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민수네 집으로 놀러갔던 은주가 반 시간도 못 되어 쪼르르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늘 민수랑 같이 어울려 노는 재미에 팔려 몇 번이고 불러야만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은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은주의 입이 뽀로통하게 나온 것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엄마가 조금은 불안한 얼굴이 되어 은주에게 다가서며 물었습니다.
"아니, 너 실컷 놀다가 온다더니 어째서 벌써 돌아왔니?“
”…….”
은주는 몹시 언짢아진 얼굴로 엄마의 물음에 대답이 없습니다.
"민수가 집에 없든?“
”…….”
여전히 아무 대꾸 없이 고개만 흔들고 있는 은주를 보자 엄마는 더욱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이번에는 은주를 꼬옥 감싸안으면서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 공주님의 마음을 이렇게 상하게 했느냔 말이야, 으응?“
마치 솜사탕치럼 부드럽고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에 조금 안심이 된 듯 은주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나 말이지, 이제부터는 죽어도 민수네 집에는 안 갈 거야."
그건 또 왜 ?“
"민수 엄마가 나한테 막 화를 내면서 당장 집으로 가라고 소리 질렀단 말이야. 민수 엄만 정발 나빠!“
은주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의 눈이 금방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 그럼 너 아무래도 무슨 일을 저지른 모양이구나?"
은주는 겁먹은 얼굴로 힐끗 엄마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괜히 화를 내면서 소리 지르고 야단을 쳤다니까.“
"괜히 야단을 칠 리가 있니? 그렇다면 엄마가 직접 알아 봐야 되겠구나.“
엄마는 곧 휴대폰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러자 은주는 펼찍 뛰면서 재빨리 엄마한테 매달리며 소리쳤습니다.
"안 돼! 내 말이 틀림없다니까."
은주의 그런 모습을 본 엄마는 다시 짓궂게 물었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왜 자꾸만 물어?“
이번에는 은주의 목소리가 조금은 풀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우리 공주님한테 괜히 화를 내다니, 그런 나쁜 사람이 있나. 그럼 다음에 민수 엄마를 만나기만 하면 엄마가 야단을 좀 쳐야 되겠구나. 그치?”
“다 그만 둬. 내가 민수네 집에 안 가면 그만이란 말이야.”
엄마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면서 계속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조금 전, 민수네 집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우와, 진짜 멋있다아! 이 어항 어디서 났니?"
민수네 집에 가자마자, 거실에 놓인 큼직한 어항을 발견한 은주가 호들갑을 떨면서 민수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어항 속에는 물레방아도 있고, 바다에서 자라는 해초들도 있었습니다. 또 어항 바닥에는 불가사리도 있고, 조개와 소라껍데기들도 있었습니다.
어항 속에서는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금붕어들이 이리저리 신나게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으응, 그거 ? 어제 우리 엄마가 사온 거야. 정말 멋있지?"
"그래, 정말 멋있는걸!"
은주와 민수는 한동안 금붕어들이 노는 모습을 정신없이 구경했습니다.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민수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은주야, 우리 이 금붕어들을 한 마리씩 건져서 만져보지 않을래?“
"안 돼! 물고기들은 비늘이 지면 금방 죽는대."
"아냐, 살살 만져보면 괜찮을거야.”
민수는 은주가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어항 속으로 첨벙 손을 집어넣더니 금붕어를 붙잡기 위해 이리저리 재빨리 손을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금붕어들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마치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요리조리 피해 잘도 헤엄을 칩니다.
"요것들이 정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민수가 이번에는 어항 속에 넣은 손을 힘껏 휘저으며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어항 속의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맴을 돕니다. 물이 차츰 속력을 내며 빨리 돌게 되자 금붕어들도 별 수 없이 물이 도는 방향을 따라 정신없이 맴을 돕니다.
