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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an 17. 2023

징검다리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추억(2)

[징검다리에서 벌어진 일]

작전 계획     


이대로 계속 영어 선생님한테 미움을 받아가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 괴롭고 창피하면서도 억울했다. 더구나 다른 선생님도 아닌 내 마음에 쏙 드는 선생님한테 이대로 계속 미움을 받으며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지금보다는 좀 나아지기를 은근히 기대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러 달을 보내는 동안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그 강도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속이 상했다.      


결국 난 특단의 결심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대로 계속 창피를 당하며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드디어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갑자기 번쩍하며 머리에 멋진 생각 하나가 용케 떠올랐다.      


얏호옳지그거다 그거내가 왜 여지껏 그런 생각을 못했었지     

 

엣 속담에 아무리 미련해도 갈롱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여선생님은 마침 도서실 담당 책임자였다. 그래서 내가 시간만 나면 소설책을 빌리기 위해 드나들 때마다 가끔 도서실에 앉아 책을 보녀 도서실을 지키는 모습을 목격하곤 하였다.     


난 비장한 결심 끝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오늘도 여느 때처럼 도서실로 달려갔다. 그때 마침 선생님도 한가롭게 도서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따라 공연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마치 아부라도 할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다.      


나를 발견한 선생님은 의외라는 깜짝 놀란 얼굴로, 그리고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 잠깐 머뭇거리다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진심어린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정신 차리고 영어 공부를 열심해 해볼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좀 더 빨리 잘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찾아뵙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내 수준에 맞는 영어책을 하나 골라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진심어린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영어를 못하는 골칫덩어리가 찾아왔으니 반가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다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소가 닭 보듯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고는 의외라는 듯 갑자기 활짝 밝아진 표정이 되어 반기는 눈빛이 역력하였다. 그리고는 진즉에 그럴 것이지 왜 이제야 그런 생각을 했느냐며 나를 영어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꽂이 앞으로 이끌었다. 더구나 매우 기분이 좋아진 표정으로 내 손까지 덥석 잡고…….         


선생님은 한동안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다가 그중에서 한 권을 뽑더니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 책은 현재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의 영어책이라며 어쩌면 내 수준에 맞을 것이라며 열심히 공부해 보라고 내 어깨까지 다정하게 두드려 주며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도서실로 찾아와서 물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얏호!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나의 1단계 작전은 성공리에 막을 내린 것이었다. 난 선생님에게 앞으로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날은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선생님이 골라준 영어책을 대강 뒤적거리며 읽어 보곤 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학교 공부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도서실로 향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빌려준 영어책을 한동안 뒤적거리며 보고 있을 때 수업을 마친 선생님이 도서실로 들어왔다.     

 

나를 보자 선생님이 전과 달리 반색을 하며 아는 체를 하였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던 영어책을 손에 든 채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영어책을 펼치며 이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으니 설명 좀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난 그동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은 미리 밑줄을 그어 놓게 되었던 것이다.       

히야아네가 이제는 잘 모르는 문장은 밑줄까지 치면서 열심히 공부했구나정말 잘했다잘했어!”     


선생님은 매우 기분이 좋아진 표정이 되어 하나하나 자세히 그리고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아져서 잘 알겠다는 듯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내가 기분이 좋아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내 옆에 앉아 자세히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나중에는 한 팔로 내 어깨까지 감싸 안고 아주 자세하고도 친절하여 다정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나의 비상 작전은 굳게 막혔던 선생님과의 벽을 허물고 당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단 뜻밖의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그 뒤로도 나는 가끔 시간만 나면 도서실로 가서 선생님에게 영어책을 내밀며 어려운 부분을 물어보곤 하였다. 이제는 선생님을 만나보는 재미와 낙으로 도서실을 찾아가곤 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나를 반기며 으레 내 어깨를 팔로 감싸 안은 채 다정하게 설명을 해주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시간이었다     


한창 영어를 열심히 가르치던 선생님이 그날따라 갑자기 나를 지명하였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읽고 해석을 좀 해보라고 하였다. 뜻밖의 선생님의 공격(?)을 받은 나는 갑자기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마침 내가 보기에도 약간 쉬운 부분이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영어책을 읽고 더듬거리며 해석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맞는 것인지 안 맞는 것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이었다. 내가 해석을 하고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기분이 몹시 좋아진 표정으로 손뼉까지 쳐주면서 여러 친구들 앞에서 나에 대한 칭찬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나를 가리키며 아무개가 요즘 영어 실력이 왜 저렇게 갑자기 좋아졌는지를 아느냐며 여러 친구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요즈음 아무개는 오래전부터 계속 도서실에 드나들면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밑줄을 쳐가면서 선생님한테 질문을 하면서 영어 실력을 높이고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이며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니 너희들도 영어를 좀더 잘하려면 아무개처럼 그런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난 그만 너무나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세운 작전이 맞아떨어지면서 전 같으면 마치 지옥처럼 지겹기만 하던 학교가 이제는 몇 달 만에 안 가고는 배길 수 없는 완전히 다른 학교로 변하고 말았다.      


무엇보다고 영어 시간이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보다는 매일 방과 후마다 도서실로 달려가서 영어 선생님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학교가 더욱 즐겁고 행복한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그 뒤로도 선생님과 도서실에서의 즐거운 만남은 계속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몹시 즐겁고 달콤할 정도로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뜻밖의 내게는 더욱 행복한 선생님의 제안      


어느 날 도서실에서의 일이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깜짝 놀랄만한 뜻밖의 제안을 하고 있었다.  

