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풀씨

-의인화 창작동화-

by 겨울나무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그해 여름에는 유난히도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뜨거운 불볕만 내려 쬐는 바람에 세상이 온통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구어지고 말았습니다.

“허어, 이러다가는 며칠 안 가서 모두들 죽고 말겠는걸!”

“누가 아니래. 이래서 살인적인 가뭄이란 말이 생긴 것 같아. 이렇게 무서운 가뭄은 정말 보다보다 처음 본다니까!”

마을에서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저마다 난생처음 겪는 가뭄이라고 입을 모아 탄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해 여름의 가뭄은 몇천 년 만에 한 번쯤 올까 말까한 지독할 정도로 무서운 가뭄이었습니다.

이토록 지독한 가뭄이 몇 달 동안 이어지자 가장 먼저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인간들이었습니다. 아니 인간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모든 동물이나 식물들 모두가 당장 목이 말라죽을 지경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우울, 물! 제발 물 한 모금만……!“

"좀 살려 주세요. 다른 것은 필요 없어요. 제발 물 한 모금만이라도 주세요! 어이구, 정말 목이 타서 못 살겠네, 쩌업, 쩌업, 쩝…….”

이제 이 땅 위에는 어딜 가나 목이 말라 아우성들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애처로운 신음소리들로 시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은 비로소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그저 하찮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방울의 물이 이토록 목숨과 바꿀 정도로 소중하고도 귀한 것인 줄을 예전에는 미처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토록 가뭄이 심할 때 물 한 방울은 그 무엇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귀하게만 여겨 오던 돈이나 황금보다 및 십 배, 아니 몇백 배보다도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바로 물이라는 것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여전히 뜨거운 불볕만이 이글거릴 뿐, 야속하게도 비 한 방울 내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숨을 잃어 가는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동물이나 식물들도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토록 무서운 가뭄 속에서도 용케도 잘 견디어 내는 장하고 거룩한 생명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지금은 자신의 나이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늙어 고목이 된 한 그루의 늙은 소나무였습니다.

늙은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곳은 어느 시골이었습니다. 마치 버섯처럼 예쁘게 생긴 여남은 채의 초가집들이 그림처럼 평화롭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 앞 저수지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선 채 수백 년이란 긴 세월을 그렇게 묵묵히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소나무였지만 이번 가뭄에는 별 재주가 없었습니다.

"이거 원, 목구멍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바람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있어야지. 쩝쩝쩝…….”

소나무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늙어서 허약한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오랜 가뭄에 지치고 지쳐 기운이 빠지는 바람에 곧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소나무는 현깃증을 견디다 못해 한동안 감고 있던 퀭해진 눈을 간신히 떴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수지의 모습을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소나무는 그만 못 볼 것을 본 듯,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으으음, 아니 이 지경이 될 줄이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수지의 바닥은 물이 바짝 말라 마치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져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수지 바닥에는 여기저기 처참하게 널부러져 있는 물고기들의 처참한 주검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던 것입니다.

“쯧쯧쯧……. 세상에 저렇게 처참한 일이 또 있나!”

소나무는 너무나 끔찍한 모습에 그만 질겁을 하면서 차마 보기 어렵다는 듯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소나무의 눈에는 어느새 그 옛날의 마냥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했던 광경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소나무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행복했던 일들이 그토록 새삼 그리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우와아~~~! 저 소나무 좀 보게나. 조 소나무는 볼 때마다 점점 더 운치가 돋보인단 말이야.“

"아암, 나뭇가지들이 벋어나가면서 서로 뒤엉켜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저런 걸작이 없지, 아암, 걸작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걸작이구말구.“

"누가 아니래. 예술이 따로 없다니까.“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저마다 이렇게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넋을 잃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저절로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다 이 저수지 앞을 지나가던 길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화로운 저수지의 모습과 늙은 소나무의 어울림, 그리고 마을의 초가집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게 어우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나무는 사람들의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나무로 태어난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담긴 채, 사철을 가리지 않고 잔잔한 은빛 물결로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모습의 저수지, 그 저수지 한가운데에는 외딴섬처럼 볼록하게 솟아오른 작은 동산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동화나 그림책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동산에 몇백 년 묵은 소나무 한 그루가 운치와 위엄을 자랑하며 멋지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거 정말 하도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난리는 처음 보겠군!“

소나무는 한동안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떴습니다. 그리고는 몹시 걱정과 괴로운 표정으로 다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아! 어쩌다 이 지경이……!”

소나무는 이번에도 다시 한번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눈에 띄는 모습들 모두가 하나같이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독한 가뭄을 견디다 못해 처참할 정도로 모두가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연못에서 평화롭게 헤엄을 치며 놀던 물고기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것들 모두가 마치 불에 탄 것처럼 빨갛게 타죽어 버린 주검, 주검들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쯤은 저마다의 푸르름과 향기를 자랑하며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어야 할 갖가지 잡초와 들꽃들, 그리고 곡식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뜨거운 가뭄을 견디다 못해 빨갛게 또는 잿빛으로 타버린 주검이 되어 널부러진 것입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뒷동산을 바라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창 초록 빛깔로 싱싱하고 탐스럽게 자라고 있어야 할 나뭇잎과 줄기들 모두가 불에 그을린 듯 붉은 색깔로 변한 채 말라 죽어 버린 것입니다.

