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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an 16. 2023

징검다리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추억(1)

[고등학교 시절의 여선생님]

그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문득 되살아나곤 한다. 특히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면 더욱 그날의 추억이 되살아나며 나 혼자만의 행복감에 젖어 슬며시 미소를 짓곤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항상 변함없이 서글서글하면서도 호감이 가는 밉지 않은 선생님이었다. 키도 훤칠하게 컸으며 왠지 매력이 끌리는 여선생님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전교 학생들은 물론 같은 동료 선생님들까지 그 여선생님에게서 풍기는 위엄 때문인지 함부로 대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그 선생님이 남달리 특별히 성격이 날카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누구에게나 항상 밝게 웃는 낯으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곤 하는 마음씨 곱고 착한 선생님이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모두가 어려워하며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걸 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 모두가 어려워하면서도 그 선생님의 말이라면 군소리 없이 복종하며 잘 따르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목소리 또한 여느 여성들처럼 한 옥타브가 높은 여자 특유의 곱고 예쁜 목소리도 아니었다. 큰 키에 어울리게 늘 부드러운 저음의 음성이었지만, 듣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이 끌리는 그런 목소리의 여선생님이었다.       


다른 여선생님들처럼 요란하게 화장을 하거나 멋을 부리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여성이라면 으레 기본적으로 입술에 바르는 루즈조차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의 의상도 특별하였다.       


여선생님들 모두가 원피스와 투피스, 그리고 바지 같은 것을 자주 갈아입고 다니며 한껏 멋을 부리곤 하지만, 그 선생님은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사철을 가리지 않고 오직 저고리와 긴 치마만을 단정하면서도 정갈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 그 선생님의 특징이며 매력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 여선생님은 아직 결혼 전이었으며 대략 30살 안팎의 노처녀였다.      


아무튼, 나로서는 재주가 없어 더 이상 멋지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지금까지 그처럼 우아하고 매력적인 선생님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기에 그처럼 멋지고 마음에 드는 여선생님을 만나게 된 나 역시 또 하나의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뜻밖의 큰 문젯거리가 하나 생기고 말았다. 바로 그 여선생님 때문이었다.     


그 선생님은 마침 영어 담당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영어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우리 반에도 들어오곤 하였다.      

난 지금까지 공부는 늘 뒷전이고 책 읽기미술부에 들어가서 오직 그림 그리기(수채화)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니 영어 성적 역시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기에 영어 성적이 엉망인 나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특히 나를 볼 때마다 창피와 망신을 주며 괴롭히곤 하였던 것이다.  

    

난 몹시 속이 상하고 공연히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까짓 영어 좀 못한다고 그렇게 망신을 줄 수가 없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영어를 좀 못하면 어떤가. 그냥 넘어가 준다면 어디가 덧난다던가?    

아마 다른 선생님이 그랬다면 그나마 견딜 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것도 오랜만에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게 된 선생님에게 번번이 창피와 망신을 당하다 보니 왠지 너무 억울하고 야속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였다.  사랑이 차츰 미움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 선생님에게 망신을 당하는 날은 항상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그날도 첫째 시간에 마침 영어가 들어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지각을 하고 조금 늦게 교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지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 선생님이 생각할 때 얼마나 미워 보였을까!  

   

한창 영어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던 선생님이 내가 지각을 하고 교실로 들어서자 수업을 하다 말고 나를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본격적으로 창피를 주며 나무라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창피를 줄 때마다 으레 지시봉으로 연신 나의 배를 쿡쿡 찔러대며 창피를 주곤 하였다.       


! 넌 영어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오늘도 또 지각이니?”     


집이 좀 멀어서…….”    

 

넌 언제나 집이 멀다는 핑계만 대더라. 그렇다면 밥 한 숟갈이라도 덜 먹고 오면 이렇게 늦지 않았을 거 아니니? 영어 공부보다 밥이 그렇게 대단한 거니? 그러니까 이렇게 배만 나오는 거 아니니? 그러니, 안 그러니? , 쿠우욱~~”     


…….”     


난 민망하고 쑥스러운 생각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친구들 모두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영어 시간이 끔찍할 정도로 싫어졌다. 어쩌다 그놈의 영어라는 게 생겨 가지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가끔 수업 시간에 영어를 가르치다 말고 갑자기 나에게 해석을 해보라고 시키곤 하였다. 그러나 으레 틈만 나면 선생님 몰래 소설책을 읽고 있던 나였으니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한창 소설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던 나는 선생님이 방금 무엇을 물어보고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가 없어 그때마다 우물쭈물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친구들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퍼져 나왔다. 그럴수록, 그리고 날이 갈수록 나의 체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녕 언제까지나 이대로 그 선생님한테 창피를 당하며 견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학교를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선생님에게 더 이상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 * )


    

                          < 2회 중 1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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