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학교 공부를 마친 선식이는 너무나 신바람이 나서 저도 모르게 껑충껑충 뛰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바람이 날 줄은 정말 짐작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오늘 종례 시간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아주 기쁜 소식이 한 가지 있어요. 여름 방학 과제물 전시회에서 우리 반 선식이가 쓴 글이 전교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어요.”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면서 선식이를 향해 제멋대로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야! 선식아, 축하한다.“
"선식아, 이럴 때 멋지게 한 턱 쏴야 하는 거 아니니? 너 내 말 명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알지?”
선식이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갑자기 쑥스러운 마음에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야! 선식아. 나 좀 보자!“
한창 신바람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선식이를 갑자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같은 반의 영민이가 부리나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 자식이 왜 갑자기……?“
영민이는 영어 실력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서 반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소문이 난 친구입니다. 그래서 영민이란 이름 대신 영어 박사라는 별명까지 붙은 아이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영민이는 원래 말을 할 때 발음이 또렷하지 않습니다.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를 하면 맞춤법 도 엉터리입니다. 그런데 영어만큼은 국어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선식이는 그런 영민이가 벌써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까짓 영어 좀 잘한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게 왠지 못마땅하였습니다.
게다가 선식이가 영민이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영민이가 좋아하는 수미를 영민이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 선식아, 너 오늘 정말 튀었더라. 어쨌든 축하한다."
"축하는 무슨…….”
”그건 그렇고, 넌 왜 하필이면 그까짓 시시한 글짓기를 열심히 배우고 있지?“
”……?”
아아, 그러고보니 영민이는 지금 진심으로 영민이를 축하하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못마땅하게 여기던 중인데 대놓고 빈정거리고 있는 말투에 선식이는 울컥 속이 뒤를리고 말았습니다. 선식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영민이가 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혼자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영어 학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요즘은 국어나 글짓기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아무 쓸모가 없다더라.“
"그래? 그럼 너처럼 영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 말이니?”
“아암, 두말하면 잔소리지,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리고 난 우리 아빠가 5학년이 되면 토플이나 토익 시험 준비를 하라고 하셨어.”
"도폴이나 토익? 그게 뭔데?“
"하하하, 너 여태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가만히 보니까 소식이 깡통이구나? 무식하기는…….”
선식이는 다시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영민이가 이번에는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참, 너 요즘에도 수미하고 자주 만나니?“
"그건 왜 묻는 건데?“
"왜라니? 걘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거 알고 있니? 그러니까 수미한테 엉뚱한 생각하지말란 말이야. 너 그랬다가는 너 정말 국물도 없어, 알았지?“
"아니, 뭐, 뭐라구?“
선식이가 불끈해서 소리쳤지만 영민이는 어느새 저 멀리 급히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마냥 신바람이 나서 하늘을 날 것만 같았던 선식이의 기분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삽시간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녁때였습니다.
갑자기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선식이가 전화기를 얼른 귀로 가지고 갔습니다.
”선식아, 나야, 수미. 너 오늘 상 받은 거 진심으로 축하해.“
수화기에서는 뜻밖에도 언제나 들어봐도 곱고 예쁜 수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선식이는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응. 수, 수미구나. 정말 고마워,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니?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
“공부를 끝내고 전시회장에 가서 네가 쓴 글을 읽어봤는데 정말 부러울 정도로 잘 썼더라.”
“그래? 그게 정말이니?”
선식이는 수미의 말에 너무 기뻐서 금방 흥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니까. 그리고 난 항상 너처럼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부렵더라.”
“부럽기는……. 어떤 자람들이 그러는데 요즈음에는 글짓기보다는 영어를 잘해야 다른 사람들이 알아준다던데. 장래성도 있고 말이야.”
“그건 아니야. 우리반 영민이 좀 봐. 얼마나 우스워 보이니?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걘 한글도 제대로 모르잖아, 그러면서도 영어 하나 잘한다고 으스대기만 하고……. 그게 바로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면서 뛰기부터 하는 꼴이지 뭐니. 난 우선 우리 국어를 열심히 배운 다음에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게 순서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래? 그럼 넌 영민이 같은 아이들을 싫어한단 말잉지?”
“당연하지. 난 정말 그런 아이는 밥맛이라니까.”
“…….”
선식이는 순간 뛸 듯이 기뻤습니다. 마음이 금방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올라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영민이 때문에 속상하고 우울했던 마음은 어느새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식이의 얼굴빛이 금세 활짝 핀 함박꽃처럼 환해졌습니다.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 선식이는 이제 오늘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기는 아예 글렀습니다.
어쩌면 수미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끝내 진정하지 못한 채 꼬박 밤을 지새우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