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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05. 2020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참된 효도]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


‘나무는 고요히 있고 싶어하나, 바람이 잘 날이 없어 가지마다 심하게 흔들리고, 자식들은 부모님에게 봉양하려 하나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요즈음 문득 이 너무나 유명한 명언이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굳이 명언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언젠가 ‘있을 때 잘해’라는 가요의 노랫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게 나의 마음을 가끔 아프게 흔들어주곤 한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님 생전에 효도다운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나 는 이 명언이 이토록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게 사무치게 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존해 계셨다면 더 잘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에 가슴이 늘 공허하고 아리게 저려오기도 한다.       


아마 비단 나뿐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누구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그런 감정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 줄로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은 살림살이가 어렵고 여유가 없으니 조금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잘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 자식들 대부분의 공통심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런 건 결코 아니다.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효도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언젠가는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하직하고 홀연히 떠나가버리시게 된다.       


일을 당하고 난 뒤에는 누구나 울며불며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효도를 했을 텐데, 그리고 그동안 단 한 번만이라도 살갑게 안부 전화라도 더 해드렸을 것을,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단 한 번만이라도 더 대접해 드렸어야 할 것을……등,      


갖가지 후회와 아쉬움이 밀물처럼 밀려오지만 그건 이미 아무 소용없는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이미 버스가 떠난 다음에 손흔들기와 소를 잃고 난 뒤의 외양간 고치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일인 것이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 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그다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효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 심심치 않게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나는 더욱 후회와 아쉬움이 도지곤 한다. 이제와서는 아무리 후회해 봐도 아무 소용없는 일인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오래전, 우리 집안에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4남매 중에 맏이였다. 


그는 가정 형편으로 인해 그 흔해 빠진 대학을 못가고 고등학교까지만 간신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3남매는 겨우 어렵게 모두 대학까지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맏이는 어느새 성장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낳아 기르며 내외가 열심히 벌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며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그 조카는 마침내 정년이 되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놀랍게도 그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면서도 매달 20만원씩 꼬박꼬박 친정아버지 통장으로 용돈을 입금해 드렸다고 한다. 그것도 입사하자마자 바로 시작해서 퇴직할 때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수십 년간이나…….     


어디 그뿐이랴. 퇴직하게 되자 그는 앞으로는 더 이상 효도를 못하겠다며 친정에 와서 대형 냉장고며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마지막으로 설치해 주었다는 갸륵한 이야기이다. 참으로 두고두고 부럽고도 특히 나에겐 큰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기회에 그 여자아이의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게 되었다. 


자식을 아무리 대학까지 잘 가르쳐 봐야 모두 소용없는 일이라고, 알고 보니 고둥학교까지만 나온 그 맏이가 가장 효도를 잘 하고 있고, 그 나머지는 도움은커녕 지금도 늘 틈만 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손을 벌리며 오히려 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난 이 아름다운 미담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어느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자랑삼아 늘어놓게 되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에 모두 감동할 줄 알았더니 한 아주머니 한 분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그 집 딸 역시 시집을 가서 어려운 살림살이임에도 과거에는 다달이 20만원씩 꼬박꼬박 붙여주더니 몇 년 전부터는 모든 물가가 인상되었다고 그 뒤부터는 40만원씩 보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식이 무모를 봉양하는 데는 결코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과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팍팍하고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안부만이라고 자주 드리고 자주 찾아뵙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  그게 바로 효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기에 <공자>도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무슨 날이나 되어 부모님을 찾아뵙고 값진 옷이나 용돈을 두둑이 드리는 것은 참된 효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자주 안부도 드리고 찾아 뵈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해드리는 것 그게 바로 참된 효도라는 말을 남겼던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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