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
윤희는 요즈음 이만저만 속이 상하는 게 아닙니다. 속만 상하는 게 아닙니다. 약이 오르고 창피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게 다 엄마 때문입니다. 엄마가 운전면허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 니네 엄마 아직도 운전면허 못 땄니?“
”…….“
친구들이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윤희는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대답 대신 얼굴이 빨갛게 물들곤 하였습니다.
”니네 엄마 바보가 아니면 돌대가리 아니니? 우리 엄만 단번에 땄다던데.“
”…….“
그러던 중에 마침내 오늘은 엄마가 다시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날입니다.
엄마는 지난 몇 달 동안 자그마치 다섯 번이나 미역국을 먹고 오늘 또 다시 여섯 번째 시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윤희야, 오늘은 엄마를 믿어도 될 거야. 그러니까 기대해봐. 알았지? 파이팅!“
오늘 아침에 엄마는 출근길에 윤희와 새끼손가락까지 걸면서 자신 있는 목소리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꼭 합격하고 돌아오겠다고 몇 번이고 굳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알았어. 오늘 또 떨어지면 다시는 엄마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윤희는 엄마한테 약간 눈을 흘기면서 대꾸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윤희는 점심 때가 조금 지나서부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립니다.
그런데 아상한 일입니다.
저녁때가 다 되도록 엄마한테서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벌써 몇 번이나 전화를 해보았지만 엄마의 휴대폰이 그때마다 꺼져있었습니다.
"흥,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걸 보면 보나마나 또 떨어진 게 틀림없다니까.“
윤희의 입이 저도 모르게 삐죽하게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무 연락도 없는 엄마가 야속하고 밉기 그지없었습니다.
"흥,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솔직하게 전화라도 해줄 일이지…….“
윤희는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혼자 투덜거렸습니다.
윤희가 이토록 엄마가 합격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한테 창피한 것도 그렇지만 엄마가 오래전부터 윤희와 굳게 약속을 힌 것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합격만 하면 윤희가 가고 싶다는 곳은 어디든지 데리고 가서 실컷 구경을 시켜 준다고 한 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가슴속까지 후련해질 정도로 드넓게 탁 트인 동해바다는 물론, 서해 바다 개펄에 가서 게와 조개를 잡으면서 마음껏 뛰어놀다가 오자고도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명승고적이나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놀이 공원도 윤희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 구경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던 것입니다.
윤희는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음껏 달릴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렙니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딸 것만 같던 면허를 벌써 다섯 번이나 떨어졌으니 윤희는 지금 이만저만 속이 상한 게 아닙니다.
"에이, 그러면서도 내가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오히려 나보고 바보라고 아단이지. 남들이 라고 쉽게 따는 그 흔한 운전면허 하나 번번이 못 따는 우리 엄마는 친구들 말처럼 정말 천치 바보란 말이야.“
”따르르릉, 따르르릉~~~“
그때 바로 윤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윤희는 몹시 반가웠습니다. 그렇지만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엄만 나빠! 왜 하루 총일 전화도 안 받느난 말아야?“
”아, 그래? 유희가 엄마한테 전화를 했었구나? 그래,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그건 그렇고, 엄마, 오늘도 또 떨어진 거지?“
윤희는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다그쳐 물였습니다.
'글쎄, 그게 말이다. 아참, 엄마 지금 집으로 급히 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 얘긴 이따가 집에 가서 자세히 말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렴.“
엄마는 매우 미안하다는 듯 왠지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다 그만두란 말이야.“
윤희는 더 이상 말도 하기 싫다는 듯 휴대폰을 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일이 한꺼번에 물거품이 되고 만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이 다 틀렸다는 생각에 맥이 빠진 모습으로 방바닥에 푹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치이, 엄만 정말 바본가 봐.“
생각할수록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가장 억울하고 분한 것은 엄마와 같이 신나게 여행을 하려던 꿈이 물거품이 된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당장 내일부터 다시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을 일이 더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윤희야, 아빠 오셨다. 너 그새 잠이 든 모양이구나?“
방바닥에 엎드린 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깡빡 잠이 들어있는 엄마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윤희의 눈에 뜻밖에도 엄마와 함께 톼근을 한 아빠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윤희야, 이걸 좀 보렴, 엄마 합격 기념으로 아빠가 아주 큰 마음 먹고 오늘 당장 차 한 대 사기로 했단다.“
”……?“
윤희가 어리둥절해서 멍한 표정으 짓자,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 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윤희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자동차 매매 계약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엄마가 기쁨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엄마가 뭐라고 했니? 꼭 면허를 딴다고 그랬지? 그래서 바로 아빠를 졸라 차를 주문해 놓느라고 이렇게 늦은 거란다. 그리고 너한테 미리 말하지 않은 건 나중에 깜짝 놀라게 하려고 엄마가 일부러 그랬던 거란다. 호호호…….“
"그럼 엄마, 정말 합격한 거 맞아?"
"아암, 그렇다니까. 내가 누구니?”
엄마는 기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마침내 윤희를 힘주어 꼬옥 껴안았습니다.
그 순간, 윤희는 그동안 가슴속에 맺혀 있던 걱정과 불안, 그리고 엄마를 미워하던 마음들이 봄 눈 녹듯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와아, 우리 엄마 이제 보니 정말 짱인 걸!“
신바람이 난 윤희도 이렇게 소리치며 엄마를 힘껏 껴안았습니다.
엄마와 윤희의 들뜬 기분을 축하라도 하듯, 아까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는 어느새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목화송이보다 더 탐스럽고 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리면서 소리 없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