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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12. 2020

어느 가정의 가르침

[홀로서기의 교훈]

햇수로는 꼭 26년 전의 일이다.      


사회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박사가 그해 4월에 외아들의 결혼식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박사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아들 결혼식에 청첩장을 전혀 돌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그리고 검소하고 조촐하게 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놀랍게도 친지들에게 일일이 박사가 정성껏 써서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늘 바쁜 분들께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게 될 것 같아 초대장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 덕분에 아주 예쁜 며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지를 받아본 친지들은 깜짝 놀라는 한편 아아, 과연 박사다운 분이라며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박사는 그 당시 규모가 제법 큰 병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던 중임에도 병원 직원들에게도 전혀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결혼식을 조용히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더욱 놀랄만한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은 결혼식 비용 일체를 부모에게는 전혀 단돈 천 원짜리 한 장의 도움 없이 아들 혼자의 힘으로 마련해서 올린 결혼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뉴욕 파슨즈 대학을 나온 며느리 역시 4백만 원 가량의 순 국산 혼수품만 마련해 가지고 신혼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박사의 외동딸 역시 이번 아들이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를 나온 사위와 결혼을 시킬 때도 열쇠 3개는커녕, 전혀 혼수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동딸은 그동안 소파 하나 없이 어려운 살림을 하다가 얼마 전에야 마침 이웃집에서 쓰던 중고 소파를 하나 구입해서 사용하게 되었다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박사는 우연한 기회에 다시 환하게 웃으면서 부연 설명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 남매는 세칭 일류 대학 출신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났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박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야단을 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당장 학교 성적 같은 것에 대해 나무라기보다는 폭넓은 융통성을 가진 밝은 심성의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크게 멀리 보면서 기다려준 것‘이 그의 교육관이라고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사의 부인 역시 두 남매가 대학 시험을 치를 때마다 혼자 시험을 보러 가게 하는 등,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혼자 스스로 배우고 느끼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어릴 때부터 불우한 친구들을 돕는 등, 남달리 의협심이 강했고, 딸은 알뜰하고 성실해서 늘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각별했다고 한다. 

     

또한, 박사는 남매가 대학을 졸업할 때마다 5백만 원씩을 손에 쥐어주면서 이런 말을 남겨주었다고 한다.        

“이 돈은 다른 게 아니라 지금부터 사회인으로서 평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 위한  소중한 돈이다. 이제 부모로서 너에게 해줄 일은 모두 끝난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너희들을 그동안 키워준 부모에게 은혜를 갚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아들은 지난 개천절 날, 한국의 얼을 세계 곳곳에 떨치겠다는 야심으로 ’한얼‘이란 무역중개회사를 개업하게 되었다. 물론 이때에도 부모님의 도움은 전혀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창업을 하게 된 것이다.     

   

아들은 그동안 한양대 졸업 후, 중소기업에서 사업 감각을 익히며 번 돈으로 미국에서 1년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시장을 공짜로 돌아보기 위해 여행사 투어가이드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불과 29살에 마침내 혼자의 힘으로 창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 남매 모두 부모님의 뜻에 따라 부모의 유산은 조금도 물려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각오가 굳게 서 있었다.      


이 박사는 끝으로 또 이런 말을 하였다.  

    

부모는 아이들이 홀로 설 수 있기를 인내로 기다려 주어야 하고, 고통도 혼자 견디어 나갈 수 있도록 늘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까지 읽어본 많은 분들 중에는 ’아하, 바로 그분의 이야기였구나!‘ 하고 그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실 줄로 믿는다.     


그렇다. 이 분이 바로 그 당시 서대문에 위치한 ’고려병원‘의 원장이며, 정신과 전문박사인 이시형 박사의 이야기였다.   

   

본인 역시 그 당시 이 기사를 읽어보고 너무나 감동스럽고도 존경스러운 나머지 이 기사가 실렸던 신문사에 이 분에 대한 존경스러운 마음을 담은 글을 크게 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이 글을 읽고 크게 감동을 하든 말든, 그건 어디까지나 각자의 선택이며 판단의 기준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작은 넋두리 한 토막을 다시 상기해 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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