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질경이(1)

[중편동화 3회 중 1회분]

by 겨울나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양지 바른 산기슭에도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날씨는 겨울 못지않게 춥기만 합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기슭에는 겨우내 쌓였던 눈이 채 녹지 않아 마치 얼룩덜룩 바둑이의 텰빛깔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이따금 매섭고 쌀쌀한 겨울 바람이 마지막 심술을 부리며 산골짜기를 누비곤 합니다.


그러나 겨울바람은 겁이 났는지 도망을 다니기에 바쁩니다. 따스한 봄의 햇살과 부드러운 봄바람이 번번이 겨울바람의 뒤꽁무니만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양지바른 산기슭에도 이제는 제법 따스하고 포근한 봄의 햇살이 내려 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님은 꽁꽁 얼어붙은 땅을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로 골고루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봄바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장난을 좋아하는 봄바람은 해님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아무나 건드리고 다니며 짓궂게 간지럼을 태우기에 바쁩니다.


그 바람에 이 산기슭 땅속에 묻혀 한창 신나게 겨울잠에 빠져 있던 질경이씨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 간지러워 못살겠네. 아이구, 간지러워. 정말 미치겠네.”


질경이는 마침내 잠꼬대 같은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며 눈을 번쩍 뜨고야 말았습니다. 해님과 봄바람의 등쌀 때문에 온몸이 간지러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 간지러워 죽겠네. 아니, 누가 이렇게 남의 머리통을 성질나게 살살 간질이고 이 야단들이니?”


이윽고 번쩍 눈을 뜬 질경이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질경이의 눈앞에는 사방이 온통 캄캄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허, 그 녀석 참, 성깔 한번 대단한걸!”


간지럼에 못 이겨 짜증을 부리고 있는 질경이의 목소리를 들은 해님과 봄바람의 입가에는 재미있다는 듯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재미가 있다는 듯, 더욱 장난기가 일어나서 질경이를 자꾸 간질이고 있었습니다.


“아이, 정말 짜증나서 못살겠네. 누구니? 아무 이유 없이 남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 게 도대체 누구냔 말이얏!”


질경이는 간지럼을 참기 위해 두 손으로 머리를 북북 긁으며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순간 ‘쩍’하는 소리와 함께 단단히 얼었던 땅이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유우, 눈부셔라. 난 또 누가 그러나 했더니 해님과 봄바람이셨군요.”


지금 막 갈라진 땅 사이로 머리를 쏘옥 내민 질경이는 해님을 바라보는 순간, 너무나 눈이 부시어 두 눈을 비비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면서도 땅속에서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해님과 봄바람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음인지 금방 쑥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런 산기슭에 웬 질경이가 자라고 있었지?“


질경이의 모습을 본 해님의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뜻밖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쎄 말입니다. 마을에서 가까운 들판이나 길가에 태어났어야 할 녀석이 이런 깊은 산기슭에서 자라고 있다니…….”


봄바람도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님과 봄바람은 산기슭에서 혼자 외롭게 자라고 있는 질경이의 모습이 더욱 귀엽게 느껴져서 꼬집어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귀엽다는 듯 다시 번갈아 가며 질경이의 머리통에 간지럼을 태우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도망치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언 땅을 비집고 태어난 연약하고 어린 질경이의 모습은 정말 깜찍하고 귀엽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만년필의 촉처럼 뾰족하게 뻗은 새싹은 아주 엷은 연두 색깔로 예쁘고 귀여웠습니다. 어떻게 윤이 나는지 마치 참기름이라도 바른 듯 반들반들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히야! 정말 아름답고 멋진 세상이로구나!”


한동안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지 못하던 질경이는 비로소 사방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 아름답고도 황홀해 보이는 경치에 정신이 팔려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왜 진작 나오지 못하고 왜 바보처럼 겨울잠만 자고 있었지?”


질경이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질경이는 그처럼 못 견디게 간지럽고 귀찮게만 느껴지던 봄바람의 감촉이 시원하고 감미롭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짜증스럽기만 하던 해님의 손길도 어느새 엄마의 품속처럼 더없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질경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흐뭇하고도 행복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느닷없이 상냥하고도 나지막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어머! 귀엽고 예뻐라. 얘, 넌 이름이 뭐니?”


질경이는 문득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거기에는 얼굴을 온통 노란 색깔로 화장을 짙게 한, 민들레꽃이 환한 얼굴로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어머! 곱고 예쁘기도 해라. 그렇게 묻고 있는 너는 누구니?”


민들레꽃을 발견한 질경이는 저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민들레의 얼굴이 너무나도 곱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 말이니? 난 민들레야.”


민들레는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은 밝은 표정으로 상냥하고 고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질경이는 그런 민들레에게 대뜸 마음을 빼앗긴 채 금방 반하고 말았습니다.


“내 이름은 말이지 질경이야. 그건 그렇고, 넌 언제부터 여기에서 살게 되었니? 그 노란 색깔로 화장을 한 네 얼굴이 너무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운걸!”


