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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08. 2020

담배 한번 피우기 위해서는

[담배 이야기①]

그 옛날, 어르신들은 어떤 방법으로 담배를 피웠을까?    



 

아시는 분들은 이미 잘 이해가 가시겠지만, 약 7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담배 한번 피우기 위해서는 여간 어려운 절차가 뒤따르는 게 아니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번거로운 절차와 수고가 뒤따랐는지 모를 일이다.      


성냥이나 라이터가 없던 그 시절, 우선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러 가지 부수적인 도구(?)들이 뒤따라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선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부터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성냥이나 라이터가 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려면 필수적으로 부싯돌과 부시를 소지하고 다녀야 했다.      


부싯돌이란 단단하게 굳어진 흰색 차돌멩이를 말한다. 그리고 부시란 부싯돌을 때리고 충격을 주어 불을 일으키게 하는 강한 쇳조각을 이르는 말이다.      


거기에 수리취를 뜯어다 말려 곱게 가루로 만든 수리취 가루가 있어야 한다. 적당한 분량의 수리취 가루를 부싯돌 위에 놓고 단단히 손으로 잡고 반대쪽 손으로는 부시를 잡는다. 그리고 수리취 가루에서 연기가 날 때까지 몇 번이고 힘껏 때리고 쳐서 충격을 주어야 한다.      


마침내 불꽃을 일으키며 심한 충격을 받은 수리취 가루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그 수리취가루를 미리 준비해 놓은 담배에 직접 올려놓고 입으로 힘껏 빨면 비로소 담배를 태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담배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처럼 깔끔하게 잘 말아진 궐련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장수연(일명 봉지 담배)이란 담배를 주로 피웠다. 장수연이란 커다란 봉지에 담배가루를  가득 넣고 봉한 담배의 이름이다.      


 장수연이란 담배를 미리 담뱃대에 요령껏 적당량을 손으로 눌러 잘 눌러놓았다가 거기에 불이 붙은 수리취 가루를 놓고 빨거나 담배를 종이에 말아 침으로 발라 담배를 만든 다음 불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담배를 말아 피울 종이가 흔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종이든 손바닥만한 종이만 눈에 띄면 잘 보관해 두었다가 담배를 말아서 피울 때 이용하곤 하였다.      

   

그래서 가끔은 종이가 없어서 자식들이 공부하고 있는 공책이나 교과서까지 한 귀퉁이를 몰래 ‘부욱’ 찢어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그런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자식들이 아버지와 공책이나 교과서를 찢어서 담배를 피웠다고 울고 불며 싸우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곤 하였다. 그만큼 무지하기도 했지만,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자식 공부보다도 더 소중하고 급했던 것이 아닌가 회상해 보게 된다.    

  

그리고 화롯불이 댐배를 피울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화로에 있는 불에 대고 담배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불에 타던 나뭇가지를 하나 들어 이용하든지, 아니면 모닥불을 태울 때에도 담배에 불을 붙이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굳이 복잡하게 부싯돌을 이용하여 불을 붙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절차가 번거롭고 복잡하고 종이가 귀했다고 해서 담배를 좀 덜 피우거나 끊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럼 담배를 피우기 위해 그 정도만 준비하고 있으면 그만인가? 그게 아니었다.


담배를 소지하고 다니기 위해서는 우선 담배를 넣고 다니는 담배쌈지가 있어야 하고 부싯돌과 부시를 넣고 다니는 작은 주머니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종이가 없으면 곰방담뱃대(길이가 짧은 담뱃대)나 장죽이 있어야 했다. 그걸 모두 소지하고 다니려면 주머니의 부피가 항상 퉁퉁하고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라이터가 생겼다. 그때 휘발유를 넣고 불을 붙이는 지퍼 라이터가 있었는데 그 라이터 하나만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부러워할 수가 없었다. 재산목록 1호에 속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밉시 있게 만든 가스 라이터도 나왔는데 그 가스 라이터는 거짓말 보태서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며 모두들 야단법석들을 떨고 있지만 그땐 전혀 그런 걸 모르고 살았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집의 방들이 좁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 비좁은 방에서 대여섯 명, 많게는 열 명이나 넘는 가족들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방에서 담배를 피울 때 식구들의 건강을 배려하여 밖에 나가서 피우는 법은 절대로 없었다. 식구들이 연기를 마시게 되면 건강을 해치게 되다는 걱정도 전혀 하지 않았다. 

     

특히 겨울철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식구들 모두가 방에 있을 때 담배를 자주 피우게 되면 방 안이 온통 담배 연기로 자욱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담배 연기가 맵다고 불평을 하는 식구들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서는 흡연자가 그때마다 밖으로 나가서 피우고 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담배 연기가 독해서 마시기가 어려운 사람이 오히려 밖으로 피해 나가곤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이 싫으면 절간을 떠나면 된다는 말이 그와 상통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담배 연기가 보통 때보다 더 자욱하고 앞에 앉아있는 사람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할 경우도 종종 벌어지곤 하였다. 어른들이 모여 화투 놀이를 할 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화투 놀이를 하면서 연신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인해 정말 바로 눈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욱해진다. 그럴 때면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어이구, 연기야. 이 집 곰 잡겠구먼!”     


아마 실제로 곰을 잡을 때는 연기를 이용하여 잡는 방법이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너무 연기가 자욱해서 도무지 견디기 어려울 때는 잠깐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문을 도로 닫고 다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연기가 자욱하다고 하여 불평을 하며 연기를 피해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라이터 걱정도 없고, 종이 걱정도 전혀 없는 세상, 그리고 편리하게 궐련도 생기고 정말 요즈음이야말로 담배 피우기에 아주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 온 것이다.     

  

단, 정책적으로 절대 금연구역이니, 금연시설이니 하는 말로 애연가들에게 겁을 주고  법으로 금지하는 일만 없다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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