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1950년 6월 25일 새벽,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그날, 우리 남한의 온 국민들은 모처럼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북한군은 갑자기 기습적이며 돌발적인 불법 남침을 감행해 왔다.
이로 인하여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 국군은 뜻하지 않은 그들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파죽지세로 후퇴를 거듭하다가 결국 국가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될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였다. 마침 국제연합군과 우리 해병대는 맥아더 장군의 지휘하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용기와 힘을 얻은 우리 군과 유엔군은 순식간에 38선을 돌파하고 압록강과 함경남도 남쪽까지 진격하게 되자 국토 통일은 곧 눈앞에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해 10월, 중공군(중국 인민지원군)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압록강을 건너오면서 전쟁에 개입하게 되자 11월에는 국군과 유엔군이 이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군은 중공군들의 인해전술을 감당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속절없이 후퇴를 거듭하다가 그 이듬해 1월 4일에는 결국 안타깝게도 서울에도 철수 명령을 내리게 되었으며 그것이 곧 이른바 1.4후퇴였던 것이다.
국군과 유엔군들이 적군에게 밀려 후퇴를 하게 되면 그에 따라 민간인들도 덩달아 국군들의 뒤를 따라서 피란을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마을 주민들 역시 6. 25 전쟁으로 인해 이미 한 차례 피란을 갔다가 얼마 전에 고향으로 돌아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집과 세간살이가 모두 폭격을 맞거나 불에 타버리고 말았지만, 그리고 비록 춥고 배고프긴 했지만 그런대로 죽지 못해 겨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서너 달도 되지 않아 마을에는 다시 청천벽력과 같은 흉흉한 소문으로 떠들썩하기 시작했다.
“또 피란을 가야 한 대요, 피란을!”
“아니 뭐야? 피란을 가야 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글세 이번에는 중공군들이 떼로 쳐들어와서 국군들이 후퇴를 하고 있대요.”
마을 사람들의 떠들썩했던 소문은 정확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들의 인해전술을 견디다 못한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후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1.4후퇴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서둘러 너도나도 피란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동설한에 다시 두 번째 그 지겹고 고통스러운 피란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지난번에 첫 번째 피란을 갈 때 그런대로 경험을 해보아서 그런지 피란 보따리를 싸는 일, 그리고 피란을 다니는 일이 먼젓번보다 훨씬 익숙하고 수월해진 듯했다.
전쟁이 끝난 한참 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란 가수 현인이 부른 대중가요 노랫말처럼 아닌 게 아니라 1.4 후퇴를 하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길을 걸어갈 때는 가끔 찬바람에 눈보라까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흩날리곤 하였다.
우리 가족이 피란 보따리를 지고 먼저 가야 할 1차 목적지는 서빙고 나루였다. 그때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라고는 오직 한강 인도교(지금의 한강 대교)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한강 인도교는 이미 지난번에 폭격으로 인해 끊어졌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오직 나룻배를 이용해야함 했다. 그러기에 서빙고 나루로 가서 배를 타고 건너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겨우 초등학생 2학년인 어린 나이에 워낙 입이 짦기도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종일 굶어도 배고픈 줄을 몰랐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먹을 것이 없어 너도나도 배고픈 시절에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너무나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낸 것 같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커녕 피란을 다닐 때 너무 많이 걷는 일이 몹시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런 피란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마치 어미 개를 따라다니는 어린 강아지처럼 부모님이 가자는 대로 그저 아무 말 없이 쫄랑쫄랑 잘 따라다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경기 북부인 내 고향 시골에서 서빙고 나루까지는 약 2백 리가 훨씬 넘는 먼 거리였다. 워낙 먼 거리여서 이른 아침부터 피란 길에 올라 종일 걷다 보니 중간쯤에서 이미 하루해가 지고 말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어느 빈집이 나타나기에 그 집으로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우잠으로 때우고 그다음 날 다시 아침부터 또 걷기 시작했다. 전쟁 때는 어느 집이나 막론하고 집주인이 이미 피란을 가고 비워진 집은 누구나 내 마음대로 들어가서 쉴 수 있어서 내 집과 네 집이 따로 없던 시절이었다.
그해 겨울은 눈보라가 자주 휘날리는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따금 눈도 자주 내리고 있었다. 그런 날씨였지만 걷고 또 걷다 보니 저녁때가 되어서야 이윽고 말만 들은 서빙고 나루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난 그때까지 시골에서만 살던 우물 안 개구리여서 서울이라고는 단, 한 번도 구경조차 못했기 때문에 서울의 지리는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버지는 용케도 서울 지리를 어느 정도 잘 알고 계셨다.
