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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06. 2020

여행길에서 얻은 것

[서비스업의 소중함과 필요성]

 늙고 나이가 많아지자 소일거리조차 별로 없는 네 명의 노인이 있었다. 

그래서 매일 서로 만나서 바둑과 장기, 그리고 지난 과거 이야기로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었다.     


네 노인들은 비교적 서로가 친한 편이었다. 그러나 가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말다툼을 하곤 했다. 

    

이 노인들 중에 한 사람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이며 학자였다. 그러다가 정년퇴직이 되어 교단을 물러난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또 한 사람은 농사꾼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악착스럽게 농사를 지은 결과, 지금은 엄청난 재산을 모은 농부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많던 농토와 재산을 모두 자식들에게 넘겨 준 사람이었다.    

 

세 번째 노인은 규모가 큰 공장을 경영하던 사장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직원들을 거느렸었다. 그러나 이 노인 역시 농부의 경우처럼 공장과 모든 재산들을 자식들에게 모두 물려주고 지금은 그냥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장사꾼이었다. 그래서 큰 상점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팔던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학자, 농부, 공장장, 장사꾼.     


이 네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세계에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비슷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모두 늙어 나이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 돈을 많이 모아 여유가 있다는 것, 일거리와 재산을 모두 자식들에게 물려 주고 현재는 소일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네 사람 모두가 그동안 자신이 몸담고 일해 온 직업에 대한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네 사람은 한자리에 모여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농사꾼이 교수에게 물었다.     


”그래, 교수님은 지금까지 한평생을 어떤 보람을 느끼면서 학생들을 가르쳐 오셨습니까?“     


”저야 뭐, 오직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봉사 한다는 마음으로 늘 학생들 앞에 섰었죠.”    

 

농부의 물음에 약간 거만스러우면서도 여유 있는 목소리로 교수가 대답했다.     


"아. 그러시겠습니다. 참, 보람 있는 일을 하셨군요. 저는 원래 배운 것이 없어 평생을 두더지처럼 땅만 파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 물정 모르고 그저 일만 해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도 중요하지만 먹고 살아야 교육도 시킬 수 있고, 나라의 발전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밥을 굶은 빈속으로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또한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겠읍니까?


 그래서 좀 외람된 말씀이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에게 그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양식을 제공해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농사꾼은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농사가 제일 중요한 일이라며 긴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공장장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허허, 모르시는 말씀, 공부는 그냥 저절로 시킬 수 있는 겁니까? 공부를 하려면 우선 학교가 있어야 하고, 또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학생들이 입고 다녀야 할 옷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일용품과 학용품이 다 어디서 나옵니까? 


그리고 농사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땅만 있다면 거저 곡식과 채소들이 어디서 쏟아져 나옵니까?

농사에 필요한 각종 농기구와 비료, 그리고 농약 등이 있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 말씀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뒷받침이 없이는 그 누구도 단 하루도 살아가기가 어렵다 이 말씀입니다.“    

  

공장을 경영했던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기가 무섭게 이번엔 장사꾼도 지지 않고 점점잖게 끼어들었다.    

 

"여러분들의 말씀을 듣고 보니 모두 일 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채소와 곡식, 그리고 공장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낸 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부터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들이 쌓여 있다고 해도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때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아셔야지요. 그런 중요한 일을 지금까지 누가 해왔습니까? 바로 우리 같은 장사꾼들이 아닙니까, 안 그래요?”     


