모두 무사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큰 걱정거리가 한 가지 생기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놈의 이불 보따리가 문제였다. 지게에 올려놓은 채 버티어 놓고 있던 이불 보따리가 다리가 ‘V’자 형으로 주저앉으면서 그만 다리에 깔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이불을 잡고 아무리 당겨보며 빼내려고 힘을 써 보지만 워낙 무거운 다리에 심하게 깔린 이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할 수 없이 다리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강한 막대기 하나를 구해왔다.

그런 다음 그 막대기로 이불 밑에 깔려있는 흙을 막대기로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 이불을 빼낼 수 있었다. 그제야 마음을 놓고 이불 보따리를 지게에 진 채 막 출발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으음~~ 으으음~~~아이고오~~~“

어디선가 가느다란 사람의 신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각자 흩어져서 신음 소리를 따라 여기저기 살펴보게 되었다. 아아, 그런데 그곳에는 바로 우리 고향의 옆집 아주머니가 쓰러진 채 신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옆집 아주머니가 다리 밑에 앉아 쉬고 있다가 다리가 무너질 때 그만 머리를 맞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정신을 잃은 채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하고 쓰러져 누운 채 이따금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리면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옆에는 열 살쯤 된 아주머니의 딸이 갓난아기 동생을 업은 채 쪼그리고 앉은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덩달아 울고만 있었다.

”허어, 우리끼리 그냥 갈 수도 없고 이거 큰일이로구먼!“

아버지가 다가가서 아주머니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주머니는 전혀 의식을 잃은 듯 아무 반응이 없이 여전히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두 눈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음은 조급한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우리와 함께 피란을 가던 마을 사람들은 이미 모두 떠나고 다리 밑에는 오직 그 아주머니와 딸, 그리고 우리 식구들 밖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란길이 급한데 크게 다쳐서 누워있는 아주머니를 그대로 모른 체하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님은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던 끝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디론가 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달려간 곳은 구름다리 위였다. 그때 마침 구름다리 옆 양쪽 도로에는 무장을 한 국군들이 이열종대로 남쪽으로 뛰다시피 급히 후퇴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막다른 일에 다다르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던가. 아버님은 국군들에게 뛰어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구원을 청했던 모양이다.


잠시 뒤, 하늘이 도왔는지 두 명의 국군이 급히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려왔다. 팔에는 위생병이라는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곧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아주머니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재빠른 동작으로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이분 모르긴 해도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같습니다.“


위생병들은 서둘러 약을 바르고 머리를 하얀 붕대로 잔뜩 감아주며 응급처치를 끝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주고는 다시 급히 그들의 대열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그러자 그다음부터가 더욱 문제였다. 이렇게 심하게 머리를 다쳐서 정신까지 잃은 사람을, 게다가 조금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자 아버지가 이번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근처에 있는 어느 집 울타리 쪽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는 울타리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하나 잘라왔다. 낫 같은 연장이 없어서 제대로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몸이라도 의지할 수 있도록 그 나무로 임시 지팡이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그 아주머니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지팡이를 손에 쥐어주었다.


아주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양쪽에서 부축을 해서 지팡이를 짚고 한 발 두 발 조금씩 내딛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거운 짐보따리를 실은 지게를 진 채, 그리고 어머님 역시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부축을 하고 있었으니 그때의 힘든 상황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나마 아직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을 그대로 버려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고 보니 우리 부모님의 마음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으리라.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렇지만 더욱 힘이 드는 것은 아주머니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걷기가 너무 힘에 겹고 고통스러움을 견디다 못해 애원을 하듯 가끔 이런 말을 되풀이하곤 하였다.

”제발 날 이대로 버려고 그냥 가도록 해요. 제발!“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마 이대로 길바닥에 버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부축을 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계속해서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쉬고 조금 가다가 다시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가까운 거리를 가기에도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답답할 정도로 느린 걸음으로 조금씩 걷다 보니 얼마 못 가서 날은 이미 또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환자도 환지이지만 모두가 지치고 지쳐서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어느 외딴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빈집이었다.


우린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그 집으로 들어간 다음 무거운 짐을 풀었다. 그런 다음에는 우선 아주머니를 아랫목에 편안히 눕히고 빈집 살림을 여기저기를 뒤져서 양식을 찾은 다음 저녁밥을 간단히 준비하여 허기진 배를 채우게 되었다.


”으으음, 으음~~~“

아주머니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듯 아까보다 점점 더 신음 소리가 잦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급히 따로 장만해서 떠 먹여주는 미음을 그나마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런 힘겨운 상황에서 악몽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어느새 이튿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이 밝자 다시 피란을 서둘러야만 했다. 북쪽에서는 계속 적군들이 진격해 오고 있는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피란을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그대로 그 집에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어서 마음만 더욱 조급하고 불안했다.

”난 더 이상 갈 수가 없으니 이대로 두고 먼저 어서들 가라니까요.“

아주머니는 약간 정신이 들었는지 이제 절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며 우리 식구들만 먼저 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죽으나 사나 그 집에 그대로 남아 누워있겠다고 하였다.

그럴 수는 없다며 억지로라도 힘을 내서 같이 가보자고 몇 번이고 말해 보았지만 절대로 갈 수 없으니 제발 이대로 두고 가라고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상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며칠 분의 양식거리를 마련해 놓은 뒤 어린 딸에게 당부하게 되었다. 장만해 놓은 음식들을 엄마와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부디 간병 잘 해드리고 있으라고, 그리고 서로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만나보자고…….

산 사람을 빈 집에 버려두고 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되다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지금 생각해 봐도 눈물겹도록 가슴아픈 추억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할 수 없이 아주머니와 딸을 그 집에 남겨둔 채 다시 피한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부천군까지 피란을 가서 약 석 달 정도 힘든 피란 생활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석 달 후에 국군이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아! 그런데 이게 또 무슨 꿈같은 기적이란 말인가!

그동안 어쩌면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그 아주머니는 그게 아니었다. 걱정했던 아주머니는 무사히 살아서 건강한 몸으로 우리보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매우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빈집에 딸과 함께 그냥 내버려 두고 가야만 했던 죄책감에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란 조금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크게 다친 그 아주머니를 다른 사람들은 모른 체하고 모두 떠났지만, 우리 식구들만 남아서 그만큼이나마 도와주었는데 아주머니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떻게 다 죽어가는 사람을 빈집에 달랑 남겨두고 혼자만 피란을 갈 수 있었느냐고 오히려 섭섭해 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기에 아주머니는 우리가 고향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의 동생과 같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다. 그리고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무섭게 삿대질까지 하면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그리고 좋은 일 해주고 뺨을 맞는다더니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런 경우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일이었다.

이렇게 원망을 들을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그때 구름다리 밑에서 죽건 말건 못본 체하고 그냥 우리끼리만 갔다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을……. 그러기에 어쩌면 좋은 일도 항상 상대를 가려가며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그 뒤에도 몇 차례 더 심심하면 우리 집으로 와서 입에 게 거품을 물고 나의 어머니와 큰소리로 따지며 싸우곤 했지만, 난 어리기도 하고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그때마다 옆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구경만 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인간의 목숨은 때론 파리의 목숨처럼 약하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모질게 질기기도 한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아주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90세까지 장수하다가 운명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