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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07. 2020

고집불통 할아버지

[근로의 신성함. 직업의 귀천]

치 쇠심줄보다도 더 질긴 할아버지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못된 인간은 바로 편히 놀면서 실컷 먹기나 하자는 흉악한 심보를 가진 녀석들이란 말이여. 말 못하는 짐승들도 각기 제 할 일을 알아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데 어찌 사람의 탈을 쓰고 빈둥빈둥 놀고 먹겠다는 거여?“     


할아버지는 이따금 화가 난 표정으로 아들이나 며느리 앞에서 이렇게 떠들며 불끈 화를 내곤 했다.


서울로 온 뒤, 벌써 8년째나 환경미화원을 고집스럽게 하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아버님의 뜻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이제 저희 집 형편도 이만하면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데 무슨 이유로 아버님까지 돈을 버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어느 날, 며느리는 하도 답답한 마음에 불쑥 이렇게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며느리를 나무랐다.      


"차아, 이렇게 답답하기는, 쯧쯧쯧…….아직도 너는 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인데, 사람이란 그저 평생 일을 즐겨야 하는 거여.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어떤 일은 하든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꼭 지켜야 할 인간의 근본이란 말이여, 근본.”     


"글쎄, 그걸 제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요. 애비 체면도 좀 생각해 달라는 이 말씀이죠. 명색이 그래도 대기업의 회장인데…….“     


"아니, 뭐라고? 체면이 밥 먹여 준다던? 그리고 회장의 애비가 미화원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던?“     

"그건 아니지만, 이제 아버님 연세도 내일모레면 일혼이신데, 전 이제 남의 눈이 부끄러워 더 이상 못 살겠어요.“     


"못 살겠다면 어떻게 할 건데? 넌 인생은 육십부터란 말도 못 들어 봤니? 일을 하는데 나이가 어딨어. 그저 사람은 자꾸만 움직이고 활동을 할수록 점점 젊어지고 건강해진단 말이여. 이 팔뚝을 좀 보렴. 이래 뵈도 힘깨나 쓴다는 젊은이 대여섯쯤은 지금 당장이라도 싸워 이길 것 같은 걸, 하하하…….“   

  

할아버지는 팔을 쭈욱 뻗었다가 오무려 힘살이 불룩 솟아오른 알통을 며느리 앞에 내보이며 자랑스럽다는 듯 껄껄 웃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쉬지 않고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일흔이 가까운 노인답지가 않아 보였다. 팔에 힘을 줄 때마다 팔뚝에는 제법 큼직한 알통이 불끈 솟아오르곤 하였다.      


할아버지의 부지런한 성격과 꺾을 수 없는 외고집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는 늘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일을 즐기시는 할아버지의 그런 성격은 그 옛날 시골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얘야, 난 뭐니뭐니해도 오직 너 하나 잘 되기만 바라면서 이런 고생을 꾹 참고 살아가는 것이여. 그게 나한테는 단 한 가지 낙이란 말이여, 내 말 알아듣겠냐?"     


할아버지에게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아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아들의 장래를 위해 온갖 고생을 견디며 비지땀을 흘려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셨다. 몸도 돌보지 않고 미련스럽게 오직 황소처럼 일만 하신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했다. 오직 일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치 남이 보기에는 아둔한 사람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다른 할아버지들은 그렇지 않았다. 되도록 몸을 아끼며 서로 만나기만 하면 놀고 즐기기기 일쑤였다.      


할아버지는 늘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들판에서 일만 하기 때문에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 모두가 그처럼 좋아하는 화투 놀음도 몰랐다. 또한 장기나 바둑은 물론이고 여행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 채 그저 일로 세월을|보냈다.      


어쩌다 돈이 좀 생겨도 쓸 줄을 몰랐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부를 때 이름 대신 ‘구두쇠 할아버지 '라고 불렀다.     


"미련 곰탱이 같은 사람 같으니라고죽을 때 돈을 짊어지고 갈 작정인가?"