"휴우, 나도 이제 얼마 못 견디고 저런 꼴이 되고 말겠지!“

소나무는 상상만 해도 너무나 끔찍하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보기조차 괴롭다는 듯 다시 두 눈을 꼭 감고 말았습니다.

"아아, 하느님이시여! 아직 살아남은 생명들만이라도 불쌍히 여기시어 제발 비를 좀 내려 주시옵소서!“

소나무는 마침내 속으로 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소나무의 입안은 마치 숯덩이처럼 바짝 마르고 타서 침도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틈이 날 때마다 하느님께 간절히 빌고 또 빈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무심하였습니다. 이토록 간절히 빌고 있는 소나무의 기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태양은 날이 갈수록 더욱 이글거리는 용광로와 같은 열기로 뜨거워만 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 지구 위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생물들을 단번에 삼켜버리기라도 할 듯 더욱더 뜨겁게 달구고 또 달궈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당장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지만, 그나마 앞날이 구 만 리 같은 어린 생명들은 제발 오래오래 살아야 할 텐데……!“

소나무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자신보다는 다른 생명들을 먼저 걱정하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을 하고 있던 소나무는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니,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는 태양의 열기를 견디다 못해 잠깐 정신을 잃은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소나무는 갑자기 옆구리가 자꾸 근질거리는 바람에 깜빡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이구, 이거 근질거려서 어디 살 수가 있나!”

소나무는 뜨기조차 귀찮은 눈을 겨우 뜨고는 근질거리고 있는 옆구리를 천천히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넌 도대체 웬 녀석이지?“

순간, 소나무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소나무의 몸뚱이가 근질거리고 가려웠던 것은 다름이 아닌 아주 예쁘고 조그맣게 생긴 풀씨였습니다. 조그만 풀씨 하나가 소나무의 옆구리에 붙은 채 의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느 틈에 그런 풀씨가 날아왔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작은 풀씨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 바로 소나무의 옆구리였던 것입니다. .

”쯧쯧쯧……. 아무리 철이 들지 않은 어린 녀석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소갈머리가 없어서야…….”

소나무는 너무나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는 듯 잔뜩 찡그린 표정이 되어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아주 조그만 풀씨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곳은 소나무의 옆구리였습니다. 그곳은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너무나 늙고 썩어서 이미 웅덩이럼 큼직한 구멍이 난 곳이었습니다.

소나무의 나뭇가지들도 이미 너무 늙어 대부분이 삭정이가 되어 부러져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늙은 몸뚱이에 의지한 채 지금까지 용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들도 언제 또 부러져 나갈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아름드리로 엄청나게 굵게 자란 소나무의 몸뚱이에 군데군데 보기에도 흉할 정도로 크고 작은 구멍들이 여러 개 웅덩이처럼 뚫려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썩고 썩어 저절로 생긴 구멍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주 보잘것없어보이는 작은 풀씨 하나가 슬며시 그 구멍 속으로 날아와서 넉살 좋게 싹을 틔우려고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워낙 마음씨가 너그럽고 인자한 소나무였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은 자신의 몸뚱이조차 하루하루를 버티기에도 힘에 겨운 소나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비록 작은 풀씨이기는 하지만 아무 말 한 마디 없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은 풀씨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습니다.

소나무는 할 수 없이 풀씨를 향해 점잖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어디서 온 녀석인데 도대체 거기서 뭘 하겠다는 거지?“

그러자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던 풀씨는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였습니다.

“소나무님, 용서해 주세요. 전 지금까지 바람 부는 대로 여기저기 안 간 곳이 없이 떠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세상이 온통 가뭄이 들어서 이 작은 한 목숨이나마 그 어느 곳이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어요. 그래서 염치없는 줄을 알면서도 그만 으흐흐흑…….”

조그만 풀씨는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그만 울음까지 터뜨리면서 가녀린 목소리로 용서를 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이 발이 될 정도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풀씨의 그런 애처로운 모습을 보자 소나무의 마음이 금세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네 사정은 알겠다만 지금은 나도 가뜩이나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인데 게다가 너까지 나한테 붙어서 살아 보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네, 염치없는 줄은 저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만은 두고두고 잊지 않고 보답해 드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흐흐흑…….“

풀씨는 조금 전보다 더욱더 서럽게 어깨까지 들먹이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허어, 옛기 이 녀석, 너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녀석이 무슨 재주로 은혜를 갚겠다는 게야?”

