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의 기도

by 겨울나무

춥던 날씨가 조금 풀리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놀이터로 몰려나와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습니다.


놀이터에는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윤희와 민수 그리고 성만이도 끼어서 놀고 있었습니다.


"윤희야, 조심해, 그렇게 올라가면 다친다니까.“


정글짐에 올라가고 있는 윤희를 보기가 무섭게 이번에도 어김없이 성만이가 급히 다가가며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다치지 않도록 친절하게 부축해 주고 있었습니다.


시소에서 놀 때도, 미끄럼을 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윤희의 그림자처럼 윤희만 따라다니면서 다정하게 보살펴 주고 있었습니다.


윤희는 그런 성만이가 몹시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성만이의 부축을 받으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정글짐을 한 칸 두 칸 올라가고 있는 윤희의 얼굴만 보아도 짐작이 갑니다.


'짜아식, 기분 나쁘게 윤희만 따라다니면서 저 야단이라니까.‘


아까부터 시소에 혼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민수는 은근히 속이 상했습니다. 윤희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면서 친절을 베푸는 그 꼴이 성만이는 못마땅했습니다.


아니 그때마다 성만이와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는 윤희가 더 미웠습니다.


"민수야, 혼자 거기서 뭐해? 너도 이리 와서 같이 놀자니까!"


성만이의 부축을 받으면서 마침내 정글짐 꼭대기까지 올라간 윤희가 민수를 향해 소리졌습니다.


”그래, 민수야, 너도 이리 와서 같이 놀자!“


성만이도 덩달아 윤희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민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약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공연히 자꾸만 화가 나기도 하였습니다.


”난 싫어! 니네들끼리 놀란 말이야. 난 그런데 올라가는 거 재미없단 말이야!“


민수의 입에서는 그만 통명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있습니다. 그리고는 꼴조차 보기 싫다는 듯 벌떡 일어나더니 도망치듯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쳇, 만날 성만이만 좋아하고!”


민수는 공연히 심술이 나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돌멩이를 힘껏 걷어갔습니다.


“아얏!”


애꿎은 발부리만 몹시 아팠습니다. 발이 몹시 아파오자 윤희와 성만이가 더욱 미워졌습니다.


'아하, 그게 좋겠구나!’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민수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민수는 그 길로 집을 향해 급히 달려갔습니다.


민수는 곧 크레파스 몇 개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윤희는 민수를 좋아한대요」


민수는 집에서 가지고 나온 크레파스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낙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그래야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급히 쓰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져서 삐뚤빼뚤 글씨가 엉망입니다.

쓰레기통에도, 전봇대에도, 벽에도 썼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문방구 앞에도, 길바닥에도 낙서를 수도 없이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희네 아파트 벽에 낙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거, 어떤 녀석이 낙서를 하고 있는 거야? 게 서지 못해!”


갑자기 경비 아저씨시가 달려오면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민수는 그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있는 힘을 다해 정신없이 도망치면 민수의 눈에 문득 교회가 눈에 띄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얼른 교회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텅 빈 교회에는 마침 아무도 없어서 일단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조금 전에 낙서한 거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하나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며칠 후에 학교에 가서도 제발 윤희가 성만이보다 저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민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두 손을 마주 쥔 채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딜 가나 했더니 너 여기 와서 혼자 있었구나! 그런데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니?“


어느 틈에 교회로 쫓아온 윤희가 민수 옆에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습니다. 뜻밖에 윤희를 만나게 된 민수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넌 그런 거 알 거 없어,“

"알 거 없다고? 그럼 나도 기도나 드려야지.“


윤희도 이내 눈을 감더니 열심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윤희의 기도가 끝나자 몹시 궁금한 듯 민수가 여전히 볼멘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넌 무슨 기도를 드렸는데?“


민수의 물음에 윤희는 그 어느 때보다 예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으음, 난 말이지, 앞으로 지금보다 더 사이좋게 지내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어.“

"사이좋게? 누구하고?“


"누군 누구니? 내가 친하게 지낼 애가 너밖에 또 누가 있니? 너 그렇게 해 줄 거지? 나랑 약속해. 응?“


윤희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멍한 얼굴로 갑자기 얼떨떨해진 민수의 손을 잡아당겨 손도장까지 찍어주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윤희가 하는 대로 아무 말 없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우와! 눈이 온다!“

교회 밖에서는 어느 틈에 탐스러운 함박눈이 펄펄 내리면서 소리없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민수는 윤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함박눈 송이보다 몇 배나 더 크고 소담스러운 기쁨이 금방이라도 가슴속에서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