"누가 아니래. 죽도록 일만 하면서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이렇게 빈정거리며 비웃곤 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할아버지의 별명은 하나 둘 더 늘어만 갔다. 구두쇠, 노랭이, 일벌레, 쇠고집, 고집불통……등.“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런 비웃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조금도 부끄럽다거나 언짢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고도 흐뭇한 자랑거리로 여기는 눈치였다.    

 

"흥, 답답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누군가가 놀고 먹는다면 누군가가 그만큼 더 고생을 한다는 걸 알아야지. 그렇게 일을 싫어하다가는 언젠가는 크게 후회할 때가 오고야 말걸.”     


할아버지는 놀림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혼자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곤  하였다. 그리고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아낌없이 송두리째 바치겠다는 결심을 해온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몇십 년 뒤, 마침내 할아버지가 그토록 꿈에도 소망하고 그리던 일이 마침내 열매를 맺고야 말았다.       

그 동안 할아버지의 피와 땀이 어린 뒷받침에 힘입어 마침내 아들이 이름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상경하여 우습게 시작한 일이 사업이 마치 비누 거품처럼 번창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뒤에는 제법 큰 회사의 어엿한 회장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아들은 늘 할아버지의 은혜에 깊은 고마움을 뻐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성공한 것은 오직 할아버지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무서운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온 뒤로도 할아버지는 계속 쉬지 않고 청소부 일을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다 못해 어느 날, 아들은 다시 정중하게 권유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이제 제발 그 일 좀 그만하시고 편히 쉬십시오. 아무리 일도 좋지만 건강도 좀 생각하셔야죠, 지금 젊은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그 일을 아버님이 하신대서야 어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저도 이제부터는 마음껏 효도를 하고 싶으니 제발 그 일만은 그만 두십시오. 제가 이렇제 빌겠습니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손까지 비벼가면서 할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고집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모르는 소리 마라. 넌 이미 나한테 효도를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바라던 대로 그만큼 성공을 했으니까 말이여. 효도를 좀 더 하고 싶거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간섭하거나 더 이상 방해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그동안 잔뜩 별렀다가 모처럼 입을 연 아들이었다그러나 이번에도 혹 떼러 갔다가 한 개를 더 인 꼴이 되고 말았다그래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입을 열었다.    

  

"그럼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제발 환경미화원만큼은 그만 두시는 건 어떠신지요?"


아들의 말에 할아버지는 갑자기 화를 벌컥 내고 있었다.


"그 일만은 그만 두라니 ? 아니, 그럼 너도 내가 그 일을 하는 게 그렇게도 못마땅하단 말이더냐?”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아들은 찔끔해서 이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노여움이 가득한 표정이 되어 다시 입을 열었다.    

  

"옛말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아무 탈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넌 그만큼 배웠으니까 그런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겠지만, 난 워낙에 배운 게 없어서 땀흘려 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주라곤 없지 않느냐?”     


그러기에 제 말씀은 달리 무슨 일을 하시라는 게 아니라 그냥 편히 쉬시라는 겁니다."

”쓸 데 없는 소리. 이렇게 사지가 멀쩡한데 그냥 놀고 밥을 먹다니. 일을 하던 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병이 나게 마련이여, 또 병이 심해지면 죽게 마런이고, 넌 내가 생으로 병이 나서 죽는 꼴을 그렇게도 보고 싶단 말이더냐?“    

할아버지의 단호한 대답 소리를 들은 아들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계속 푸념을 하고 있었다.     


