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화 창작동화-
몹시 추운 어느 해 겨울밤입니다.
“쌔앵, 쌔애앵~~~ ”
밤이 깊어지자 겨울바람은 휘파람을 불어대면서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겨울바람은 아마 잠도 없나 봅니다.
겨울바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산골짜기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나무들마다 연신(*) 짓궂게 흔들어대며 귀찮게 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어느 틈에 마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어엉?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한동안 신바람이 나서 달려오던 겨울바람이 문득 가던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어디선가 아주 작고 정겨운 목소리로 도란도란 속삭이고 있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겨울바람은 순간 의외라는 듯 두 눈이 커다랗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아, 저럴 수가……!“
도란거리는 목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어느 집 벽돌담의 바로 옆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두 그루의 조그만 새싹이 두툼하게 쌓인 눈을 헤집고 고개를 내민 채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주 예쁘고 귀엽게 생긴 싱싱한 새싹이었습니다.
그 새싹들은 이토록 추운 한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았습니다. 보란 듯이 싱싱한 초록 잎으로 자라고 있는 작은 풀포기, 겨울바람이 놀란 것은 한겨울 모진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세게 새싹을 피우고 있는 바로 조뱅이를 벌견했던 것입니다.
환하게 비추는 밝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마치 참기름이라도 바른 듯 초록 색깔로 반짝거리며 자라고 있는 조뱅이의 모습은 그렇게 싱싱하며 건강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저럴 수가! 이렇게 무서운 추위에도 얼어 죽지 않는 식물이 있었다니!‘
지금까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두려운 줄을 모르고 살아온 겨울바람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성질이 사납기로 이름난 겨울바람 앞에서는 바들바들 떨곤 하였으니까요.
그런게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 조그맣고 연약해 보이는 조뱅이를 보는 순간, 겨울바람은 은근히 겁이 나고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겨울바람이 이렇게 겁을 먹어 보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속삭이듯 정겹게 소곤거리는 조뱅이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겨울바람은 귀를 바짝 세우고 조뱅이의 소곤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아가야, 겨울바람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제 알 수 있겠니?“
엄마 조뱅이가 아기 조뱅이에게 속삭이듯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기 조뱅이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엄마 조뱅이를 향해 다시 물었습니다.
“우와! 정말 무섭구나! 흐르던 시냇물도 꽁꽁 얼려서 멈추게 할 정도로 겨울바람이 그렇게 무서워?”
“아암, 한번 심술이 났다 하면 아름드리나무도 흔들어서 부러뜨리기도 하고, 사람들이 사는 집을 마구 무너뜨리기도 하는 게 바로 겨울바람이란 녀석이란다.”
"우와! 정말 무섭구나!"
“아암, 그렇고말고. 어떤 때는 달리는 자동차도 마구 쓰러뜨리고, 바다에 떠다니는 큰 배를 단번에 뒤집어 놓기도 한단다.”
"어마나, 무서워라! 그러니까 겨울바람은 아주 나쁜 놈이구나! 그치, 엄마?"
아기 조뱅이의 말에 겨울바람은 그만 찔끔하고 말았습니다. 생각 같아는 당장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애써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엄마 조뱅이의 다음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엄마 조뱅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심술궂으면서도 무서운 겨울바람을 좋아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단다 하지만 그런 겨울바람 때문에 누구나 더욱 튼튼하고 더욱 강해질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겨울바람을 무조건 미워하거나 나무랄 게 아니라 고맙게 여기는 마음도 가져야 한단다.”
"엄마, 겨울바람 때문에 튼튼하고 강해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우선 저 들판에 자라고 있는 새싹들이나 나무들을 보면 알 수 있단다. 한겨울의 모진 추위와 눈보라, 그리고 그 무서운 겨울바람을 참고 이겨낸 식물들만이 그 이듬해 봄에 더욱 건강하고 튼튼한 몸으로 한층 더 푸르름을 자랑하며 건강하게 돋아나는 법이거든.”
“…….”
아기 조뱅이는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엄마 조뱅이의 설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저 들판 개울에 흐르고 있는 물도 그렇단다. 만일 겨울의 모진 추위가 없다면 물이 무슨 재주로 그렇게 단단하게 얼기도 하고 강해질 수가 있겠니?“
"그렇지만 풀이나 나무들은 추위를 견디다 못해 모두 얼어 죽어 버리고 말았잖아?"
