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1951년 1월 초 몹시 추운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한번 피란을 갔다가 돌아와서 고향에 정착한 지 겨우 서너 달도 되지 않아 다시 피란길에 오르게 되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개입으로 인해 국군과 유엔군들이 안타깝게도 다시 후퇴를 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1.4후퇴를 하게 된 것이다.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한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앞을 다투어가면서 서둘러 그 지겹고 힘든 피란길을 다시 오르게 되었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피란이었다.
그 추운 날씨임에도 피란민들은 가다가다 힘들고 시장할 때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집에서 미리 준비해 온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였다.
음식이라고 해야 주로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이란 밥에 깨소금을 조금씩 섞어서 단단하게 뭉친 밥이었다. 평소에 주전부리나 간식으로 먹던 장떡과 개떡도 허기를 채우는데 큰 몫을 차지하였다. 그나마 그런 것들도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었다. 우리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네 식구가 그렇게 고생을 하며 거의 1주일 동안이나 걷고 또 걸어서 가게 된 곳은 경기도 부천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천군 소래면 은행리였다. 그곳은 먼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이었으며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곳에 가서 살면 그나마 안전할 것이라는 말에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이번에도 이미 여러 곳에서 먼저 온 피란민들이 그 집에 와서 북적거리며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리 가족도 그 집에서 여러 가족들이 함께 부대끼며 살게 되었다.
여러 명이 한 집에서 살다보니 불편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그러려니 하고 지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불편한 것은 밤에 잠을 잘 때 잠자리가 가장 힘들고 고역이었던 것 같다.
말이 좋아 2칸짜리 방이지 옛날 2칸 방은 요즈음의 2칸 방보다 훨씬 비좁았다.
그런 좁은 방에서 매일 무려 40명 안팎의 피란민들이 같이 잠을 잔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번 사람들이 누워있는 틈을 쑤시고 들어가 누우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꼭 끼어서 좀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번 옆으로 누웠다 하면 바로 눕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혹시 밤에 용변이라도 보기 위해 어쩌다 한번 밖으로 나왔다 하면 좀처럼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내 자리를 찾아 눕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끼여 자고 있어서 방금 전에 내가 누웠던 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용변을 보고 싶어도 되도록 이튿날 아침까지 꾹 참아보기도 하였다. 소변을 참는다는 일은 정말 고역 중에 가장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런 나날은 매일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저런 여러 가지 고생을 하며 두어 달을 그곳에서 지내다 보니 다시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군이 다시 북진을 하며 진격해 온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주둔해 있던 인민군들도 속속 북쪽을 향해 후퇴를 하고 있었다.
국군이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과 피란민들은 다시 서둘러 짐을 싸서 너도나도 고향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마침내 그 지겨운 피란 생활을 끝내고 고향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다음 날 어디쯤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그 마을 어귀에는 뜻밖에도 팔에 흰 완장을 두른 청년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피란민들을 일일이 붙잡아 세우고 검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팔에 흰 완장을 두르고 있는 청년은 이른바 그 당시 기세등등했던 좌익 단체인 민청이었다. 민청이란 소위 ‘북조선 민주청년동맹'의 줄임말로 북한군들이 임명한 북한의 앞잡이었던 것이다.
민청은 서슬이 전혀 감정이 없는 험악한 표정으로 피란민들의 짐을 이를 잡듯 샅샅이 풀어헤치며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청 바로 옆에는 따발총을 든 인민군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서슬이 시퍼렇게 된 채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혹시 피란민들 중에 누군가가 도망을 가거나 조금이라도 서투른 짓을 하면 금방이라도 사살시킬 것만 같았다.
우리 식구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이제는 별수 없이 죽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지레부터 사색이 되고 말았다.
우리 식구들이 이렇게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짐 보따리 속에 태극기와 도민증을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것이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물어보나마나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감이었음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민증'이란 요즈음 '주민등록증'과 똑같은 신분증을 의미한다. 그 당시에 도민은 도민증, 그리고 시민은 시민증을 발급해 주었던 것이다.
또한, 그 당시엔 도민증이나 시민증의 소지 여부가 좌우익 사상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만일 도민증이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분명 왜 아직도 도민증을 폐기하지 않고 소지하고 있느냐고 추궁을 당할 게 분명했다. 하물며 만일 태극기가 발견되면 어떤 변을 당하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걸 잘 알고 있지만, 도민증을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국군이 반격해 오면 또 그들은 도민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좌익으로 간주하고 추궁을 받게 되기 때문에 도민증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애물단지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 이윽고 우리 가족의 짐을 뒤질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젠 갈 데 없이 죽겠구나, 하는 극도의 공포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두 개의 심장이 말할 수 없이 두근거리며 뛸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우리의 짐이 민청의 손에 의해 옷갈피마다 이를 잡듯 하나하나 뒤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도민증은 이불을 뜯고 이불솜 속에 넣고 바느질 실로 꿰매놓았기 때문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도민증을 들키지 않고 그냥 넘어갔기에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제 한 가지 가장 큰 걱정거리는 태극기였다.
그런데 마침내 민청이 뒤지고 있던 옷 갈피 속에서 그렇지 않아도 애를 태우며 걱정을 하고 있던 태극기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이젠 우리 가족 모두가 별수 없이 죽었구나. 하고 애를 태우고 있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하였다. 극도의 공포로 인해 숨이 막히고 온몸이 덜덜 떨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거짓말 같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민청은 분명히 우리의 짐보따리 속에서 태극기를 발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이었다. 어쩐 일인지 민청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재빨리 태극기를 옷 갈피 속으로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다음에는 우리의 짐보따리를 도로 꽁꽁 묶어 내팽개치며 얼른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으며 민청의 동작이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이게 정녕 꿈인가, 생시인가! 마치 지옥에 갔다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민청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리고 살려준 것만 해도 천행이라 생각하고 허겁지겁 민청이 팽개쳐버린 짐을 챙겼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살아난 것만 해도 고맙고 다행으로 여기며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일단 죽을 고비를 넘긴 우리 가족이 그 마을을 떠나 다시 어느 산기슭을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이봐요, 거기 잠깐만!”
느닷없이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바람에 얼른 뒤돌아보니, 아아! 조금 전에 그 민청이 급히 쫓아오며 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식구들은 조금 전에 죽이지 않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와서 죽이려나보다 하는 예감에 공포에 질려 다시 심장이 쿵쾅거리며 사정없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숨을 헐떡이며 쫓아온 민청의 입에서는 우리 가족에게 의외의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겁도 없이 태극기를 가지고 다녀요? 아까 보따리 속에서 태극기 나왔을 때는 인민군한테 들킬까 봐 저도 진땀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산 너머 마을에 가면 거기서도 민청이 짐을 조사하고 있을 테니 당장 태극기를 버리고 가라고 부탁하고는 도망치듯 왔던 길을 급히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후유우~~~“
우리 가족은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민청이 시키는 대로 땅을 판 다음 그곳에 태극기를 몰래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산을 넘자 아닌 게 아니라 그 산너머 마을에서도 민청이 피란민들의 짐을 일일이 이를 잡듯 뒤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벌써 70여년 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생명의 은인. 그가 어떤 이유로 민청의 신분을 갖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에 맞지 않는 이념과 체제하에서 훗날 고통을 겪지나 않았을까 지금도 가끔 걱정이 되곤 한다.
만일 그때 내가 민청의 신분이었더라면 과연 태극기를 감춰주면서까지 피란민을 살려주겠다는 용기가 있었을까!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 온 가족의 생명의 은인, 그 사람이 지금까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만이 간절할 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