네 사람은 오늘도 바둑을 두다 말고 입씨름이 한창 벌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기지 않는 나라는 언젠가는 망하고야 맙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교수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자 농부와 공장 사장, 그리고 장사꾼도 지지 않고 한마디씩 끼어들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식량이 부족한 나라는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여, 그렇게 되면 나라의 발전 또한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뭐니뭐니 해도 공장에서 우수한 제품들을 쉬지 않고 만들어 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 역시 장사꾼이 없다면 그 모두가 소용없는 일이지요.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얼른 찾아다 펀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노인들의 의견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더욱 팽팽해져 가고 있었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 끝에 입씨름이 벌어진 것은 비단 어제와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다가도 직업 이야기만 나오면 금방 어린아이들처럼 다투기를 잘 하는 그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이렇게 모여서 매일 답답하게 바둑을 두지 않으면 고작 말다툼이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서야 어디 그게 말이나 됩겠습니까? 오랜만에 바람도 쐴 겸,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이런 의견을 내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장사꾼이었다.   

  

"그거 마침 좋은 생각입니다."

“여행을 갔다가 온 지도 꽤 오래됐는데 그거 좋고말고요.”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농사꾼의 의견에 노인들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찬성하며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있다. 

이렇게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모두가 찬성하는 바람에 여행은 곧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네 사람 모두가 승용차 한 대에 합승하기로 하고, 운전은 차례차례 번갈아 하기로 하였다. 목적지와 여행 기간도 확실하게 정해 놓지 않았다. 

돈이 많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 그저 싫증이 날 때까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되돌아오기로 마음을 모았다.     

 

마침내 여행길에 오른 네 사람은 어느 시골길을 한창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허어, 이제는 시골도 옛날 같지 않고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 경치에 도취한 한 사람이 먼저 감탄했다.     


"아, 그럼요. 우리가 자랄 때와는 천지 차이고말고요.“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하기를 정말 잘 했죠? 공기도 맑고 이거 얼마나 좋습니까?“   

 

네 사람은 오랜만에 흐뭇하고 기쁜 마음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일찍이 여행길에 오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우리 이름난 관광지는 옛날에 많이 다녀보셨을 테니 이번에는 이름이 별로 나지 않은 곳으로만 골라 다녀보는 게 어떨까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고 말고요.“     


오랜만에 네 사람의 의견은 척척 잘 맞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자동차는 포장도 안 된 시골길을 계속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돌도 많고 길이 올퉁불퉁하여 자동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런대로 기분은 그만이었다.      


그렇게 한창을 달리다가 갑자기 뜻밖의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자동차의 시동이 꺼졌다가는 걸리고, 또 걸렸다가는 다시 꺼지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이거 갑자기 엔진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죠?“     

”글쎄 말입니다. 정말 큰 걱정이로군요.“     

”누가 혹시 자동차를 좀 볼 줄 아는 분은 안 계십니까?“     


그러나 모두가 고개만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네 사람 모두 지금까지 직접 차를 고쳐 본 일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동차가 고장이 날 때마다 카센터 등에 가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쳐왔기 때문이었다. 

    

자동차는 그 뒤에도 불과 5미터를 가지 못하고 시동이 다시 꺼지곤하기를 여러 차례 하다가 이윽고 더 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자동차에 기름마저 똑 떨어졌던 것이었다.       


”이거 정말 큰 낭패로군요.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하필이면 기름마저 똑 떨어지다니…….“


지금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전을 하던 공장 사장이 난감한 듯 핸들을 놓으면서 바람빠진 풍선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산만 겹겹이 둘러싸여 있을 뿐, 마을이라고는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오가는 자동차나 행인들도 눈에 띄지를 않았다. 그 흔한 휴대폰마저 귀찮다고 모두 집에 두고 와서 연락할 방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람에 네 사람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달리 한결같이 우거지상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을 게 아니라, 카센터나 주유소가 나타날 때까지 차를 밀고 갈 수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나 원 차암,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당해 보네.“     


울며 겨자먹기라고 했던가.  결국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고 나머지 세 명은 뒤에서 미리 시작했다.      


