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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25. 2020

귀가 달린 구렁이

[뱀에 관한 이야기②]

옛날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던 시절, 그땐 오직 어른들의 옛날이야기 듣는 것이 큰 낙이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면 따뜻한 온돌방 화롯가에 모여 앉아서 이웃의 누구는 어떻게 누구는 어떻다며 살아가는 이야기, 옛날이야기 등, 비록 가난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때마다 화로에는 어김없이 허기를 달리기 위해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곤 했다.      


감자가 익어갈 때는 감자 껍질이 벌어져 터져나가는 소리를 내곤 했다.     

 

감자나 고구마가 ‘피이익~~‘ 소리를 내며 김을 내뿜는 바람에 화로에 있던 재가 날아 방바닥이 온통 재가 날린 먼지로 가득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때 ’피익‘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감자나 고구마가 방귀를 뀐다고 반가워하곤 하였다. 거의 다 익어간다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부족하면 큰 바가지를 들고 장독으로 나가서 독에 꽁꽁 언 동치미를 건져다가 썰어 먹기도 하고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래곤 하였다.  겨울에 마시는 동치미의 맛,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여름밤이면 어김없이 마당에 큰 멍석을 깔아놓고 이웃들이 모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멍석을 편 마당 한쪽에는 으레 모닥불을 지펴놓았다. 모닥불은 모기들이 덤벼드는 것을 막기고 하지만 옥수수며 감자와 고구마 등을 구워 먹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그땐 유난히도 별똥별(유성)이 많았다. 멍석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보면 가끔 밤하늘에 수도 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영롱하게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였다. 그리고는 심심치 않게 별똥별이 포물선을 그리며 어딘가로 쏜살같이 내려오며 떨어지곤 하였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별똥별을 주시하곤 하였다.      


“야아, 저기 별똥 떨어진다!”     


반딧불이도 이리저리 심심치 않게 자주 날아다녔다. 그렇게 한가롭고 재미있는 여름밤은 깊어가곤 하였다.   

    

어른들은 누구네 딸이나 아들은 언제 결혼을 하게 된다는 둥, 누구네는 언제 논을 맨다거나 보리와 호밀 등 수확을 한다는 둥, 주로 일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지 서로 앞을 다투어가며 옛날이야기를 하기에도 바빴다.     

 

옛날이야기들은 대부분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대부분 토속 신앙을 맹신하고 있어서 그런지 해태와 용, 그리고 이무기 등에 관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쨌거나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심지어는 별똥별을 주워서 먹어보았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하는 어른도 있었다.      


아무리 어린 나이였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난 참다못해 별똥 맛이 어떻더냐고 얼른 묻게 되었다. 


그러자 어른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인절미처럼 아주 쫄깃쫄깃하면서도 맛이 있었다고. 난 거짓말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또 구렁이가 용이 되기 직전에는 구렁이의 머리 부분에 귀가 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어보게 되었다.           

“쳇! 귀가 달린 구렁이가 세상에 어디 있담!”     


난 그런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듣기는 하지만 절대로 모두 다 믿지는 않았다.      

     

내 어린 시절에 살던 마을은 5,60채가 모여 제법 큰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시골 마을이었다. 윗마을에는 내가 살았고 아랫마을에는 나와 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다. 우린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아마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아랫마을 친구네 집에 잠깐 들렀더니 그날따라 친구가 뒷동산에 뱀이 많으니 한번 구경을 가자고 했다. 몹시 징그럽고 무서웠지만 호기심에 따라나섰다.      


친구네 집 나지막한 뒷동산에 올라보니 친구의 말대로 뱀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얼른 보기에도 3,40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뱀 구멍마다 뱀이 긴 몸뚱이를 반쯤 내놓은 채 가까이 가도 별로 움직임이 없었다.   

  

더러는 완전히 굴 밖으로 다 나와 있는 뱀도 눈에 띄었다. 아마 봄이 되니 따뜻한 햇볕을 쐬러 나온 듯 볕을 쐬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다가가는 눈치를 알아차리고는 스스르 모두 굴속으로 숨어 들어가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난 두렵고 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본능적으로 또 다시 적개심이 발동했다.     

