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중 3회분]
“뭐어? 끝장이 난다구? 짜아식, 끝장 좋아하고 있네. 인마, 그런 걱정말고 신경 끊으라구 내가 몇 번을 더 말해야 알아 들을 거니. 흐흐흐…….“
현철이는 아무 걱정 말라는 듯 싱글싱글 웃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자신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그 날 마치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오듯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경수는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입맛도 싹 가시고 말았습니다.
”경수야, 너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어디 아픈 모양이구나. 왜 밥을 그렇게 조금 밖에 못 먹지?“
경수가 저녁밥을 먹는 시늉만 하고 숟가락을 놓는 걸 본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습니다.
“아니, 요즘 그냥 괜히 밥맛이 없어서 그래요.”
“왜 갑자기 입맛이 없어? 엄마가 그럼 맛있는 반찬 만들어 줄까? 말만 해. 뭐 먹고 싶지?”
“먹고 싶은 것도 없어요. 그냥 쉬고 싶어요.”
경수는 이럴 때 엄마에게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을 솔직히 털어놓고 구원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그랬다가 현철이에게 혼이 날 생각을 하니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게 눈 감추듯 도로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경수는 곧 제 방으로 들어가서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벌어졌던 일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습니다. 일기를 쓸 흥미도 싹 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대충 학교 생활이 두렵고 불안해서 도무지 견딜 수 없다는 이야기만 간단히 쓰고 말았습니다.
일기를 쓴 경수는 곧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도 제대로 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잠깐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경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그날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다 쉬는 시간에 우연히 형우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오늘따라 겁이 더럭 나고 가슴이 사정없이 두근거려서 도무지 배겨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마음 놓이는 것은 선생님의 얼굴 표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어제 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과 별로 달라진 기색이 없이 여전히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경수는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애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쉬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오전에 아이들에게서 걷은 일기장을 열심히 읽어보느라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그럭저럭 그 날 공부를 마치고 종례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다가 마침내 이번에는 경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오늘 선생님이 좀 물어볼 게 있으니까 청소가 끝난 뒤 경수는 잠깐 교실에 남아 있도록 해요.”
“……?“
선생님의 말씀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경수의 얼굴색은 금방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며 뛰는지 곧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현철이를 힐끗 바라보자 현철이도 이번만큼은 몹시 무슨 눈치를 챘는지 얼른 외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였습니다. 교실에는 오직 선생님과 경수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책상 앞에 앉은 채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못사고 옆에 서 있는 경수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경수야, 선생님은 다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봐. 너 어제 선생님한테 잘못한 거 있지?"
“…….“
경수는 더럭 겁이 난 표정이 되어 대답 대신 고개만 조금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누군지 아니? 그것은 나쁜 짓을 하고도 그것을 뉘우치지 않는 사람이란다. 그렇게 되면 두 번 나쁜 짓을 하는 결과가 되고 말거든, 너처럼 착한 사람이 혼자 그런 나쁜 짓을 했을 리는 없고, 누가 시켜서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 아니니?“
“…….“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어제의 일을 훤히 다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경수는 현철이의 무서운 얼굴이 떠오르자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이번에도 고개를 젓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선생님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경수의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그럼 여길 좀 보렴. 네가 어제 여기 이렇게 쓴 게 무슨 뜻인지 선생님한테 솔직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
경수는 숙였던 고개를 약간 쳐들고 자신의 일기장을 슬쩍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가뜩이나 학교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 게다가 난 오늘 학교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매일 이유 없이 괴롭히는 친구들 때문에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죽고 싶다. 그러나 이 일을 솔직하게 엄마나 아빠, 그리고 선생님에게 알릴 수도 없다. 그래서 지금은 차라리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다.”
“경수야, 이게 무슨 말이지? 네가 직접 쓴 일기니까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 게 아니니?”
“…….“
"네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겠다면 그럼 엄마를 오시라고 할 수밖에 없겠구나. 경수 너 그래도 좋겠니?"
“…….“
경수가 이번에도 아무 대꾸가 없자, 선생님은 곧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때였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대답이 없던 경수가 마침내 급히 놀란 얼굴로 입을 열며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제발 저희 엄마한테는 알리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전 죽어요. 흐흐흑…….“
선생님은 휴대전화를 도로 내려놓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경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경수야, 넌 선생님이 생각했던 대로 참 착한 어린이란 말이야. 어쨌든 늦게나마 이렇게 뉘우쳐 주었으니 말이야. 참 고맙다. 이번 일은 너 혼자 한 짓이 아니란 걸 선생님은 다 알고 있단다. 현철이가 시킨 게 맞지?“
"아니에요. 저 혼자 했어요. 으흐흑…….“
경수는 그건 결코 아니라며 또다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속해서 달래며 물었지만 경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현철이가 두려운 마음에 끝까지 저 혼자 저지른 일이라며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교실 출입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뜻밖에도 집으로 돌아간 줄로 알았던 현철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선생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현철이가 나타나자 선생님의 입가에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상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생니임!“
"선생니임!“
두 아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선생님의 품속을 파고들면서 크게 소리내어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경수와 현철이를 꼬옥 껴안은 채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의 눈가에서도 어느새 굵은 이슬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
(3회 중 3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