자동차는 마치 궁뱅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에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어서 이만저만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이마에서는 어느 새 구슬 같은 비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숨만 헐떡거릴 뿐 자동차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어이구, 이거 못할 노릇이군요.“     

”누가 아니랍니까? 이러다가는 여행은커녕 집에도 못가고 지례 죽고 말겠어요.“     


네 사람의 입에서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원망의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힘이 들어도 조금만 더 참아야지,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 어서 다시 힘들을 좀 내 봐요. 어서!“    

 

마지막까지 그래도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은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얼마 안 가서 모두가 진이 빠져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비탈길을 오르고 언덕을 넘으면서 자동차는 여전히 거북이 걸음으로 느릿느릿 앞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저기 멀리 보이는 것이 혹시 카센터 아닐까요?“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소리치자, 다른 노인들도 반가움에 모두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예, 맞는 것 같아요. 틀림없이 카센터입니다. 그리고 마침 그 옆에는 주유소도 보이는 것 같은 걸요.“     

"이렇게 외진 곳에 저렇게 고마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노인들은 지금까지 축 늘어졌던 힘이 다시 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차를 밀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길도 험한데 너무 고생들을 하셨습니다.“


자동차가 막 카센터에 이르자 젊은 기술자와 정비사들이 매우 친절하게 노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름투성이가 된 작업복을 입고 밝은 낯으로 자동차를 열심히 수리하기 시작했다. 기르고 삽시간에 자동차를 수리하고는 다시 기름까지 가득 넣었다.      


"자, 이제 다 됐습니다. 한번 시동을 걸어보십시오. 아마 이제부터는 좀처럼 속을 썩이지 않을 겁니다.”     

정비사의 말에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아있던 공장 사장이 무거운 몸을 추스리면서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주유소 부근을 몇 바퀴 돌면서 시운전까지 해보았다.   

   

자동차는 언제 고장이 났었더냐는 듯 힘있게 잘도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자 네 사람의 노인들 입가에는 금방 환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다. 

     

"젊은이! 정말 고맙소. 만일 젊은이들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늙은이들은 갈 데 없이 길바닥에 쓰리지고 말았을 거요.“     


시운전을 끝낸 공장장은 젊은 정비사에게 몇 번이나 굽실거리며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동차 수리비와 기름값 외에 수고비까지 두둑이 얹어 주었다. 지금 돈을 따질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요?“     


일행이 모두 차에 올라타자 다시 운전대를 잡은 공장 사장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젠 무엇보다도 배가 고프니 우선 음식점에 가서 식사부터 합시다.“     

”예, 그게 좋겠군요. 그리고 오늘은 여행도 좋지만 그보다는 모두 지쳐 버렸으니 어디 가서 푹 쉬었다가 내일 다시 떠나기로 하는 게 어떤지요?“     

”예,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군요. 내 말이 바로 그말이예요. 오늘은 정말 기운이 빠지고 피곤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군요.“     


노인들은 모두가 힘이 빠지고 지쳐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를 못하면서 간신히 한 마디씩 대꾸했다.    

 

자동차가 한동안 달리다가 멈춘 곳은 어느 음식점 앞이었다. 


”어서 오셔요. 뭘로 드릴까요?“     


네 사람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음식점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리따운 종업원 아가씨가 미소를 띠며 반갑게 맞이했다. 상냥하고 친절하기는 음식점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네 사람은 그들의 친절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면서 우선 마음에 드는 음식을 푸짐하게 주문했다.    

  

”어이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이제야 좀 살 것 같군요. 허허허…….“     


몹시 시장하던 참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농사꾼이 먼저 만족한 듯 입을 열었다.     


"아, 참, 잘 먹었다. 이 음식점이 아니었더라면 우린 또 갈 데 없이 길바닥에 아마 쓰러지고 말았을 겁니다.“     


노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 날 저녁.     


음식점 근처에 있는 여관에서 여장을 푼 네 사은 우선 샤워부터 마친 후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리고는 깨끗하고 아늑한 여관 분위기와 종업원들의 친절에 대해 다시 한 번 모처럼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구, 허리야. 갑자기 담이 든 모양인데…….”     


자리에 눕자마자 교수가 먼저 허리를 부여잡으며 엄살을 떨고 있었다.      

