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이야기

-의인화 창작동화-

by 겨울나무


가을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후유우~~~”

까마중 나무는 아까부터 땅이 꺼질 듯한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까마중 어르신(*)! 왜 그렇게 한숨을 쉬세요? 날씨가 추워져서 그러세요?“


한숨 소리를 듣다 못한 비름나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까마중 나무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 아니다. 그, 그런 게 아니란다.”

까마중 나무는 흠칫 놀라서 얼른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초라해진 속마음을 비름나물한테 들킨 것만 같아 몹시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어디가 편찮으세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럼 왜 그러세요?”

“글쎄,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자꾸만 성가시게 그러는구나.”

비름나물은 까마중 나무가 귀찮아하는 것 같아 더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금년에는 까마중 나무가 특히 그 어느 해보다도 튼튼하고 무성하게 자란 해였습니다. 열매도 주렁주렁 어찌나 소담스럽게 많이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서 무게를 이기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금방이라도 가지가 찢겨나갈 것처럼 불안하였습니다.


그렇게 싱싱하고 튼실한 열매를 맺은 까마중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연신 땅이 꺼질 정도로 긴 한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비름나물은 그런 까마중 나무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후유우~~~ 이렇게 열심히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매달면 무얼 해. 나 같은 건 이젠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거든. 그거 차암~~~‘

까마중 나무가 이번에는 비름나물이 들리지 않게 혼자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가 밝은 비름나물이 그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어르신!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신 거죠, 그렇죠?”

"글쎄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자꾸만 그러는구나.”

"그러지 마시고 말씀을 좀 해보세요. 저도 괜히 궁금하고 걱정이 돼서 그러잖아요.“

까마중 나무는 다시 한번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너도 몹시 궁금할 게다.“

"저하고 아저씨는 어쨌든 이웃사촌인데 궁금하지 않을 리가 있어요. 제 말이 틀렸어요. 아저씨?"


“헛허허, 그건 맞는 소리다. 워언, 녀석두.”

까마중 나무는 그런 비름나물의 표정이 몹시 대견스럽다는 듯 껄껄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난 말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만 살아온 지 벌써 오십 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단다.”


"네에? 우와아! 오십 년씩이나요?“

너무나 놀란 듯 비름나물의 눈이 왕방울만큼이나 커졌습니다.


“그렇단다. 씨가 떨어지면 그 이듬해 봄에 다시 싹이 나고, 또 그다음 해에도 또 새로 나고를 오십 년이나 반복해 왔거든.”

“아하, 그러셨군요.”

“벌써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누구나 먹을 것이 부족했단다.”

"네에. 네에 저도 이야기를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사람들 모두가 까마중 열매가 매달리기가 무섭게 까마중을 따 먹기에 바빴었지. 내가 여름 내내 땀을 흘리며 공을 들여 키워놓은 열매들을 말이란다.”

"네에, 가난할 때여서 배가 고프니까 그랬겠죠. 그런데요?“

“그렇단다. 하지만 몹시 가난하긴 했지만, 어쩌면 그때가 차라리 좋았던 시절이었어. 보람도 있었구. 특히 아이들한테는 까마중은 인기가 아주 그 만이었거든. 허기진 배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서는 아마 까마중이 그런대로 한몫을 했나 봐.”

"네에, 그랬겠네요. 언젠가 우리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니까 옛날에는 저도 인기가 좋았대요. 사람들이 저를 뜯어다 나물로 아주 맛있게 무쳐 먹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암, 그랬지. 네 말을 가만히 듣고 보니 어쩌면 네 신세나 내 신세나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까마중 나무는 그런 옛날이 몹시 그립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앞으로 더이상 무슨 재미를 보겠다고 살아갈 재미를 느끼겠니?“

”……!!“

까마중 나무의 눈에서는 어느새 굵은 이슬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까마중 나무의 쓸쓸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비름나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비름나물의 눈에서도 어느새 덩달아 작은 이슬이 맺힌 채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휘리리릭~~~“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심술궂은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에 까마중 열매가 우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까마중 나무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그토록 싱싱하기만 하던 비름나물의 잎과 줄기도 덩달아 볼품없이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휘리리릭~~~”

어디선가 가을밤의 차고 싸늘한 바람이 또다시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을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 )





< 우리말 익히기 >

♣ ’어른‘과 ’어르신‘

* 어른 ; 다 자란 사람, 그리고 항렬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 남의 아버지를 높여부르는 말.

* 어르신 :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 남의 아버지를 높여서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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