바닥에 가라앉았던 찌꺼기들이 뿌옇게 뒤집히면서 일어나고, 어항속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민수야, 그만해! 그러면 고기들이 모두 죽어버린다니까!“
은주가 참다못해 겁먹은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민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죽든 말든, 요런 놈들은 혼이 좀 나 봐야 된다니까.“
민수는 마침내 얼이 쏙 빠져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금붕어 한 마리를 덥석 건져 올렸습니다. 손에 잡힌 금붕어는 있는 힘을 다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팔딱거리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그러면 그럴수록 금붕어를 잡은 손에 힘껏 힘을 줍니다. 금붕어는 곧 숨이 막혀 죽을 것처럼 입을 쩍쩍 벌립니다.
"안 돼! 정말 죽는다니까!"
은주가 울상이 된 얼굴로 다시 소리쳤지만 민수는 여전히 막무가내였습니다.
"괜찮아, 이 바보야. 이까짓 금붕어 한두 마리쯤 죽어도 우리 엄만 모를 거야. 참, 너도 한 마리 건져줄 게 만져보지 않을래?“
민수는 은주가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 한 마리를 덥석 잡더니 건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약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후훗, 우리 이번에는 이놈들 결혼식을 올려주는 게 어떻겠니?"
"결혼식?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에이 바보, 여태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니 ? 이렇게 말이야.“
민수는 갑자기 금붕어를 잡고 있는 은주의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손에 쥐고 있던 금붕어끼리 강제로 입을 맞추어주었습니다.
"호호호…….”
"하하하…….“
민수의 엉뚱한 행동을 본 은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은주가 웃는 바람에 민수도 덩달아 크게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금봉어들은 입과 입이 서로 닿을 때마다 귀여운 입을 찍쩍 벌리며 손아귀에서 팔딱거리고 있었습니다.
"호호호 금붕어들이 아주 좋은가 봐. 그치?”
“당연하지. 뽀뽀를 시켜주는데 싫을 리 있니 ? 후후훗……. 가만히 있어 봐. 우리 이번에는 다른 놈들도 꺼내서 차례차례 모두 결혼식을 올려주자 응?"
민수는 곧 손에 쥐고 있던 금붕어를 어항 속에 놓아주고는 다시 다른 금붕어 두 마리를 건져냈습니다.
”자, 이번에는 이놈들 차례야. 자, 그럼 이놈부터 어서 받아.“
"하하하……."
"호호호…….”
은주와 민수의 웃음소리가 다시 집안을 온통 요란스럽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금붕어들의 입을 맞추어주는 재미에 온통 정신이 팔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너희들, 이게 무슨 짓들이니?“
어느 틈에 돌아온 민수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구로 민수와 은주를 무섭게 바라보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화들짝 놀란 민수와 은주는 그만 접에 질린 제, 민수 엄마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물로 온통 난장판이 된 거실 바닥, 그리고 엉망이 된 어항을 본 민수 엄마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무서운 얼굴로 다시 소리쳤습니다.
”너희들 미쳤니? 정말 미쳤구나! 이런 짓이나 하려거든 은주 너도 당장 너희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그 바람에 은주는 너무나 겁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한없이 부드럽고 인자하게만 느껴지던 민수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무섭게 보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잠시 민수 엄마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고 있던 은주는 도망치듯 집으로 뺑소니를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직도 겁에 질린 채 여전히 울상을 하고 있는 은주를 향해 엄마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림, 너 이제부터는 정말 민수네 집에 절대로 안 간단 말이지?"
"당연하지, 그리고 앞으로는 민수 엄마도 절대로 안 만난다니까."
은주는 여전히 입을 빼죽거리며 토라진 목소리로 대꾸했습니다.
"딩동~~~딩동~~~“
그때 갑자기 초인종이 올렸습니다.
그리고 현관문 밖에서는 뜻밖에도 민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예요. 민수 엄마, 잠깐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은주는 순간, 기겁을 해서 놀라 벌떡 일어서면서 급히 소리쳤습니다.
"엄마, 나 민수 엄마가 찾으면 집에 없다구 그래. 알았지?“
은주의 그런 모습을 본 엄마가 은주를 향해 가볍게 눈을 흘기며 말했습니다.
