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휴전 직후, 몹시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오후의 일이었다.
난 며칠 전부터 걱정거리 한 가지가 생기게 되었다. 알고 보면 즐거운 걱정거리이기도 하였다. 마침 내일이 어머님 생신인데 무얼 사다 드려야 좋아하실까 하고 그나마 혼자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어려운 시기임에도 그때 얼마의 용돈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확실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틈틈이 아껴서 모아 둔 아주 적은 약간의 용돈임에 틀림없었다.
당장 먹고 살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그 귀한 용돈이 있었는지는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 유난히 먹성이 짧아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이 조금씩 주신 용돈이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을뿐이다.
어쨌거나 용돈이라도 좀 넉넉했다면 그렇게 고민을 하거나 걱정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용돈이 너무 적었기에 그 돈을 가지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어떤 것도 사 드릴 수가 없었기에 오랫동안 걱정과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하, 이 돈이면 동태 한 마리 정도는 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해는 이미 기울어져 가고 있는데 동태를 사기 위해 읍내 장에 가려면 시오리 길이 넘는 먼 거리를 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빨리 뛰다시피 뛰어 간다 해도 돌아올 때는 이미 어두워져서 캄캄한 밤에 산길을 돌아올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난 마음이 점점 더 다급하고 초조해지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겁만 먹고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난 결국 그 두렵고 무서운 산길을 밤중에 돌아올 각오를 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마침내 식구들 몰래 급히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았다.
“따르릉~~~ 따르릉~~~”
읍내를 향해 한창 숨이 찰 정도로 뛰다시피 급히 걸어가다 보니 갑자기 뒤에서 자전거가 쫓아오며 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때 마침 마을에 형벌 되는 사람이 읍내에 급히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길이라며 자전거를 타고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형네 집 가족 대식구들은 서울에서 살다가 한국 전쟁으로 인해 우리 마을로 피란을 와서 아예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형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내가 읍내에 급히 볼 일이 있어서 간다고 하였더니 인심 좋게 자전거 뒤에 올라타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런 뜻밖의 행운이 또 어디 있을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난 그때 난생처음으로 그 형 덕분에 자전거 뒤에 타보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자전거가 아주 귀한 때여서 자전거를 구경하기도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이나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러기에 그때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있는 집이라면 그나마 형편이 꽤 넉넉한 편이었다. 아마 어쩌면 지금의 벤츠나 BMW 승용차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던 자전거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처럼 귀하던 자전거였기에 60여 호나 되는 우리 마을이었지만 오직 그 한 집에만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있었다.
나를 뒤에 태운 자전거는 이미 성황당 고개를 넘고 나더니 다시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바람이 나고 기부이 좋을 수가 없었다. 왼쪽은 낮은 산이 이어져 있고 오른쪽은 길 밑으로 작은 논배미들이 옹기종기 펼쳐져 있는 좁은 길을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기분좋게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탔다고 해서 마냥 신바람이 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창 신바람이 난 것도 잠시,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커브 길이 있는 논길 둑을 달리던 순간, 자전거가 커브를 틀면서 갑자기 길 밑으로 그만 굴러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자전거도, 그리고 형도 나도 한꺼번에 짐짝처럼 길 밑에 있는 논바닥으로 보기좋게 나동그라지며 자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의 일이 자세히 기억이 잘 나지 않긴 하지만, 다행히 그때 그 형도 나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자전거도 고장이 나지 않고 멀쩡했던 것 같다.
