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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10. 2020

대학 총장과 수위 할아버지

[빈 수레가 오히려 요란한 법] 

‘잘 익은 벼일수록 머리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삼척동자도 이미 모두 잘 알고 있는 속담이라 하겠다.      


어린 시절, 이 속담의 뜻을 이해하고 나서 이처럼 마음에 쏙 들 수가 없었다.      


남보다 많이 배우고 머리에 지식이 가득한 사람은 스스로 겸손해져서 저절로 머리를 숙인다는 이야기이다. 이 얼마나 멋진 태도가 아닐 수 있는가! 천만 번 옳은 격언이며, 그리고 반드시 모두가 그렇게 돼야만 당연한 진리라 하겠다.        

  

머리에 든 것이 가득한 사람은 우선 언행일치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겸손한 말투, 겸손한 걸음걸이, 단정한 옷차림, 게다가 마음씨조차 모두가 못 배운 사람들보다는 어디가 달라도 달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처음 대하는 사람이라 해도 걸음걸이와 태도, 그리고 교양미가 풍기는  말 한마디만 들어보아도 많이 배운 사람다운 티가 나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솔직히 배움에 대한 회의를 느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넋두리라 여겨질는지 모르겠지만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 라는 속담도 이에 따라 등장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아무리 많이 배운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자신보다 배움이나 가진 것이 적은 사람, 그리고 지위가 자신만 못한 사람들 앞에서 거드름과 교만을 떨어보기 위한 배움이라면 차라리 못 배운 이만 못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오래전부터 ‘직업의 귀천이 없다’ 또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는 이야기도 이미 귀가 아플 정도로 들어왔다.         


그러나 머리에 든 지식이나 교양을 몸소 실천에 옮기지는 못할망정, 가끔 일부 어떤 사람들의 예를 보면 배우면 배울수록 고개가 더욱 빳빳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지고 점점 더 불쾌해지는 것을…….      

오래전,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한 사람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유명대학의 현직 총장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개인적으로 학교 견학을 가게 된 비교적 한가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화려한 일정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일개 국회의원으로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깨에 힘까지 주고 약간의 거드름까지 피워가며 미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곧 대학 총장이 손수 모는 자동차를 타고 대학교로 향하게 되었다. 시내를 한동안 달리던 자동차가 마침내 대학교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학교 정문 앞에 차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수위실 안에서 근무하던 수위가 어느 틈에 쏜살같이 달려 나오더니 부동자세로 서서 총장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위는 꽤나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러면 그렇지, 수위 신분에 제까짓 게 총장에게 저렇게 안 하면 밥을 먹고 살 수가 있나? 더구나 초대받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까지 함께 타고 있는데!’


그런데 곧 이상한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수위가 뛰어나와 거수경례로 예를 포하게 되자 대학 총장은 곧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뛰어나가더니 수위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깍듯이 인사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갑자기 얼떨떨해짐은 물론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 대학 총장 같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총장과 수위와의 그런 깍듯한 인사가 끝나고 다시 대학교로 들어가서 그 대학의 이모저모를 시찰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참다 못하고 대학 총장에게 묻게 되었다. 고개만 끄덕해주어도 될 일을 차에서 내려서까지 굽신거릴 필요가 어디 있었느냐고.     


이에 대학 총장은 그때야 껄껄 웃으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더란다.  


”사실 아까 그 수위분은 저의 부친이십니다. 오랫동안 이 학교의 총장직으로 일을 하시다가 퇴직을 하고 총장직을 저에게 물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수위로 일하게 되신 것이었지요. 그러니 제가 그렇게 인사를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도 이 학교 총장직을 마치면 아버님을 따라 저도 수위를 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넋두리를 마치기 전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한 마디 더 해볼까 한다.      


언젠가 오래전에 우리나라 굴지의 신문사를 방문해 볼 일이 있어서 신문사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볼 일을 모두 마치고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서 신문사 국장, 과장과 함께 꽤나 넓은 1층 로비를 통과하게 되었다. 정복 차림의 나이가 든 경비들이 여기저기 서서 삼엄한 분위기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이 지나갈 때마다 경비들이 깍듯이 국장과 과장을 향해 거수 경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경례를 하든 말든, 안전에도 없는 듯 그냥 무시하며 통과하고 있었다. 일개 신문사의 국장과 과장 자리가 이렇게 대단한 것인가! 그 대신 본인이 어색하게 약간의 목례를 건네주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야, 이 건방진 녀석들아! 인사 좀 받아주면 어디가 덧난다더냐?‘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품격을 높여주는 지름길이라고 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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