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과 실습시간]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학교 공부를 끝낸 경아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경아의 표정이 이상합니다. 입이 쑥 나온 걸 보면 심통이 잔뜩 난 얼굴입니다. 여느 때와 달리 엄마를 보고도 못본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급히 제 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꽝 소리가 날 정도로 요란스럽게 닫아 버렸습니다.
“너 학교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어느 틈에 방으로 쫓아 들어온 엄마가 경아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
경아는 여전히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책상에 푹 엎드린 채, 대답이 없습니다. 엄마는 더욱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너 혹시 친구들하고 다툰 거 아니니?”
“…….”
“그럼, 선생님한테 꾸중 들었구나?”
“…….”
엄마가 몇 번이고 보채며 물어보았지만, 경아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꼭 다문 채 대답이 없습니다.
엄마가 이번에는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꽥 소리를 지르며 물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도대체 말을 해야 할 거 아니니, 말을!”
그러자 조금 겁을 먹었는지 경아의 입에서 이번에는 더 엉뚱한 대꾸가 퉁명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엄마, 나 내일부터는 학교에 안 갈 거야.”
엄마의 눈이 그만 보름달만큼이나 커지고 말았습니다.
“뭐야? 학교에 안 가다니? 그게 갑자기 뚱딴지같이 무슨 소리야?”
“싫어! 어쨌든 학교가 싫다니까!”
경아는 마침내 이렇게 소리쳐 대꾸하고는 지금까지 참았던 분을 참지 못하고 어깨까지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이번에는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바보같이 울기는 ……. 도대체 왜 그러는지 엄마한테 말해 주면 안 되겠니?“
경아는 그제야 할 수 없이 자초지종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쟉했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말이지. 내일 갑자기 실과 실습을 한다는 거야.”
“실과 실습? 그래서?”
엄마는 매우 궁금해진 얼굴로 경아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귀담아듣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학교 수업이 모두 끝아고 종례 시간의 일이었습니다.
반 아이 중 하나가 느닷없이 선생님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반은 언제 실습해요, 네?”
한 아이의 물음에 선생님은 금방 못마땅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실습을 하자고 틈만 나면 조르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선생님은 이만저만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자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실과 실습이 자신이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 너희들 또 그놈의 실습 타령이니? 너희들이 그렇게 조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나중에 꼭 하게 될 거라고 몇 번이나 말해 줘야 알아듣겠니?“
선생님은 이번에도 난처해진 얼굴로 이렇게 달래보았지만, 워낙 아이들이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선생님은 더욱 궁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언제요? 다른 반들은 벌써 거의 다 찐빵 만들기랑 콩나물 무치기, 부침개 만들기 등, 실과 실습을 했다니까요.”
“맞아요. 우리 3반과 4반만 아직 안 했는데 며칠 뒤에는 4반도 한다던데요.”
“그러니까 우리도 내일이라도 빨리 하자구요, 네?”
아이들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여기저기서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로 제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니, 너희들 뱃속에는 거지가 들어앉은 모양이구나? 학년 초부터 열심히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웬 먹는 타령만 맨날 하고 있지?”
그러자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여기저기에서 마치 봇물이 터지듯 불평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게 아니라, 다른 반들은 모두 실습을 하는데 우리 반만 안 하니까 재미가 없어서 그런다니까요.”
“네, 맞아요. 내일 당장 해요.”
“옳소! 옳소!”
아이들이 계속 성화를 부리며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선생님은 그제야 어쩔 수 없이 굴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좋아요. 그럼 여러분들이 모두 그렇게 원하는 일이니까 내일 당장 실습을 하도록 하는 게 어때요?”
“좋아요. 선생님 짱!”
“우리 선생님 최고!”
“이제 보니까 우리 선생님 정말 멋쟁이시다!”
선생님의 승낙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너무나 신바람이 나서 제멋대로 떠들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자아, 자! 조용히들 해요! 그럼 내일 당장 실습을 하려면 우선 어떤 실습을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하지 않겠어요?”
“예, 맞아요!”
“그리고 실습을 할 때 필요한 각자가 준비할 물건은 물론이고 우선 조부터 미리 짜 놓아야 하겠죠?"
”예!“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함께 내일 할 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의논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동안 의논해본 결과 내일의 실과 실습은 교과서에서 배운 도넛 만들기로 결정하고 여섯 명씩 조를 짜나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경아네 반은 모두 26명입니다. 그래서 여섯 명씩 조를 짜나가면 4개 조를 짜고 결국 두 명이 남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나머지 두 명이 바로 하필이면 경아와 개구쟁이요, 말썽꾸러기로 소문난 재구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 싱글벙글하며 벌써부터 경아와 재구를 놀려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하하……. 내일은 둘이서 정말 재미있겠는걸.”
“그래, 어디 둘이 아주 잘 걸렸어. 어디 잘해 보라구.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잔뜩 울상이 된 경아를 향해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 제멋대로 놀려대고 있었습니다. 재구 역시 벌개진 얼굴로 아무 대꾸도 없이 바보처럼 싱글실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경아는 그 길로 심통이 잔뜩 날 얼굴이 되어 집으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옳아! 그 일 때문에 우리 경아가 이렇게 기분이 상한 거로구나!”