참고로 그 당시의 서빙고 나루는 지금의 반포대교와 동작대교 사이에 위치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강을 건너 바로 오른쪽에는 국립현충원이 있으며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가면 흑석동, 그리고 노량진이 위치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또 물어가면서 이윽고 서빙고에 도착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버지가 갑자기 등에 지고 있던 지게를 길바닥에 내려놓으며 우리 식구들에게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혼자 부지런히 걸어갔다가 금방 되돌아오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룻배 편을 알아보러 갔다가 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매우 절망적이면서도 낙심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리듯 입을 여셨다.
“이런 낭패가 다 있나! 아, 글쎄 그저께까지는 서빙고 나루에서 배로 강을 건넜다는데 그다음 날부터 이틀동안 강추위로 인해 갑자기 한강에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지 뭐야. 그래서 현재로서는 배로 건널 수 없게 되었다니 이를 어쩌지!”
짧기만 한, 겨울해도 이미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고 상황이 그런데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일단 서빙고 부근 어느 빈집을 찾아 들어가서 하룻밤을 또 묵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탕! 탕! 탕……!"
"쾅! 콰다당, 쾅……!"
북쪽에서는 여전히 중공군과 인민군들이 진격을 해오면서 쏘아대는 총소리와 대포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국군들이 이에 대항하면서, 그리고 계속 후퇴를 하면서 마주 쏘아대는 총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다음 날 아침이 다시 어김없이 밝았다.
어느 빈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은 보낸 우리는 다시 짐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서빙고 나루를 향해 걸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한강에는 이미 피란민들이 띄엄띄엄 얼음판 위를 걸어 건너가고 있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리고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배로 건너던 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틀 동안 얼어버린 얼음 위로 강을 건너고 있다니……! 그 한가지 일만 보아도 그해에 얼마나 강한 한파가 왔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리는 서빙고 나루 강가로 가까이 가서 얼음판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동안 눈이 많이 내려 사방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는 얼음판 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고 있는 한강 물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강바닥까지 마치 거울을 보듯 선명하게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미 얼음판 위를 띄엄띄엄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줄을 이어 계속 건너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음판 위에서 발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요란스럽게 ‘짱짱!’ 소리를 내며 얼음판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얼음장이 깨져내릴 듯 위태로운 느낌에 몹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북한군들이 쳐들어오면서 쏘아대는 총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기에 적군들의 총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음판이 곧 깨져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강을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진퇴양난인 기로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금 뒤, 얼음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치 고무로 만든 다리처럼 사람이 얼음 위를 건너갈 때마다 쑥 들어갔다가 올라왔다를 반복하며 얼음판이 마치 파도를 치듯 출렁거리고 있었다.
얼음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다는 위험한 생각에 피란민들은 같은 가족이라 해도 되도록 한두 사람씩 따로따로 떨어져서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고 건너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아이들이나 남자 어른들은 그런대로 겁을 내지 않고 성큼성큼 익숙하게 잘 건너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렇게 잘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썰매를 많이 타던 시절이어서 그나마 얼음 위를 다니는 일에 익숙해진 덕을 톡톡히 보게 된 것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이나 아낙네들은 그게 아니었다. 특히 아기를 업고, 그리고 무거운 보따리까지 머리에 이고 건너가던 아낙네들은 하나같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쩔쩔매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그리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불과 몇 발자국을 걸어가다가 뒤돌아 뛰어나오는 아낙네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얼음장이 쑥 들어갔다 나오곤 하는 바람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남자들보다는 평소에 얼음판 위를 걸어본 경험이 적었던 것도 그런 원인 중의 하나였으리라.
드디어 이번에는 우리 가족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런 얼음판 위를 건너갈 차례였다. 머리에 무거운 짐을 잔뜩 인 어머니와 나, 그리고 누나가 먼저 따로따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갓난아기를 업은 어느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쩔쩔 매면서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출렁거리는 얼음판 위에서 몸의 균형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한 걸음 두 걸음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의 간격이 가까워지자 겁이 났는지 갑자기 내 어깨를 잡게 되었다. 그러자 마침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몹시 화가 난 목소리로 펄쩍 뛰면서 그 아주머니를 향해 무섭게 소리치고 있었다.
"남의 애를 왜 죽이려고 왜 어깨를 잡아요? 둘다 죽지 않으려면 당장 그 손을 놓고 좀 멀리 떨어져서 건너가도록 해요!"
어머니의 무서운 불호령 소리에 그만 질겁을 해서 놀란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잡았던 손을 얼른 놓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몹시 겁먹은 표정으로 곧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좀 멀리 떨어져서 걷게 되었다.
앗! 그런데 바로 그다음 순간이었다.
갑자기 '우지직,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장이 깨지면서 조금 전의 그 아주머니가 그만 아기를 업은 채 얼음장 밑으로 그대로 가라앉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물이 너무나 맑고 깨끗했기 때문에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물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내려가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연신 두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물속 깊이까지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참혹한 모습도 생생하게 눈에 보였다.