”그래, 알았어요.“
은주는 급히 옷장 문을 열어젖히더니 옷장 속으로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민수 엄마의 목소리가 옷장 틈 사이로 스며들어왔습니다.
”은주 집에 안 왔어요?“
엄마가 얼른 얼버무리며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조금 전까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그새 어딜 간 거지?”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장롱 속에서 엿듣고 있던 은주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민수 엄마의 목소리는 아까 그토록 무섭게 화가 나서 소리쳤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전처럼 아주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였습니다.
엄마가 궁금해서 먼저 민수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우리 은주가 무슨 일을 저지르긴 저지른 모양이죠?”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은주에게 심하게 야단을 친 것같아 은주한테 사과를 하러 왔다니까요. 호호호…….”
민수 엄마는 몹시 미안하다는 듯,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난 엄마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난 엄마가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저런 쯧쯧쯧……. 그렇지 않다도 우리 아이 태도를 보고 무슨 일을 저지르긴 저질렀구나 짐작이 가더라니까요. 그럼 금붕어들이 꽤 여러 마리 죽었겠네요. 몇 마리나 되는지 제가 시로 사드리면 안 될까요?”
“원, 별 말씀을 다 하세요. 그런데 아직 죽은 놈은 한 마리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민수 얘길 들어보니까 그렇게 난장판을 벌이게 된 건 은주가 아니라 우리 민수였다지 뭐예요. 은주는 그저 민수가 시키는 대로 마지못해 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공연히 애먼 은주까지 나한테 야단을 맞았지 뭐에요. 모처럼 큰 마음 먹고 사오자마자 그 모양응ㄹ 해놓은 걸 보니 그땐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만, 호호호…….”
“그렇지요. 에이구, 요즈음 아이들은 왜 그렇게 어려운 걸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옷장 속에 숨어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온주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민수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겨우 안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은주는 정말 어딜 간 거죠?“
엄마는 저절로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되물었습니다.
"호호호……. 우리 은주는 왜 자꾸 찾으시는 거죠? 더 야단을 치시려고요?”
"야단이라니요. 아까 너무 야단을 쳐서 정말 사과를 하려고 곧바로 찾아온 거라니까요. 호호호…….“
"아이구, 민수 엄마도 참. 그런 일을 가지고 아이들한테 사과는 또 무슨 사과예요?"
"우리 민수가 글쎄 뭐라는지 아세요?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은주한테 야단을 쳤느냐고 어찌나 심술을 부리던지 원…….“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엄마가 얼른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그래, 민수로구나. 은주랑 다시 놀고 싶다구? 그럼 은주 바꿔줄 테니 잠깐만 기다려 보렴.”
엄마는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저절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삼기면서 이번에는 옷장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은주야! 민수한테서 전화 왔다. 아서 받아보지 않으련?“
그러자 옷장 문이 슬그머니 열리면서 은주가 몹시 민망한 얼굴로 옷장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모습을 본 민수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어디 갔나 했더니 지금까지 그 속에 숨어 있었던 거니? 이거 아줌마가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민수 엄마가 얼른 은주를 꼬옥 감싸 안으면서 미안해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민수 엄마의 품에 안긴 은주의 표정이 금세 활짝 밝아졌습니다. 그리고는 민수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엄마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엄마, 나 나갔다가 올게."
”아니 받으라는 전화는 안 받고 또 어딜 가려고?“
”받아보나 마나라니까. 또 놀러 오라는 전화지 뭐.“
은주는 대답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은주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
렸습니다.
"으이구, 우리 저 애는 여자아이가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에요. 그저 민수라면 꿉뻑 죽는다니까요.“
"호호호……. 아마 은주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건 아마 우리 민수가 더할 걸요. 호호호…….”
"호호호…….“
한바탕 큰 소리로 웃고 있는 두 엄마의 웃음소리가. 어느새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웃을 소리는 지금 한창 민수네 집으로 급히 달려가고 있는 은주의 꽁무니를 부리나케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