경아의 자세한 설명을 다 듣고 난 엄마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경아야, 그까짓 걸 가지고 학교를 안 가겠다고 이렇게 심술을 부리면 되겠니?”
"피이, 그까짓 일이라구? 엄마는 그 자식이 얼마나 나쁜 개구쟁이 자식인지 몰라서 그런단 말이야.“
경아는 버럭 성을 내면서 엄마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웃는 얼굴이 되어 한 수 더 떠서 말했습니다.
“경아야, 이제부터 엄마 말 좀 잘 들어 보렴. 엄마 생각으로는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 이런 기회에 그런 아이하고 실습을 같이 해보지 않는다면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오겠니?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보면서 경험을 쌓아야 한단다. 마음에 좀 들지 않는다고 그런 친구들을 다 외면하고 피한다면 장차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니, 엄마 말 알아들었지?”
“몰라! 남의 속도 모르고 엄마까지 정말 이러기야?”
엄마의 말에 경아는 더욱 토라진 목소리로 빽 소리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튿날 실습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어제 미리 조를 짜준 대로 모여 분주하게 도넛을 만드느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하는 아이, 프라이팬에 기름을 끓이는 아이, 물을 길어오는 아이 등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교실이 온통 떠나갈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경아는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문 채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혼자 떨어져서 도넛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달래고 달래서 모든 준비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주었던 것입니다.
경아와 한 조가 된 재구는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실실 웃으면서 경아가 도넛을 만드는 모습을 옆에 서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경아야, 혼자 만들기 어려우면 우리들과 같이 만드는 게 어떻겠니?”
“…….”
경아 혼자 도넛을 만드는 모습을 슬금슬금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던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서 이렇게 말해 보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경아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혼자 하기 힘이 들면 다른 아이들하고 같이 해보렴.”
선생님도 다가와서 이렇게 권해 보기도 했지만 경아는 여전히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쑥 나온 입으로 아무 말 없이 도넛만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재구는 여전히 바보처럼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경아가 도넛을 만드는 모습만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경아는 마침내 그런 꼴을 더이상 보기 싫고 거추장스럽다는 듯 재구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너 그렇게 말뚝처럼 서 있기만 할 거라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란 말이야!”
재구는 준비물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도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이 경아가 소리를 쳐도 넉살 좋게 싱글싱글 웃고만 있습니다.
경아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재구의 그런 꼴이 보기조차 싫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재구가 경아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는 모습을 친구들이 보고 있다가 나중에 또 뭐라고 놀리게 될지 그게 더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빨리 저리 가라니까!"
경아가 이번에는 기름이 펄펄 끓는 프라이팬에 밀가루 반죽을 휙 던지면서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으앗! 뜨거워!”
"어이쿠! 뜨거워라!”
경아와 재구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경아가 짜증을 부리며 밀가루 반죽을 힘있게 던지는 바람에 펄펄 끓는 기름 방울이 튀어 데인 것입니다.
경아는 소맷자락에 튄 뜨거운 기름 방울 때문에 손목을 꼭 잡은 채 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구는 손등을 직접 데어 호호 불며 오만상을 찡그린 채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두 아이 모두 큰 화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갑자기 두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란 선생님과 친구들이 경아와 재구의 곁으로 우르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재구가 느닷없이 갑자기 경아의 손목을 슬그머니 잡으며 물었습니다.
"어디 좀 보자, 많이 데었니?“
“몰라! 남의 참견 말고 네 걱정이나 하란 말이야, 이 바보야!”
경아가 잡혔던 팔을 뿌리치며 사나운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머쓱해진 재구가 이번에는 아직도 쓰리고 화끈거리는 자신의 손등을 들여다보며 민망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고 있었습니다.
재구의 손등에는 벌써 콩알만 한 물집이 벌겋게 서너 군데 잡혀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 중에 하나가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호호호……. 얘네들 이제 보니까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다, 그치?“
그러자 이번에는 반에서 넉살 좋기로 이름난 준수도 덩달아 끼어들었습니다.
“하하하……. 그래. 사이가 좋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보기엔 아주 다정한 부부 같은걸.”
그 말에 지금까지 소매를 잡고 고통스러워 쩔쩔매고 있던 경아가 준수를 향해 버럭 성을 내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뭐라구? 너, 말이면 다 하는 줄 알아?”
그러자 준수가 다시 조금도 겁을 내지 않고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대꾸하였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성을 내고 야단이니? 그럼 내 입 가지고 내 맘대로 말도 못하니?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인다 이 말이지. 히히히…….”
준수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넉살 좋게 대꾸하는 바람에 반 아이들은 또 다시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으하하하…….”
“호호호…….”
그러자 지금까지 민망해진 표정이 되어 서 있던 재구도 아이들을 따라 덩달아 싱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경아도 재구를 흘겨보며 마침내 웃음이 터져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바보야, 넌 창피한 것도 모르니? 우습긴 뭐가 우스워? 호호호…….”
“하하하…….”
교실에서는 한동안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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