“어이구, 팔다리야, 갑자기 몸살이라도 날 모양인 걸.”


농사꾼도 몸을 뒤틀면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이구, 배야, 이거 너무 과식을 한 모양인데.”


장사꾼도 배를 움켜잡고 쩔쩔 매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오늘 낮에 자동차를 미느라고 너무 무리들을 하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러자 그 중에서 가장 덜 지쳐 보이는 공장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벽에 붙어있는 벨을 눌렀다. 곧이어 종업원이 달려왔다.


“급한 환자들이 생겨서 그런데 혹시 병원에 연락 좀 해 줄 수 있나? 왕진을 말일세.”     

“예,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종업원이 나간 뒤 얼마 후에 곧 의사와 간호사가 도착했다. 응급실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의사는 차례대로 정성껏 진찰을 하고 나서 주사와 약을 주면서 설명했다.    

   

“아마 조금만 안정을 하고 푹 주무시면 곧 나으시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상이 있으면 다시 연락을 주시도록 하고 편히들 쉬십시오.”     


그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고통스러운 밤이었지만 모두들 무사히 밤을 보내고 네 사람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심하던 통증만 겨우 가시고 몸은 여전히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내 집이 가장 편하다는 걸 이제야 알겠군요.“     


문득 집 생각이 났는지 교수가 먼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고 말고요. 내 집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농사꾼 역시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난 이번 기회에 고생은 좀 많이 했지만 그 대신 많은 결 새로 배웠습니다.“     


장사꾼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배우셨다니요? 뭘 말입니까?“     

"지금까지는 제가 일해 온 직업만이 가장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말씀입니다.”


장사꾼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세 사람의 눈길이 장사꾼에게로 쏠렸다. 그러자 다시 장사꾼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제 있었던 일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동차 정비사, 주유소, 음식점, 여관,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들은 지금쯤 이떻게 되었겠습니까?“     


장사꾼의 질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때 공장 사장이 문득 생각이 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들은 꼼짝없이 큰 번을 당하고 말았을 겁니다.“     


공장장의 말에 이번엔 농사꾼이 다시 말을 이었다.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이제야 그동안의 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저 혼자만 잘 살기 위해 일해 오면서 제 직업만이 최고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니…….“     


그러자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교수도 한 마디 거들게 되었다.    

  

”그리고 보면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군요, 하하하…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엄마든지 많은데 그걸 모르고 우리들의 직업만이 이 세상에서 최고인 줄로 알았으니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하하 …….“

”허허허…….“    

 

그들은 오랜만에 한바탕 통쾌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업에 대해 새삼 고마움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자, 그럼 우리도 이제 무엇인가 나만을 위한 직업이 아닌 남을 돕는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잠시 뒤에 느닷없이 공장 사장이 이런 의견을 내놓게 되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 네 사람이 힘을 모은다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그게 걱정이군요.“     


"글쎄요.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기는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한참 궁리를 하던 끝에 그들이 다시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은 것은 노약자를 수용하고 돌보는 커다란 양로원의 설립하는 일이었다.   

    

”자, 그럼 우리 이제 여행은 이것으로 그만 마칩시다. 그리고 이 길로 바로 돌아가서 일을 착수해 봅시다.“  

"암, 바로 그래야 하고 말고요.“  

   

그들은 즉시 짐을 싸서 차에 옮기기 시작했다.    

 

네 시림의 노인이 여행길에서 얻은 것, 

그것은 어느 한 가지 특정한 직업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들 모두가 다른 직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라 해도 늘 남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직업들이 얼마나 보람있는 직업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 더 생각해 볼 문제 >     


* 서비스업이란 어떤 것이며, 보통 직업과 어떻게 다른지를 말해 보자. 

* 네 사람의 직업을 서로 이야기해 보고,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 의견을 말해 보자.    


       

     청소년 직업진로지도 예화자료집 수록<한국교육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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