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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l 06. 2020

고마움을 모르는 아이들

[삶이 풍족해질수록 인성은...]

 어느 날, 사자 한 마리가 따뜻한 햇볕이 드는 풀밭에 앉아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쥐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잠자는 사자의 머리 위에 올라가서 장난을 하다가  그만 사자의 코를 건드리고 말았다.  

    

깜짝 놀란 사자가 눈을 번쩍 뜨더니 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네 이놈, 네가 감히 겁도 없이 내 코를 건드리다니?‘     


쥐는 온몸을 벌벌 떨면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고 있었다. 그러면 그 은혜는 반드시 꼭 갚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사자는 너처럼 작고 힘도 없는 주제에 무슨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고 비웃으면서 그 쥐를 그냥 놓아주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쥐가 다시 잔디밭으로 나왔다가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놀라서 달려가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전날 마음씨 좋게 용서를 해준 바로 그 사자가 사냥꾼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도 못하고 발버둥을 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사자는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묶여있어서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묶인 몸이 더욱더 단단히 졸라매고 있었다.  

    

”사자님, 아무 걱정마시고 조금만 참고 견뎌주세요.“     


쥐는 이렇게 안심을 시켜놓고는 곧 날카로운 이빨로 밧줄을 한 가닥씩 쏣아서 끊어내고 있었다. 그러자 마침내 밧줄은 모두 끊어지고 사자는 목숨을 되찾게 되었다.      


작고 힘없는 짐승이라고 우습게 보고 얕보았던 사자는 쥐에게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갚은 고마움에 대해 깊은 감사를 하게 되었다.     

 

   <이솝 이야기. '사자와 쥐'에서>         

  



    


초등학교 4,5,6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동시(童詩)에 대한 전체적인 문제점을 각자 토론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 적이 있었다.      


참석한 사람은 모두 세 명이었는데 당시 동화작가이며 춘천교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최태호 선생, 그리고 한국 아동문학가협회 회장이며 동시 작가였던 김종상 선생, 그리고 본인이었다.      


어떤 목적에 의해, 그리고 어느 기관의 지시에 따라 그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대로 분위기는 제법 엄숙했다. 각자의 탁자 위에는 마이크가 각각 하나씩 놓여 있었고 그 중앙에는 그 당시의 흔치 않았던 대형 녹음기도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자의 지명에 따라 한 사람씩 직접 교과서를 보며 자신의 생각한 바를 발표하게 되어 있었다.       


동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지난번에 브런치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다(시냇물이라는 주제로 쓴 동시의 예) 이미 남들이 잘 쓴 글을 보고 이와 비슷하게 미사여구만 잔뜩 늘어놓기만 하는 것은 잘 쓴 동시라고 볼 수 없다고, 그리고 잘된 동시란 남들은 감히 생각해 내지 못했던 즉, 자신만이 발견해낸 새로운 생각을 운율에 맞춰 솔직하게 적은 글이라는…….    

     

이번 모임에서 다 같이 지적한 것은 결국 동시라고 보기에는 어려우면서도 글 장난에 불과한 난해한 동시도 더러 엿볼 볼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이 읽고 배우기에는 별로 의미가 없는 작품들이 더러 섞여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모임이 끝나자 우리들은 그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식사를 하던 도중 에 최태호 학장은 갑자기 매우 심각하면서도 한탄스럽다는 표정으로 동시가 아닌 다른 화제를 꺼내게 되었다. 그것은 요즈음 어린이들은 옛날과 달리 가정 형편이 풍족해짐에 따라 고마움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이 슬픈 현실로 바뀌고 말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실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였다.      


옛날 배가 몹시 고찼던 시절에는 너무 가난하여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이이들이 반에서 적어도 3분의 1은 되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점심 시간이 되면 그들은 도시락을 먹고 있는 친구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가 우물가에 가서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는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아침밥도 굶고 온 아이들이 꽤 많았는데 오죽이나 배가 고팠으랴.      


그래서 어쩌다 그 눈치를 알아챈 담임 선생이 굶고 있는 아이를 한 명씩 조용히 불러 자신이 싸 온 도시락에서 조금 남겨두었다가 주게 되면 너무나 고마움에 때로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받아먹곤 하였다. 감지덕지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밥을 얻어먹은 경험이 있는 그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두고두고 잊지 않고 선생을 찾아와서 그때의 고마움을 눈물을 흘리며 회상하곤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책이나 연필, 그리고 크레파스(그때는 크레용)가 없어서 공부를 하기 힘든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어쩌다 선생이 공책이나 연필을 선물로 주게 되면 그렇게 감지덕지하며 고마워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다 담임 선생이 공책이나 연필을 주어도 별로 고마움을 모르는 아이들로 변했다고 하였다. 학교에서 상으로 또는 운동 경기에서 공책을 상품으로 준 결과 깜짝 놀랐다고 하였다. 그 공책이나 연필을 아껴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그 공책이나 연필이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기는 담임 선생이 큰마음 먹고 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담임 선생이 준 공책을 전혀 쓰지 않고 방치해 두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부모님들이 그 당시에 잘 팔리고 유행하던 모닝글로리나 고급 연필, 그릭고 메이커만 있는 학용품만 쓰고 굳이 그런 시시한 학용품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받은 공책이나 연필은 모두 시시해서 안 쓴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빵 한 조각, 그리고 밥 한 숟가락이 없어서 배를 굶주렸던 그 옛날 사람들의  따뜻하고 푸근했던 인정이 오히려 새삼 그리워지기도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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