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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n 10. 2020

뱀에 관한 몇가지 추억들

[뱀에 관한 이야기③]

옛날에는 뱀이 요즈음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어쩌다 논두렁과 밭, 그리고 풀숲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징그럽고 흉측하게 생긴 뱀이 스르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곤 하였다.      


못자리에서 모를 찌고 있을 때에도, 그리고 모를 낼 때에도 가끔 물살을 가르며 쏜살같이 돌아다니는 뱀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거머리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겁이 없는 사람들은 물에서 다니는 뱀(무자치, 또는 물뱀이라고 하였음)들은 독도 없고 물지도 않는다며 맨손으로 뱀을 잽싸게 집어서 공중으로 멀리 던져버리곤 했던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었다.   

    

뱀은 여러 가지로 병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며 그것을 즐겨 먹는 사람들도 유난히 많았다. 어떤 근거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만병통치약으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뱀을 잡아먹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던 것 같다. 

    

그토록 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뱀을 전문적으로 잡으러 다니는 땅꾼들도 많았다. 잡은 뱀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뱀을 잡는 것은 땅꾼들뿐만이 아니었다. 뱀을 잡아서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한가한 겨울철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산으로 돌아다니며 뱀이 있을 만한 곳을 깊이 파면서까지 뱀을 잡으러 다니는 동네 사람들도 꽤 많았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낮은 산골짜기에서는 사철을 가리지 않고 작은 실개천이 맑은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물도 아주 얕았다. 그 실개천에 가면 가재도 잡을 수 있어서 나도 가끔 그곳에 가서 가재를 잡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가재를 잡기 위해 그곳에 가서 돌멩이 밑도 살피고 조그만 굴도 살피면서 가재잡이 하는 일에 온통 정신을 팔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 큰 구멍이 있기에 그 속에 혹시 가재가 들어가 있나 하고 손을 억지로 들이밀어 보았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굴에서 바로 손을 빼고 말았다. 무언가 굴속에서 뭉클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변이란 말인가!


그 굴속에서 뱀이 슬슬 기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다지 큰 뱀은 아니었다. 약 4,50 센티쯤 되는 길이의 가느다란 뱀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그 뱀의 색깔이었다. 온몸이 모두 새빨간 색깔이었다. 그런 뱀은 난생처음 보는 뱀이어서 더욱 무섭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부터 두 번 다시 그 실개천으로 가재를 잡으러 갈 수가 없었다.  

            

① 매일 뱀탕을 즐겨 드시던 어르신 이야기      


어렸을 적 우리 마을에는 뱀을 유난히 좋아하는 어르신 한 분이 있었다.  

    

뱀이란 말만 들어도 그야말로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한 어르신이었다. 뱀을 많이 먹으면 많이 먹을수록 그만큼 잔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며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뱀탕을 드셨던 것이다. 

       

뱀의 종류도, 그리고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뱀이라면 모조리 잡거나 길가에 버려진 뱀까지 주워다 모조리 고아 먹곤 하였다.     

 

뱀이 없을 때는 심지어 누군가가 길바닥에 오래전에 때려죽인 뱀까지 갖다가 고아 먹곤 하였다. 마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혹시 뱀을 잡게 되면 그냥 버리지 말고 갖다가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기에 어쩌다 그 집 바깥마당을 지나가다 보면 어김없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질그릇으로 된 뱀탕이 끓고 있었다.      


그렇다면 평생 그렇게 뱀을 많이 드신 그분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보려고 그렇게 많은 뱀을 고아 먹긴 했지만 그 결과 60을 겨우 넘긴 나이에 세상과 하직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②  백사탕에 관한 이야기      


오래전, 서울에서 직장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같은 직장의 동료가 느닷없이 내게 다가오더니 백사탕을 한번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1주일만 휴가를 내면 되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89년이나 90년 쯤의 일이었다. 그는 나보다 대여섯 살 위의 연배였다.     


백사탕이란 하얀 뱀을 푹 고은 뱀탕이라고 하였다. 그것을 매일 한 그릇씩 1주일만 먹으면 건강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이 없다며 속는 셈 치고 한번 먹어보자고 하였다.     


백사탕을 먹으러 가는 곳은 경기도 용문이라고 하였다. 그곳에 가서 1주일간 별장에 묵으면서 하루에 한 그릇씩 마시며 쉬었다가 오면 된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뱀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징그럽고 혐오스러워서 보기만 해도 아예 기겁하며 놀라곤 하는 터여서 처음부터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아니 큰돈을 줄 테니 먹어보라고 해도 절대로 먹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백사탕 한 그릇에 놀랍게도 5백만 원이나 한다는 것이었다.     

