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창작동화 -재미있는 동화도 읽고, 맞춤법도 익히고]

by 겨울나무

늦은 저녁 시간입니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영준이 아빠의 발걸음이 천 근이나 된 듯 무겁기그지없습니다.


영준이 이빠는 도배장이입니다. 엄마도 아빠처럼 도배장이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아빠는 늘 같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도배 일을 하러 다니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빠 혼자 일을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가 그새 병이 났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는 아빠의 입에서는 이따금 무겁고도 긴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일이 너무 힘이 들어서가 아닙니다. 요즈음 들어 눈에 띄게 일거리가 부쩍 줄어들어서 집안 살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엄마가 벌써 여러 날째 심한 몸살로 자리에 누워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형편으로서는 병원에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낫기를 바라며 집에 누워 그냥 앓고 있는 것입니다.


고작 병이 심해질 때마다 약국에 가서 약이나 사다 먹으면서 그날그날을 힘겹게 버티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이 온 위에 다시 서리가 내린다더니 게다가 더 큰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지금 월세를 내야 할 날짜도 벌써 열흘이나 넘었기에 집주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것도 벌써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오늘은 좀 어떻소? 능력이 없는 나한테 와서 너무 고생이 많아요. 남편으로서(*) 정말 너무 미안해서 낯이 없소.”


"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렇게 쉬고 있으니까 곧 일어나게 되겠죠. 그나저나 당신 오늘도 혼자 너무 고생이 많죠?“


엄마는 자리에 누운 채 힘없는 목소리로 오히려 아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써 웃음을 짓고 있는 엄마의 마른 입술은 마치 가뭄에 바짝 말라 버린 논바닥처럼 보기에도 측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의 가슴속은 엄마의 입술보다 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게 다 부족하고 못난 나를 만났기 때문이오. 당장은 좀 괴롭고 힘이 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아 줘요. 우리에겐 그나마 착하고 믿음직한 영준이가 있지 않소.“


"또 그 소리……. 이제 그런 소리 좀 그만해요. 그리고 당신 말처럼 우리 영준이만 한 아이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우리에겐 그 어떤 값진 보물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잖아요."


영준이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금세 힘이 솟아날 것처럼 생기가 났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준이는 정말 남달리 인정이 많고 효성도 지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린 아이답지 않게 늘 자기 자신보다는 엄마와 아빠를 먼저 생각하는 기특한 아이었습니다. 그런 영준이의 착하고 고운 마음씨는 엄마가 자리에 눕고 난 뒤부터 더욱 눈에 띄게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엄마가 자리에 눕게 되자 전처럼 밖에 나가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엄마 곁에 붙어서 잔심부름을 하고, 정성껏 간병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린 나이에 끼니때마다 좀 서툴긴 하지만 밥은 물론 반찬까지 손수 만들며 웬만한 집안 살림을 모두 혼자 도맡아 하는 신통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영준인 어딜 갔기에 안 보이지?“


한참만에 영준이가 눈에 띄지 않자 아빠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조금 전에 잠깐 나갔다가 온다고 하더니 생각보다 좀 늦네요."


"아, 그랬군. 그 녀석, 요즈음 당신 때문에 늘 집 안에만 갇혀 지내고 있으니 오죽이나 답답하겠소.“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여보세요.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갑자기 밖에서 경찰이 부르는 소리에 이빠와 엄마의 눈이 휘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한동안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경찰이……?“


아빠가 조금 불안해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현관 밖으로 나갔습니다. 대문 밖에는 경찰관 두 명이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뜻밖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영준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빠가 놀란 얼굴로 먼저 경찰관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로……?“


”이 학생이 댁의 아드님 맞습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만……?“


"이 녀석이 마트에서 과일을 훔치다가 그만 붙잡히고 말았어요.”


"네에? 우리 아이가요?“


순간, 아빠는 눈앞이 아찔하며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곧 숨이 막힐 것만 같았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조금 전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마트에서 과일 몇 개를 몰래 훔치다가 그만 주인에게 들켜 파출소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가게 주인이 용서해 주었기에 다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영준아,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이 뭐라고 그랬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영준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맞았어. 그런 걸 잘 아는 녀석이 그까짓 과일이 그렇개 먹고 싶어서 함부로 손을 대?“


"……."


영준이는 이빠의 꾸지람에 그다음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여전히 훌쩍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아빠가 그 다음에는 어쩔 수 없다다는 듯 영준이의 종아리에 매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때렸는지 영준이의 종아리에서는 어느새 새빨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매질을 멈추지 않고 있는 아빠의 두 눈에서는 어느 새 종아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보다 더 진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이빠는 좀처럼 잠을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영준이가 새삼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가슴속이 미어지는 것만 같이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남들처럼 넉넉지 못한 집안에 태어난 영준이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러웠던 아빠였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다른 집 아이들처럼 호강을 시켜주지는 못할망정 심한 매질까지 하게 된 아빠의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한동안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빠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빠는 슬그머니 영준이의 방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습니다.


영준이는 조금 전까지 일기를 쓰다가 깜박 했는지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영준이의 얼굴은 아직도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아빠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책상 위에 펼쳐진 영준이의 일기장으로 쏠렸습니다. 그리고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고 있던 아빠는 갑자기 두 눈이 휘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난 처음으로 나쁜 일을 하다가 그만 주인아저씨한테 들키고 말았다.

그래서 지구대까지 끌려갔다가 왔다.

그래서 몹시 화가 난 아빠한테 매를 맞았다. 너무나 아팠다.

사실 내가 과일을 훔치게 된 것은 내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며칠 전 엄마가 과일을 먹고 싶다는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우리 집이 가난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빠의 말대로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는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로 두 번 다시 이런 나쁜 짓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아하, 그랬었구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만…….“


순간 아빠는 영준이를 힘주어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그때, 잠이 든 영준이의 얼굴에 갑자기 빙그레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영준이는 지금쯤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동산에 가서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빠는 그런 영준이를 더욱 힘껏 꼭 껴안은 채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 * )






< 우리말 익히기 >


~로서' 와 '~로써’

* ~로서'는 지위나 신분, 자격을 나타내는 조사이고, '~로써‘는 어떤 물건의 재료나 원료, 수단이나 도구를 나

타내는 조사이다.


<'~로서' 쓰임의 예>


* 사람으로서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나로서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 그는 책임자로서 자신이 맡은 일의 최선을 다하였다. 그것은 공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 ~로써' 쓰임의 예>


* 닭으로써 꿩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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