소나무는 너무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귀찮다는 듯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풀씨와 자꾸 상대를 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풀씨는 움푹 패인 소나무의 구멍 속에서 열심히, 그리고 또 열심히 싹을 틔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 가뭄이 심하기는 했지만 그나마 옹이 속이 축축해서 그런대로 뿌리를 내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소나무의 몸뚱이가 썩어가고 있어서 그런대로 거름기도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풀씨는 결국 소나무 옹이 속에 뿌리도 내리고 제법 예쁜 싹도 틔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처럼 무서운 가뭄에도 싱싱한 덩굴을 뻗어가며 날이 갈수록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풀씨의 덩굴은 소나무의 굵은 몸뚱이를 열심히 타고 올라가며 결국은 소나무 기둥을 온통 시퍼렇게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토록 고통스러운 여름이 가고 어느새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이 오기가 무섭게 어느새 겨울도 지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소나무는 깜빡 정신을 잃은 채( * )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 문득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미 생명을 잃어버렸거나 더욱 쇠약해졌을 줄 알았던 자신의 몸이 희한하게도 몰라볼 정도로 건강하고 튼튼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소나무는 어리둥절한 채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때 마침 소나무 옆을 지나가고 있던 봄바람 아가씨가 매우 곱고 상냥한 목소리로 소나무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소나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냐. 반갑구나. 너도 그동안 잘 지냈겠지?”

“네 덕분에 잘 지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표정이 왜 그러세요?”

“그러게 말이다. 아무래도 이거 이상하지 않니? 내 건강이 전보다 몰라보게 훨씬 좋아진 듯해서 그런단다.”

“아하! 그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실 일이 아니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이지?“

"호호호……. 그건 그동안 할아버지께서 은혜를 베푸셨잖아요. 할아버지께서 은혜를 베푸신만큼 이번에는 그 은혜를 돌려받으신 거라니까요.”

"내가 은혜를 베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할아버지,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겠죠? 가뭄이 너무 심했던 작년 여름 말이에요.“

“후유우~~~ 말도 마라. 그땐 정말 누구나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지. 그래서?”

"그때 왜 할아버지한테 아주 작은 풀씨 하나가 찾아왔었잖아요?“

"그, 그렇지. 이제야 생각이 나는구나. 그래서?“

소나무는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여름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와서 자신의 몸뚱이에 뿌리를 내려보겠다고 사정을 하던 작은 풀씨가 떠올랐습니다. 그 바람에 너무 고통스러뤄 말도 하기 귀찮다는 생각에 더 이상 대꾸조차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지금까지 오랫동안 잠이 들었었다는 기억을…….

그러자 봄바람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 작은 풀씨가 처음에는 덩굴을 뻗으며 무성하게 자라긴 했어요. 그러나 결국은 겨울이 되자 얼어 죽고 말았지 뭐예요. 그렇게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는데 참 불쌍하고 안 됐죠?“

"쯧쯧쯧……. 결국은 그렇게 됐군! 그래서?“

소나무는 몹시 안 됐다는 생각에 갑자기 안색이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풀씨는 죽은 다음에 제 몸을 모두 썩혀가면서 할아버지의 메마른 몸에 거름이 되어 드리게 된 거죠. 참 안 됐어요. 그쵸?“

"쯧쯧쯧……. 그거 차암, 꽤나 열심히 살아 보려고 애를 쓰는 것 같더니만…….“

소나무의 눈에서는 어느새 말을 채 맺기도 전에 굵은 이슬이 맺히고 있었습니다.

"호호호……. 이제야 할아버지께서 건강해지신 까닭을 이해하시겠어요? 그래서 이 세상은 누구나 혼자 살지를 못하고 더불어 살게 마련인가 봐요. 호호호…….“

봄바람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나무는 갑자기 목이 메어 오르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참, 그렇게 작고 보잘것없던 녀석이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해주고 떠나다니……!“

소나무는 그제야 그때, 그 풀씨에게 좀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풀씨를 잃은 슬픔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나무의 그런 고통은 마치 생지옥과도 같았던 지난여름의 살인적인 가뭄보다 더 큰 고통이 소나무의 가슴속을 아프게 흔들어주고 있었습니다. (*)





< 우리말 익히기 >

'~째'와 '~ 채’

째: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대로' 또는 '전부'의 뜻을 나타낸다. 또한, 명사나 수사 뒤에 붙어 '차례' 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며 의존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 명사 뒤에 붙는 경우: 통째, 뿌리째, 껍질째

* 명사나 수사 뒤에 붙는 경우: 사흘째, 두 잔째 셋째 동

* 의존명사로 쓰일 경우: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갔다. 노루를 산 채로 잡았다.

채 : '채'가 접미사로 쓰일 때는 몇몇 명사 뒤에 붙어 '구분된 물건 단위'의 뜻을 나타낸다.

* 집, 큰 기구, 기물, 가구, 이불, 인삼 등을 묶어 세는 단위로 쓰인다.

오막살이 한 채, 가마 두 채, 장롱 한 채, 솜이불 한 채, 인삼 한 채 등.

* 구분된 물건의 단위로 쓰일 때

사랑채, 행랑채, 바깥채, 안채 등.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과를 통째로 먹었다'로 쓸 것을 '사과를 통채로 먹었다‘ 로 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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