우린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을 툭툭 털고 난 다음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읍내에 도착하자 그 형은 볼일을 보러 가고, 나는 그 길로 바로 생선가게로 달려갔다. 가게 앞에 선 나는 동태를 가리키면서 값을 물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동태 값은 내가 가지고 있는 용돈으로는 한 마리를 사기에도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난 금방 울상이 되어 얼른 달란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 캄캄한 밤길을 혼자 돌아갈 생각을 하면, 우물쭈물하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용기를 내어 생선가게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일이 마침 어머님 생신이어서 생일 선물로 동태를 사러 먼 길을 달려왔다는 것, 그런데 동태 한 마리 값이 약간 모자라는데 한 마리 줄 수 없느냐고 울상이 된 채 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마음씨 좋은 가게 주인은 내가 몹시 딱해 보였던지 동태 한 마리를 선뜻 내주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이기도 하였다. 나는 몇 번이고 가게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새끼줄로 동여맨 동태 한 마리를 들고 집을 향해 다시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겨울철의 짧은 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넘어가고 사방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시오리나 되는 무섭고 컴컴한 산길을 혼자 걸어서 집으로 간다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릴 생각을 하면 혼자 걷고 있는 산길이 그날만큼은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끼줄에 매달린 동태 한 마리가 손에서 달랑달랑 흔들리는 것을 보며 흐뭇하고 벅찬 마음에 그런 두려움과 공포쯤은 이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난 어느덧 동태 한 마리를 들고 그 무서운 성황당을 지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동태 한 마리를 부뚜막 위에 살그머니 올려놓았다. 그때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가 나오시더니 말도 없이 어딜 갔다가 이렇게 늦게 들어오느냐고 역정을 내며 물으셨다.
난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부뚜막에 놓인 동태를 가리켰다. 그리고 내일 어머니 생신이기에 저걸 사기 위해 읍내까지 뛰어갔다가 오느라고 늦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 비싼 동태를 다 사 왔느냐며 몹시 감동하셨던지 그 자리에서 그새 눈물까지 흘리며 흐뭇해하셨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자 나의 눈에서도 왠지 덩달아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흐뭇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다음날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어제 내가 사 온 동태를 무를 썰어 넣고 정성껏 동태국을 끓이셨다. 그리고 마침내 정성껏 끓인 동태국을 올려놓은 생일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동태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제 사온 동태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알배기였다. 역시 난 운이 좋았나 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우리 가족은 모두 네 식구였다. 그런데 알이 밴 동태의 가운데 도막은 내 국그릇에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다음 도막은 누님 국그릇에, 머리 부분은 아버지, 그리고 가장 안 좋은 꼬랑지 부분은 어머니 국그릇에 나누어 담겨있었던 것이다.
난 내 국그릇에 있는 가운데 도막을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니까 어머니가 드셔야 한다며 어머니에게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사코 그 동태 가운데 도막을 몇 번이고 내게 도로 내주며 어서 먹으라고 하여 결국은 내가 먹고 말았다. 모처럼 큰마음 먹고 어머니에게 드린다고 사 온 동태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결국은 내가 먹어치우고 말았던 것이다.
그 어려웠던 시절이긴 하지만 이 얼마 만에 맛을 보게 된 동태국이란 말인가. 그때의 동태 맛을 지금도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뒤부터 이웃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두고두고 틈만 나면 우리 아들이 생일날 동태를 사다 주어서 잘 잡수셨다고 자랑을 하며 다니시곤 하셨다.
난 그때 깊이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작은 효도를 하게 되면 그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결국은 두 배, 아니 열 배로 내게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자고로 ‘수욕정이 풍부지’요, 자욕양이 친부대‘ 라 하였다. 나무는 아무리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려 하나 부모님은 언제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백번이고 지당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동태 한 마리로 인해 그렇게 행복해 하시던 나의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이 세상 분이 아니시다.
난 부모님 생전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일들이 지금은 두고두고 후회가 되면서 가슴이 저려오곤 한다.
그땐 그렇게 귀하기만 했던 동태가 요즈음에는 어느 시장엘 가나 흔한 게 동태이다. 난 요즈음에도 가끔 그때의 생각을 회상하면서 동태를 사다가 국을 끓여 먹어보곤 한다. 더구나 요즘 동태는 대부분 러시아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리 솜씨를 발휘하여 끓여 보지만 절대로 그때의 그 기가 막히게 맛이 있던 동태국의 맛이 나지 않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