”일이란 누구나 재미를 붙여 가면서 해야 되는 거여. 일이 싫다고 편안한 것만 찾으면 일이 점점 더 싫어지는 것이여. 일이 그렇게 싫다면 굶어야지 무슨 염치로 밥을 먹고 살겠다는 거여, 도둑놈이 따로 있어? 그런 녀석들이 바로 도둑놈들이지. 멀찡한 쌀 도둑놈들이란 말이여. 음식 도둑!“   

  

"아버님, 알겠습니다. 이제 그만 고정하십시오. 제가 생각이 짦았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음성이 점점 높아지는 바람에 아들은 겁이 나서 오히려 비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니다내 얘기를 좀 더 듣거라너도 생각 좀 해보험세상 사람들 모두가 좀 힘이 들고 지저분한 일이라고 해서 쓰레기나 거름 치우는 일을 마다하고 너처럼 높은 자리만을 원한다면 나라의 살림살이는 어떻게 되겠니그러기에 내 말은 학자나 농사꾼도 중요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나 물건을 파는 장사꾼도 모두 소중하다 이 말이여옛부터 직업의 귀천은 없다고 하지 않았니그러니까 결국 내 말은 무슨 일이든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된다. 이 말이여. 내 말 알아듣겠니?“     


"예, 예, 잘 알겠읍니다. 그럼, 전 이제 이만…….“     


아들은 더 무슨 말을 꺼냈다가는 더 큰 야단을 맞을 것 같은 생각에 이렇게 얼버무리고는 그 자리를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아들과 며느리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안타깝고 무거워지기만 했다. 아무리 말려도 옛날부터 일이 몸에 밴 할아버지의 대쪽 같은 외고집을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보, 아무리. 일도 좋지만 저렇게 과로하시다가 덜컥 병이라도 나시면 어떡하죠?“    

 

어느 날, 며느리가 아들에게 걱정스러운 낮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이오. 워낙 고집불통이시니 난들 어떻게 하겠소.”     


아들도 걱정스럽고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대꾸하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일을 그만큼 하셨으면 넌더리가 나실 때도 되었으련만정말 알아 모셔야 한다니까

요.“     


이때, 아내와 아들의 얘기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석이도 한 마디 끼어들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이상해. 할아버지 때문에 정말 창피해서 못 살겠어.“     

”아니, 넌 또 뭐가 창피하다는 거니?“     


석이의 말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게 되었다


그러자 석이가 다시 못마땅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창피하지 않고, 다른 집 할아버지들은 고급 양복도 입고 멋도 부릴 줄 아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그게 뭐냔 말야. 거지처럼 매일 작업복만 입고 다니면서 일만 하니까 그렇지.”     

“아니, 얘가 버릇없이 할아버지를 거지라고 함부로 지껄이다니?”     


아내는 놀란 얼굴로 석이를 나무랐다.    

  

그러자 석이는 여전히 할아버지에 대해 못마땅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다른 집 할아버지들은 안 그렇다는데우리 할아버지는 참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이상한데?”     

“할아버지는 어쩌다 나한테 용돈을 줄 때마다 이다음에 벌어서 꼭 갚으라고 하신단 말이야.”     

"하하하,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하시는데 도대체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이번에는 석이의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장난스럽게 웃으시면서 다시 물었다.      


"손자한테 용돈을 주고 꼭 갚아야 된다고 하는 할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어?“     

"아니야.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따지고 보면 할아지의 말씀이 절대로 옳은 거야. 남의 돈을 갚지 않고 그냥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돼요.”     


아들이 이렇게 타이르자, 석이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되묻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어째서 남이란 말이야?“     

"그래? 그건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구나. 어쨌든 내 힘으로 벌지 않은 다른 사람의 돈을 그냥 쓴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란 말이야. 알아들었니? 그런 돈은 언젠가는 꼭 깊아야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 되는 거란다. 알았지? 석이는 그럼 할아버지한테 갚아 드려야 할 돈이 얼마나 되는 거니?”     


"먼저 받은 돈은 다 갚고 저번에 장난감 사려고 꾸었던 돈 천 원만 남았어.“

 

"다른 돈은 다 갚다니 ?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갚았다는 거니?“     

"그건 꼭 돈으로만 갚은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시키는 심부름 한 가지에 천 원씩 깎아 주시거든.”     

뭐어?”


