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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24. 2020

떼 뱀의 추억

[뱀에 관한 이야기①]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그 시절에는 시골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려면 대부분 십 리나 이십 리가 넘는 먼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예사였다. 산을 몇 개나 넘고 논과 밭길을 따라 먼 길을 매일 그저 뚜벅이로 걸어 다녀야만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해 초여름의 오후였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마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따라 날씨가 좀 더워서 온몸이 녹지근하고 무거워 걷기조차 몹시 힘이 들었다. 게다가 배도 고파서 기운까지 떨어져서 몸은 천근이었으며 손에 든 책가방까지 무겁게 느껴지고 그토록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제 집에까지 가려면 20리 길에서 아직도 3분의 1일이 남은 거리였다.      


“따르릉~~~”     


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자전거 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얼른 반사적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웬 낯선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앞질러 가고 있었다. 걷기가 몹시 힘이 들다 보니 몹시 부러웠다.    

  

이럴 때 자전거 뒤에 한번 태워준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땐 보통 사람들은 자전거 한번 타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전거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는 곧 내 옆을 지나 앞질러 달려가더니 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길 아래쪽은 산기슭 밑으로 개울이 벋어 있는데 그땐 가물어서 물이 흐르지 않고 있을 때였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일단 그 개울로 내려갔다가 조금 가다가 다시 건너편 둑길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자전거를 타고 개울로 막 내려가서 달리던 아저씨가 갑자기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가 하고 그쪽을 바라보니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페달을 밟고 있던 두 다리를 번쩍 들고 한창 달려가고 있었다. 꽤나 괴이한 광경이었다. 왜 그랬을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곧 개울쪽으로 급히 가보게 되었다. 아,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아저씨는 일단 그곳에서 사라진 뒤였고, 그곳에는 난생처음 보는 괴이하고도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뱀이었다. 그 개울가 산밑 바위틈에는 해마다 많은 뱀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었다. 뱀의 이름은 제대로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그 뱀을 보고 떼 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지금 개울 바닥에서는 떼 뱀들이 떼로 나와 둥근 공 모양을 이루고 서로 엉켜 붙은 채 큰 덩어리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얼른 짐작하기에도 적어도 100마리 이상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조금 전에 자전거 아저씨가 깜짝 놀라 두 다리를 번쩍 들고 비명을 질렀던  이유를 곧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만일 이 세상에서 가장 징그럽고 무서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뱀을 무서워하고 끔찍스러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하나이다.      


아마 그것이 인간의 심리인 것 같다. 가장 두렵고 무서운 존재를 만나게 되면 우선 적개심이 생겨 깜짝 놀라게 되고, 그다음에는 급히 피하거나 그 무서운 상대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라고.

      

난 일단 뒤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가방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돌멩이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갑자기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걸어갈 힘조차 없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불끈 새로 샘솟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도 모를 새로운 힘이 샘솟고 있었다.   

     

마침 내가 바라고 찾던 큰 돌멩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머리통보다 조금 더 큰 돌멩이였다. 


두 손으로 번쩍 들어보니 생각보다 무거워 어깨에 올려놓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하지만 전에 없던 힘이 불끈 솟아올라 그야말로 젖먹은 힘을 다해 어깨에 올려놓은 다음 뱀이 있은 곳을 향해 다시 용감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용사의 기개가 바로 이런 것이었으리라.    

    

내가 돌을 들고 가게 된 목적은 그 돌로 뱀을 단번에 때려죽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적개심과 함께 공격성이 발로된 것이다. 신바람이 남과 함께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였다. 

     

드디어 떼 뱀 앞에 다가서게 되었다. 


뱀은 조금 전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뭉친 채 여전히 큰 덩어리를 이루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이 돌로 힘껏 내려치기만 하면 뱀들 모두가 여지없이 바로 일망타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침내 나는 두 손으로 돌멩이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다음 떼 뱀 덩어리를 향해 힘껏 내리치게 되었다.    

 

“에이잇!”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렇게 큰 돌멩이로 내려치면 뱀들이 그대로 돌멩이에 맞아 죽게 될 줄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일단 뱀을 향해 돌진했던 그 큰 돌멩이가 아무 소리 없이 도로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다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고무 타이어에 돌을 던졌을 때 다시 튀어 오를 때의 공의 모습처럼…….     


예상이 좀 빗나가긴 했지만 난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기로 했다. 뱀이 돌멩이에 맞을 때 비록 아무 비명도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몹시 고통스러운 충격은 받았던 모양이다.   

   

그 고통이 너무 심했던지 뱀들은 마침내 실타래처럼 서로 엉켰던 몸이 슬슬 풀어지며 각기 분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각기 산기슭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저희들이 살고 있던 굴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더러는 돌멩이에 맞은 충격으로 인해 몸에 피가 흐르는 놈도 눈에 띄었다. 

     

난 한동안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그만 집으로 향했다. 그것을 끝까지 구경하다가는 해가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날이었다. 


난 어제 그 사건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아침밥을 먹고 다시 등굣길에 어제의 그 자리를 향해 부지런히 가보게 되었다.     

 

뱀들은 대부분 모두 사라졌다. 아마 살아서 제 굴로 모두 돌아간 모양이다. 그리고 약 2,30마리가 그 자리에 아직도 남아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     


그 남아있는 놈들은 죽어가면서도 모두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뱀에 대해 상식이 없는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과연 왜 그랬을까요? 순간 그때 난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기왕 죽을 바에는 자식이라도 하나 더 낳고 죽고 싶었던 게 뱀의 마지막 욕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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