“으음, 그건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지 그건 죽은 게 아니란다. 봄이 되면 모두 다시 살아나게 되거든. 추위를 이겨냈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더욱 강하고 튼튼하게 말이란다.”
"으음, 그렇구나!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걸.”
"이해가 안 간다니, 뭐가?"
"추위 때문에 더욱 강하고 튼튼하게 살아나게 된다는 말 말이야.“
“후후훗, 얼른 이해가 가지 않겠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렴, 온실 속에서 자란 꽃이나 식물들은 그런 고생을 모르고 자라났기 때문에 아주 작은 추위도 이겨내지 못하고 곧 죽어 버리고 만단다. 그러니까 겨울의 모진 추위와 눈보라, 그리고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뜨거운 여름의 햇볕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이겨낸 식물들만이 더욱 건강하고 씩씩해지는 법이란다."
“아하! 이제야 좀 알겠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생기게 된 거로구나! 그치 엄마?”
“아암, 그렇고말고. 어이구, 우리 아가 똑똑하기도 하지. 이젠 다 컸네. 호호호…….”
엄마 조뱅이는 그런 아기 조뱅이가 기특하고 대견스러워 못 배기겠다는 듯 꼬옥 껴안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기 조뱅이가 흐뭇해진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겨울바람은 심술궂기는 하지만 우리들이 더욱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나게 하기 위해 좋은 일도 하고 있는 거구나!“
"아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겨울바람이 아무리 망나니짓을 해도 잘 참아내면서 이겨내야 하고말고. 당장은 힘이 들고 몹시 고생이 되겠지만 말이야.”
“엄마, 근데 또 한가지 궁금한 게 있어.”
“궁금하다니, 뭐가 궁금한데?"
“우리도 다른 풀이나 나무들처럼 죽었다가 다시 봄에 살아나면 안 돼?"
"그건 또 왜?"
“그러면 이렇게 추운 고생을 안 해도 되잖아?"
"…….”
아기 조뱅이의 물음에 엄마는 말없이 한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좁쌀이라도 뿌려 놓은 듯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추위를 견디다 못해 모두가 입을 꼭 다문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엄마 조뱅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가야, 우리가 이렇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식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란다.”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우리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견디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잃었던 희망과 용기를 되찾게 될 수도 있지 않겠니?"
"그건 또 어째서?"
"우리처럼 약해 보이는 조뱅이도 이런 모진 추위에도 얼어 죽지 않고 견디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대로 얼어 죽지 말고 살아가야만 되겠다는 희망과 용기 말이란다.”
“우와아! 정말 그렇겠구나!”
아기 조뱅이는 새삼 자기 자신이 몹시 자랑스럽다는 생각에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엄마 조뱅이는 그런 아기 조뱅이의 모습이 더욱 대견스럽고 귀엽다는 듯 아까보다 더힘을 주어 꼬옥 껴안아 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조뱅이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있던 겨울바람의 입가에서도 저도 모르게 작은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나를 저렇게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조뱅이가 이 세상에도 있었구나!“
지금까지 어딜 가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욕만 얻어먹으면서 살아온 겨울바람이었습니다. 아마 어쩌면 그래서 겨울바람의 성격이 점점 더 난폭하고 심술궂어지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엄마와 아기 조뱅이의 다정한 소곤거림을 들은 순간 겨울바람의 마음도 크게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쌔앵, 쌔애앵, 휘이익~~~"
겨울바람이 지금까지와는 훨씬 부드러워진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어디론가 또다시 도망치듯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밤은 그렇게 자꾸만 깊어고 있었습니다. ( * )
< 우리말 익히기 >
♣ ‘연신’ 과 ‘계속’
* 연신 ; 잇따라 반복해서 자꾸
예)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연신 전화 통화만 하고 있었다.
* 계속 ; 어떤 현상이나 행동이 끊이지 않고 잇따라
예) 과거의 우리나라 신문들은 오랫동안 세로쓰기를 고집해 왔다.
* 결국, ‘연신’과 ‘계속’은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낱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