석이의 설명을 들은 아내와 아들은 지금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일에 대해 저절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도 석이를 그토록 끔찍이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할아버지였다. 그동안 석이에게 은근히 올바른 교육까지 일깨워 주신 할아버지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석아그럼 할아버지한테 빌린 돈 갚게 천 원만 줄까?"


아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며 석이에게 묻게 되었다.      


"싫어, 아빠가 준 돈은 안 갚아도 되는 돈인가? 아빠가 준 돈으로 할아버지한테 갚고 나면 그게 그거지 뭐.“     

아하계산이 그렇게 되나하하하…….“

“어이구, 녀 석도 참, 호호호…….“     


석이의 대답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그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환경미화원 일을 계속하셨다. 그리고 밤이 늦게야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하시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설마했던 큰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따르릉~~ 따르릉~~~‘     


잡자기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아내가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여기 병원입니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그만…….“     

"아니, 아버님이 어떻게 되셨다고요?“    


전화를 받던 아내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그만 떨어 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뒤아내는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소식을 들은 아들도 곧이어 병실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뛰어들어왔다


병실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흰색 가운차림의 의사 선생님의 표정도 납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들과 아내를 향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거운 쓰레기를 잔뜩 실은 수레를 끌고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수레 밑에 깔려 그만…….“     


아들과 아내는 너무나 뜻밖의 일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넋을 잃은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침대에 눕혀진 할아버지의 몸 위에는 이미 하얀 가운이 머리끝까지 덮여 있었다.     


이윽고 아들이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서더니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내도 아들의 어깨에 의지한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으흐흑,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늘 말씀하시더니 이게 무슨 변이란 말입니까? 으흐흑…….“     

"아버님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렇게 일만 하시더니 호강 한 번 못 하시고 이게 도대체 무슨 벼락이란 말입니까? 흐흐흑…….“    

      

아들과 며느리의 슬픔은 마치 가슴 속이 미어지는 둣 했다. 죽도록 일만 하시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가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들과 며느리의 흐느끼는 모습을 한동안 곁에서 지켜 보고 있던 의사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고정들 하십시오. 할아버지께서 너무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모양이군요. 그러나 행복이란 각자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편히 놀면서 호의 호식했다고 해서 행복했다 말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아마 그 동안 열심히 일을 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느껴보지 못한 최대의 행복을 누리며 사셨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럭저럭 슬픔 속에 사흘이 지나고마침내 장례를 치를 날이 돌아왔다

구름처럼 모여든 문상객들의 통곡 소리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장례가 모두 끝나갈 무렵 석이가 갑자기 무덤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무슨 일인지 무덤 앞의 땅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슬픔에 감긴 채, 마지막까지 통곡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석이의 그런 행동을 아무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결국 깊숙하게 땅을 판 석이는 주머니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던 천 원짜리 지페를 땅속에 넣더니 땅속에 묻고 흙을 다시 덮었다.      


“할아버지, 빌린 돈은 꼭 갚아야 한다고 하시더니 왜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돌아가셨어요. 여기 빌린돈 천 원을 묻었으니까 필요할 때 꼭 꺼내 쓰셔야 돼요. 으흐흑…….“     


석이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다시 어깨를 들먹이며 슬프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 줄 몰라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과 아내는 그런 석이의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 그저 조금씩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평생을 일만 무섭게 하다가 돌아가신 고집불통 할아버지’     


아마 할아버지의 고집은 지금쯤 하늘나라에 가서도 여전하시리라


또 다시 일을 찾아 열심히 하시면서 조금도 고달픔을 모르시리라. 그리고 그 누구도 맛보지 못한 최대의 행복감에 젖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실는지도 모를 일이다. ( * )        




  


< 더 생각해 볼 문제 >     



*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무슨 일을 하셨으며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셨을까?

* 할아버지는 어떤 것이 가장 큰 죄라고 하였나?

* 만일 여러분의 할아버니가 이렇게 일만 하신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 아들과 며느리는 할아버지의 일을 왜 말렸나?

* 할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돌아가시게 되었나?            



        청소년 직업진로지도 예화자료집 수록<한국교육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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