질경이는 몹시 부럽다는 표정으로 민들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민들레는 조금 수줍은 얼굴이 되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하, 네가 바로 말로만 들어보던 질경이로구나. 우리 서로 외로운 처지에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구나. 우리 식구들은 모두가 마을에서 가까운 들판이나 길가에서 살고 있단다. 그런데 나만 어쩌다가 홀로 떨어져 몇 해 전부터 이 산기슭에서 살게 되었단다. 그리고 내가 꽃을 피우고 얼굴에 화장을 한 것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봄에 내가 제일 먼저 꽃을 피웠을걸. 봄이 오면 그 어느 꽃보다 먼저 피는 꽃이 바로 민들레꽃이니까 말이야.”


민들레는 예쁜 생김새처럼 목소리고 아주 고왔습니다. 매우 다정하면서도 자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민들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질경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몹시 흥미가 있다는 듯, 조용히 귀기울이고 듣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약간 쑥스러운 표정이 되어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나도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 어서 말해 봐.”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게 될까?”


이렇게 묻고 난 질경이의 얼굴은 쑥스러움에 벌겋게 물이 들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분에 넘치고도 지나친 욕심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민들레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아암, 그렇고말고. 아마 너는 어쩌면 나보다도 더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 같은 걸. 너처럼 그렇게 귀엽고 싱싱하게 생긴 새싹은 나도 여태까지 처음 보았으니까 말이야.“


질경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민들레의 말은 조금도 거짓이 없어 보였습니다.


“정말 나도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란 말이지?”


"나도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내 말을 한번 믿어 보라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식물들 중에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은 아마 없을 걸.“


민들레의 자신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 질경이는 벌써부터 마음이 부풀고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세상에 진작 태어나지 못했던 일을 다시 한번 아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아, 기분 좋아라.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또 어디에 있을까!”


질경이는 껑충껑충 뛰면서 마음껏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질경이가 이토록 벅찬 즐거움과 행복에 겨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민들레가 다시 작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렇게나 기분이 좋으니?”

“그러엄, 좋고말고.”


질경이는 두 말 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서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질경이의 모습을 보자, 민들레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 되어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봄이란 참 아름다운 계절이란다. 향기로운 흙냄새, 그리고 봄은 만물이 소생하면서 저마다의 꿈이 무르익는 계절이란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렴. 봄이란 정말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계절인지를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민들레의 말에 질경이의 눈이 또 휘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럼 앞으로는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한단 말이지?”


“아암, 지금은 고작해야 달콤하고 향기로운 흙냄새와 파릇파릇한 새싹들, 그리고 따스한 해님과 부드러운 봄바람 외에 또 뭐가 볼 게 있니?“


”……?”


질경이는 그만 말문이 막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민들레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세상이 곧 오게 된다는 민들레의 말이 좀처럼 믿어지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들레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산골짜기마다에서는 쌓였던 눈이 녹아 여울을 이루고, 옥을 굴리는 듯한 꾀꼬리와 뻐꾸기의 노랫소리, 그리고 갖가지 예쁜 새들의 합창이 메아리 치고, 들판에서는 보리들이 고급 양탄자를 깐 것처럼 펼쳐지고 그 보리밭 위에서는 종달새들의 신나는 묘기와 합창 소리들이 울려 퍼지게 된단다.


어디 그뿐인 줄 아니? 낮은 산기슭과 들판마다에서는 제비꽃에 이어 할미꽃, 그리고 이름 모를 갖가지 앙증맞은 어여쁜 꽃들이 앞을 다투어 만발하게 되고 또, 진달래와 개나리꽃들도 활짝 피어 저마다의 모습을 자랑하게 된단다. 그러면 강남에 갔던 제비들도 돌아오게 되고 또, 우리 꽃들이 가장 기다리는 벌님과 나비님들도 마음껏 만나볼 수 있게 된단다. 어떠니? 생각만 해도 너무 신이 나지 않니?”


민들레의 긴 이야기는 좀처럼 끝이 날 줄 몰랐습니다.


민들레.jpg


질경이는 마치 황홀한 꿈이라도 꾸듯, 입을 벌린 채, 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민들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넋이 다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심코 한창 먼 산기슭을 바라보고 있던 질경이가 갑자기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어머, 예쁘고 탐스럽기도 해라! 저기 산기슭마다 저렇게 분홍빛깔로 뭉게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있는 게 뭐지?”


어느 틈에 활짝 피었는지 정말 산기슭마다에는 마치 산불이라도 일어난 듯, 진달래꽃들이 무더기로 소담스럽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질경이의 호들갑을 피우며 소리치는 바람에 잠시 낮잠을 즐기던 민들레가 문득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잠깐 눈을 비비며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호호호……. 난 또 무얼 가지고 그렇게 소란을 피우나 했지. 전에 내가 얘기해 주지 않았니? 저게 바로 진달래꽃이란다. 산기슭만 보지 말고 저 아래쪽도 좀 내려다보렴.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가 말이야. 이게 바로 봄의 경치란다. 어떠니? 정말 멋있지?”


민들레가 가리키는 들판 쪽을 내려다본 질경이는 그만 황홀하고 아름다운 광경, 그리고 온통 향기로운 냄새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


[3회중 1회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