지금까지 피란을 다니면서 총이나 비행기 폭격을 맞아 길바닥에 쓰러져 죽은 사람들은 가끔 보게 되었다. 하지만 얼음이 깨지면서 산 사람이 등에 업은 아기와 함께 생으로 물속에 빠져 죽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하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나 때문에 그 아주머니가 그런 비참한 최후를 당하게 된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어린 나이었음에도 그 후에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그 광경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겁고 아프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일단 한강 중간에 있는 모래톱까지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천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강 가운데 있는 모래톱까지만 무사히 다다르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모래사장이어서 한강을 건너가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그야말로 천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강가에서 모래톱까지의 거리는 약 7, 80미터쯤 되는 거리였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린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제야 편한 마음으로 뒤를 바라보게 되었다.
피란민들은 아직도 우리가 건너온 그 위험한 얼음판 위를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둘씩 속속 건너오고 있었다. 적군들이 진격을 하면서 쏘아대는 대포와 총소리들은 점점 더 가까이 요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적군들이 이미 서울까지 쳐들어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우리 아군의 폭격기 몇 대가 아까부터 한강의 얼음판 위에 낮게 떠서 마치 매가 공중을 배회하듯 빙빙 계속 맴을 돌고 있었다. 적군들이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오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얼음에 폭격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당장이라도 곧 폭격을 가할 기세로 여전히 얼음판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있던 우리 식구들은 순간 또다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 식구만 먼저 간신히 무사히 건너온 뒤에야 아직 아버지가 건너오지 못한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아! 이런 변이 또 생기다니!’
얼음이 곧 깨져 풍덩 빠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만 신경을 쓰다가 미처 아버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같은 가족이지만 각자 자기만이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집중하다가 아버지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건너온 저 건너 편 강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아직도 무거운 짐을 잔뜩 등에 진 채 강가 이곳저곳을 헤매며 정신없이 허둥거리고 계신 것이 아닌가.
특히 강가에 얼었던 얼음은 이미 녹아버린 상태였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등에 진 짐도 무거웠지만 강가 가장자리에 얼었던 얼음은 발을 딛기가 무섭게 깨지곤 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아예 얼음판에 발을 한 발도 디딜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허둥거리고만 계셨던 것이다.
한동안 울상이 되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우리 남매를 향해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안 되겠다. 내가 다시 건너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아버지와 같이 건너와 볼 테니 혹시라도 아버지와 내가 강에 빠져 죽게 되면 너희들끼리 어디라도 가서 죽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너희들 그럴 수 있지?”
“……?!”
누나와 난 멋도 모르고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여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머니의 그 말씀 한마디가 영영 부모를 잃는 마지막 작별의 순간이 되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칫하면 부모를 한꺼번에 잃게 된 순간인데도 별로 겁도 나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라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강물에 빠져 돌아가시게 되면 그때는 별수 없이 누나를 의지하며 같이 살아가겠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세상 일을 모르는 철부지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음이 다 녹은 강을 건너 용케도 우리가 금방 건너왔던 강가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셨다. 우리 두 남매는 멀거니 서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건너오시게 될까 하는 걱정을 하며 바보처럼 멀거니 강 건너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보가 아니라 해도 그럴 수밖에 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위험한 얼음판 위로 강 건너까지 재빨리 달려간 어머니는 일단 아버지가 진 지게를 얼음판 위에 눕혀서 내려놓게 하였다. 그리고는 짐을 실은 지게에 우선 밧줄을 단단히 묶어 맸다.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그 밧줄을 잡고 앞에서 끌고, 어머니는 작대기를 지게에 대고 힘껏 밀며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아버지가 끌고, 어머니는 뒤에서 작대기로 지게를 힘껏 밀면서 빠른 동작으로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우리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속도가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속도가 빠르다 해도 지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얼음은 심하게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음판이 곧 깨지면서 모두 가라앉을 것만 같은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누나와 나는 그제서야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여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피를 말리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뒤, 하느님이 도왔는지 신이 도왔는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물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우리 곁으로 달려오게 되었다. 그러자 우리 식구들 모두 는 그제야 안도의 긴 한숨을 쉬게 되었다.
“아, 이제 우리 모두 살았구나!”
어머니는 갑자기 우리 남매를 꼬옥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감정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의 눈에서도 어느 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평소에 여간해서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아버지였었는데…….
누나와 나는 여전히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모르고 그저 얼떨떨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아직도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제정신을 찾지 못하신 것 같았다.
하마터면 누나와 나는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고아 신세가 될 뻔한 불행한 위기를 천만다행으로 무사히 넘긴 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이 그렇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뜨르르륵~~~ 꽈다다당~~~~”
지금까지 얼음판 위에서 빙빙 맴을 돌며 기회만 보고 있던 폭격기가 마침내 얼음판을 향해 일제히 폭격을 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폭격하는 광경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매우 요란스럽고 무서운 폭발음이 한강이 온통 떠나갈 듯 뒤흔들고 있었다.