   

너 집에 갈 때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같이 가지 않을래나도 심심하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고어때싫으니 좋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이런 행운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난 우물쭈물하다가 나도 모르게 좋다고 응하고 말았다. 그리고 속으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사실 그때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이십 리가 조금 넘는 먼 거리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학교에서 우리 집과 같은 방향으로 약 2키로 정도 되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러기에 학교에 오갈 때 늘 보았던 초가집이었다. 선생님은 그 집 방을 하나 얻어 자취를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그날부터 나는 선생님의 퇴근 시간이 될 때가지 도서실에서 기다렸다가 단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리고 선생님의 집 앞까지 와서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 혼자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토록 꿈처럼 행복한 나날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학생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그처럼 멋진 선생님, 그리고 누구나 존경하는 영어 선생님, 집으로 돌아올 때 매일 그런 선생님과 나란히 같이 다닐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다니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벅차고 행복한 나날이 아닐 수 없었다.     


내겐 너무나 행복한 징검다리의 추억     

 

어느 여름 날 오후였다. 갑자기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소나기였기에 거세게 퍼붓던 비는 곧 방과 시간에 맞추어 금세 멈추고 말았다. 그러나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는 바람에 삽시간에 개울마다 시뻘건 물이 무섭게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도서실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선생님이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이구비가 그새 멈췄네우산도 안 가지고 왔는데 잘 됐다그치?”        


.”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그날도 선생님과 나는 서둘러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작은 개울에 도착했을 때였다. 집으로 가려면 그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아까 무섭게 쏟아진 비로 인해 시뻘건 개울물이 무섭게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그 개울은 항상 얕은 물이 항상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돌을 놓은 징검다리 위가 철철 넘칠 정도로 물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그만 물로 풍덩 빠질 지경으로 겁나게 흐르고 있었다.      


징검다리 앞에 다다른 나는 용기를 내어 나 먼저 징검다리로 놓여진 돌을 딛어가며 겅중겅중 뛰어서 가볍게 건너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뿔싸!         


선생님이 저 건너편에 가만히 선 채 나를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야네가 인정머리가 이렇게 없는 사람인 줄 이제야 알겠다나를 두고 너만 건너가면 어떻게 하니안 그러니?”     


……그럼 제가 어떻게?“      


어떻게 하기는……업어서라도 건너주어야 할 거 아니니안 그래에이구인정머리하고는…….“     


난 몹시 민망한 표정이 되어 다시 징검다리를 되건너 갔다. 그리고는 바짓가랑이를 높이 걷어 올린 다음 선생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조금도 서슴없이 내 등에 업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꿈결같은 행운이 또 어디 있을까. 난 그만 숨이 가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기분까지 야릇해지고 있었다.    

  

선생님을 등에 업은 나는 징검다리를 딛고 건너지 않고 개울을 그냥 건너가기 시작했다. 물이 그다지 깊지 않기도 하였지만 징검다리를 딛으며 건너다가는 두 사람이 모두 물로 나동그라지며 풍덩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등에 업혀 건너가면서도 내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이 여전히 밉기는커녕 오히려 정답게 들렸다.     

   

내 몸이 좀 무거운 편이니까 너 조심해서 잘 건어야 한다만일 물에 빠뜨리게 되면 다시는 상대도 하지 않을 거야알겠니?“     


…….“     


내가 생각하기에는 선생님이 조금도 무겁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개울의 폭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일단 무사히 선생님을 업고 건너게 되었다     


뜻밖의 이상한 소문     


그다음 날이었다. 학교에 가자 뜻밖의 이상한 소문이 우리 반은 물론 전교에 퍼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나를 보자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노골적으로 놀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선생님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문은 어제 내가 선생님을 업고 개울을 건너는 모습을 뒤따라오면서 목격한 학생들이 그런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데이트니 썸싱이니, 그런 말보다는 남녀간의 조금만 이상해 보이면 연애한다라는 말을 더욱 사용하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그날 오후, 우리 반 친구들은 물론 다른 반 학생들도 우리 반으로 많이 불려왔다. 그들은 모두 종아리를 걷은 채 책상 위에 올라서 있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연애설을 퍼뜨린 학생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마 그 여선생님이 너무 억울하면서도 엉뚱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며 선생님들에게 하소연을 한 모양이었다.  

   

우리 반으로 불려온 친구들은 무서운 남자 선생님에 의해 종아리에 피가 터질 정도로 매를 흠뻑 맞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왠지 후련하기도 하고 속으로는 잘 됐다는 듯 나도 모르게 연신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도 퇴근 시간마다 그 여선생님과 나의 데이트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이상한 소문은 퍼지지 않았다. 아마 매가 그렇게 몹시 무서웠나 보다.     


아마 그 여선생님이 지금까지 생존해 계시다면 90살도 훨씬 넘었겠지! 아직도 그렇게 고운 모습으로 생존해 계시기나 한 것인지, 아니면 벌써 유명을 달리 하셨는지 가끔 그 옛날 그 여선생님의 모습이 문득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소나기가 퍼붓는 날이면 더욱더…….  

     

                            <2회 중 2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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