 

1주일을 6일로 계산하더라도 뱀값만 해도 무려 3천만 원을 지불해야 되는 거금이었다. 백사탕이 그렇게 비싼 줄은 정말 몰랐던 일이었다. 나의 형편으로는 놀라울 정도의 거액이 아닐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주일간의 별장 사용료도 문제였다. 별장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아가씨들이 끼니때마다 친절한 서비스로 식사를 제공해 주게 된다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서비스를 아가씨들한테 제공 받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1주일에 적어도 6천만 원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가 이미 30여 년 전이었는데 아마 그런 제안을 해온 그 사람은 그럴만한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난 가령 그때 아무리 그럴만한 여유가 있었다 해도 절대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죽으면 죽었지 그것만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이 세상에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백사탕 한 그릇에 그렇게 비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③ 뱀을 즐겨 먹는 사람들     


첫 번째 이야기       


오래전의 일이다. 갑자기 시골에 볼일이 생겨서 한적한 시골길을 자동차로 급히 달리고 있었다. 


한동안 속력을 내다 보니 갑자기 자동차 밑에서 ‘툭!’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꺼림칙하고 이상한 느낌에 곧 차를 세워놓고 내가 지나온 도로를 가만히 살펴보게 되었다.      


아아! 그런데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있나!      


그때 마침 도로 위를 지나가던 뱀이 그만 내 차에 치어 피투성이가 된 채 길바닥에 늘어져버린 것이 아닌가. 끔찍하기도 하기도 하고 기분이 몹시 언짢고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입맛까지 똑 떨어질 지경이었다.    

  

난 찝찝해진 기분으로 그냥 차를 달려 목적지를 향했다. 차를 모는 동안 내내 조금 전에 그 끔찍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지인에게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별일도 아니라는 듯 아무 대꾸도 없이 싱글싱글 웃고만 있었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며 지인의 딸이었다.   

   

“어머, 그럼 그 뱀 그 자리에 그냥 두고 오셨어요?”    

  

난 갑작스런 뜻밖의 질문에 어리둥절한 채 난감해진 얼굴로 되묻게 되었다.    

  

“그냥 두고 왔지 그럼……?”       

 

“에이, 아까워라. 좀 가지고 오셨으면 좋았을걸!”     


난 어이가 없었다.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한 마음에 다시 묻게 되었다.    

  

“그 뱀을 갖다가 어쩌려고?”     


난 그 아이의 뜻밖의 설명에 다시 한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가 막혔다. 

  

그 뱀을 가지고 왔더라면 도막을 쳐서 고추장을 발라 구워 먹으면 그렇게 기가 막힐 정도로 맛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자주 그렇게 구워 먹은 경험이 있다고도 하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뱀을 도막을 쳐서 고추장을 발라 잘 구워서 도시락 반찬으로 가지고 가서 먹으면 더욱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어린 여자아이인데 뱀을 이토록 좋아하다니……. 난 더 이상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긴  옛날 여름철에는 도마뱀도 많고 청개구리도 많았다.  그런데 도마뱀과 청개구리는 살아있는 그대로 먹게 되면 불끈 힘이 솟아오르고 건강해진다는 속설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도마뱀이나 청개구리를 잡아서 생으로 입속에 넣은 다음 눈 딱 감고 꿀떡 삼키면 좋다고 하여 그것들을 생으로 삼키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두 번째 이야기      


여름철이 돌아오면 뱀을 잡아먹기 위해 수시로 산으로 올라가던 젊은이가 있었다. 군대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이였다.       


뱀을 잡아서 어떻게 먹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선 뱀을 잡으면 바로 껍질을 홀랑 벗겨낸다고 하였다. 


그런 다음 머리통만 잘라버리고 한 손으로 꼬랑지 부분을 꼭 잡고 윗부분부터 이로 끊어가며 꼭꼭 씹어먹는다고 하였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여서 꾸물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뱀을 그대로 씹어 먹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고소하고 맛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정말 이야기만 들어도 정이 떨어지고 입맛까지 떨어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언제부터 그렇게 뱀을 즐겨 먹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군대에 복무할 때 훈련 중에 처음으로 뱀을 먹는 방법을 배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먹어본 뱀의 맛이 그렇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뒤부터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난 이제부터는 아무리 맛이 좋더라도 먹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날것을 먹으면 언젠가 재수가 없으면 디스토마 균에 감염될 우려가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디스토마 균처럼 위험하고 무서운 균도 없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설명해 주면서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의 대답은 영 딴 판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며 모르는 소리 좀 그만두라고 하였다.       


“에이, 그런 건 걸릴 사람이나 걸리지 아무나 걸리나요?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잡아먹었는데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요. 뭐.”     


그 후, 그 사람과는 헤어진 지 오래되었기에 지금쯤 디스토마 균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더 건강한 몸이 되었는지는 전혀 모를 일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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