 

친구에게 집에 야전삽(군대에서 쓰는 삽과 곡괭이 겸용으로 쓰는 삽)이 있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마침 야전삽이 집에 있다고 대답했다. 난 친구에게 야전삽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 뒤, 뱀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몰래 동정을 살펴보니 뱀들이 하나둘씩 다시 밖으로 기어나오고 있었다.      


난 야전삽을 ’ㄱ’자형으로 접어서 괭이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야전삽을 들고 뱀들이 나와 있는 굴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굴 밖으로 나와 있는 뱀을 야전삽으로 도막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 마리 이상 도막을 내고 나자, 나머지 뱀들은 이미 굴속으로 모두 들어가 숨어버리고 말았다.


야전삽으로 기습을 당해 반 동강이 난 뱀들은 굴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몹시 징그럽기는 했지만 어쨌든 통쾌했다.      


그다음에도 며칠 만에 한 번씩 뱀을 야전삽으로 도막을 내는 그 징그럽기 짝이 없는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 다시 어느 날이었다.     

 

난 삼태기 하나와 낫을 들고 마을 건너편 둑으로 풀을 베러갔다. 그때 우리 집에는 소와 돼지, 닭 등을 키웠기 때문에 자주 그들에게 줄 풀이 필요했던 것이다.      


삼태기를 풀숲에 놓고 풀을 한창 부지런히 깎고 있었다. 그리고 뽕나무가 무릎 정도 높이로 무성하게 자란 풀숲 밑에 풀이 많아 보이기에 그 뽕나무 밑으로 낫을 들이댔을 때였다. 


뭔가 낫 끝으로 뭉클하는 이상한 느낌에 잔뜩 겁이 난 나는 뽕나무 잎을 낫으로 헤치며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곧 질겁을 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앗!”      


그 뽕나무 밑에는 지금까지 구경해 보지 못한 매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뭉쳐있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구렁이를 많이 보긴 했지만, 그렇게 큰 구렁이를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겁이 바짝 난 나는 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이번에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렁이를 잡을 만한 물건을 찾아다니기에 바빴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얼른 잡지 않으면 그사이에 구렁이가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돌아다니다 보니 두 눈이 번쩍 띄게 되었다. 마침 어느 풀숲에 군대용 전화선(검정색)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전화선들이 흔했다.    

   

난 그 전화선으로 우선 올가미를 단단히 만들었다. 구렁이의 목을 졸라매기 위해서였다.      


낫과 전선을 들고 다시 뽕나무 숲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가슴이 사정없이 두근거리며 두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숲을 낫으로 조심스럽게 헤쳐보니 다행히도 구렁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똬리를 튼 채 앉아 있었다. 다음에는 머리 부분을 찾아야 했다. 곧 머리 부분이 나타났다. 

     

난 바로 올가미를 머리 부분에 조심스럽게 끼우고 낫으로 목을 졸랐다. 아주 단단히 졸랐다. 생각보다 아주 쉽게 구렁이의 목을 졸라맬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전선의 끝을 잡고 길바닥쪽을 향해 끌어당겼다. 어찌나 큰 구렁이였는지 여간해서는 잘 끌려나오지 않는 것을 있는 힘을 다해 끌어당겼다. 마침내 구렁이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길바닥으로 나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아아, 이건 다시 봐도 너무나 큰 구렁이였다. 그리고 머리부분을 자세히 보게 된 나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곧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들의 말대로 구렁의 머리에 아주 작은 귀가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귀는 어린 쥐의 귀 모양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어른들의 이야기 대로 정말 얼마 뒤에 용이 되려던 놈이었을까!    

  

난 다시 생각했다. 아니다. 이 세상에 용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난 곧 전선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질질 끌다가 속도를 가하며 있는 힘을 다해 공중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역기를 하던 힘들 다해 힘껏 돌렸다. 


그렇게 서너 바퀴를 돌리다가 길바닥에 힘껏 패대기를 쳤다. 그리고는 다시 공중으로 돌리다가 패대기를 치기를 서너 번, 구렁이는 이미 모든 힘을 잃고 별로 움직임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조금씩 꾸물거리고만 있었다. 


난 그 구렁이를 길바닥에 그대로 둔 채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가 어찌나 크게 혼이 났는지 모른다. 

      

난 지금도 내 눈을 가끔 의심하고 있다. 난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정말 귀가 달린 구렁이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파충류의 종류와 생태, 그리고 생김새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나는 지금도 그때의 그 구렁이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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