요란한 폭격 소리와 함께 얼음장들이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한강을 덮고 있던 얼음장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며 공중으로 날아가고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다시 못볼 비참한 꼴을 보고야 말았다. 몇 명쯤인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뒤늦게 얼음판을 아슬아슬하게 건너오고 있던 피란민들이 그만 비행기 폭격에 의해 안타깝게도 모두 강물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며 생주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우리 가족은 참으로 운이 좋은 편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가족들도 조금만 더 늑장을 부리고 지체를 했더라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슬아슬하면서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로 이처럼 끔찍한 일이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우린 그제야 다시 벌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모래톱에서 짐을 챙긴 다음 피란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한강 모래톱 여기저기에는 그동안 여러 날 내린 눈들이 바람에 날리며 한데로 모이고 쌓여 어떤 곳은 무릎 위까지 찰 정도로 푹푹 빠졌다.
그런데 그때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안 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차고 계셨다.
“쯧쯧쯧……. 어이구,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거 이대로 얼어 죽게 생겼으니 가엾어서 어쩌면 좋으냐!”
어머니는 곧 머리에 이고 있던 보따리를 잠시 내려놓더니 울상이 된 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갓난아기였다. 어느 엄마가 버리고 갔는지 아기를 포대기에 둘둘 두른 아기가 쌓인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아기는 울지도 않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우리 가족들을 보자 밝은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기의 포대기 앞섶에는 아주 작은 감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삶은 감자였다. 배가 고플 때 먹으라고 놓고 간 것 같은데 아기 혼자 집어서 먹을 수도 없은만큼 아기가 너무 어렸다. 아마 아기의 엄마가 피란을 가다가 너무 힘에 겹고 지쳐 그만 아기를 버리고 간 것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
그 뒤에도 확실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눈 속에 버려진 아기를 두어 명은 더 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오죽 배고프고 견디기 어렵고 힘이 들었으면 자신이 낳은 귀여운 아기를 저렇게 버리고 갔을까!
난 언젠가 너무나 가슴 아팠던 추억이기에 어느 젊은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여성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내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 부정하고 있었다. 아니 부정 정도가 아니라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은 다시는 꺼내지도 말라고 펄쩍 뛰고 있었다. 그리고거런 거짓말은 듣기조차 싫다며 그 뒷이야기는 더 이상 들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난 모처럼 그 이야기를 한번 꺼냈다가 그만 뜻밖의 무안만 당하고 만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이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또 얘기해 봤자 그때처럼 다시 거짓말이라는 오해와 핀잔을 듣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여성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로 당장 거짓말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또한 내 이야기를 절대로 믿지 않고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여성들의 심정 역시 백번 이해가 가고 남음이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몸을 모두 바쳐서라도 자식 하나만은 반드시 살려보겠다는 강한 희생정신과 모성애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어머니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전쟁 때 아기를 버리고 갔던 그때의 어머니들의 심정도 한번쯤은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생각이다. 실제로 그런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이야기 해봤자 그대로 믿거나 이해해 주지 못할 것이 뻔할 것이라고 짐작해 보게 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모성애와 살신성인 정신을 발휘하여 기차나 자동차에 치여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한 자식을 간신히 살려내고 그 대신 어머니가 목숨을 잃게 된 안타까운 사건이 얼마나 많던가.
또한, 내 몸의 일부를 떼어서라도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거룩하고 고귀한 정신을 가진 어머니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모든 일들이 순간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전쟁은 그런 상황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힘에 겨워도 약 한 달이나 두 달만 견디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실한 보장만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아기를 버릴 어머니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지독하도록 강한 모성애와 거룩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가면서라도 견디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이 없는 전쟁으로 인해 그때 어머니들은 이미 몇 달 또는 몇 년째 굶주림과 추위와 고된 피란살이에 지쳐 언제 자신도 죽게 될지 모르는 몸이고 내 몸 하나 지탱하고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지친 상태였으리라.
우선 엄마가 먹지를 못해 젖은 나오지 않아 아기에게 먹일 젖도 안 나오는 지치고 지친 상태에서, 그리고 언제 폭격을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기를 끝가지 몸에 품고 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들 모두가 다 그처럼 아기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남달리 가뜩이나 지치고 지친 몇몇 어머니들은 다른 어머니들이 버린 아기를 보는 순간, 순간적으로 충동심리 내지는 군중 심리라는 게 발동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뜩이나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남들이 버리고 가는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도 순간적으로 버릴 수밖에 없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도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질책을 할 수 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난 지금 아무런 항변을 할 수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때 그 생생했던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놓았거나 그 밖에 다른 증거가 내겐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까 지금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남아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