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동화 3회 중 2회분]
“히야! 언제 어느 새 저렇게 예쁘고 고운 꽃들이 활짝 피어났지?”
며칠 전에 민들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정말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산과 들에는 온통 갖가지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이 오색이 영롱하게 피어, 저마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향수를 내뿜는 듯한 진한 향기를 마음껏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뻐꾹, 빽뻐꾹~~~.”
“소쩍, 소쩍~~~.”
“노골노골, 지리지리~~~.”
뻐꾸기와 소쩍새, 그리고, 종달새는 물론, 갖가지 크고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산기슭에는 온통 아름다운 경치와 향기, 그리고 예쁜 새들의 흥겨운 노랫가락들이 어울려, 봄의 정취가 한껏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어서 그 어느 꽃보다도 곱고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꽃을 활짝 피워야지!”
문득 정신을 가다듬은 질경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새삼 자신의 몸을 아래위로 열심히 훑어봅니다.
질경이의 몸은 그동안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 지금은 제법 찻숟가락 크기만 한 잎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만큼 싱싱하고 크며, 건강한 잎을 갖게 된 것이 너무 대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 나도 어서 자라서 다른 꽃들처럼 예쁜 꽃을 피워야지!”
질경이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을 만큼 그저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하루빨리 남들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워 마음껏 뽐내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질경이의 마음은 전보다 더욱 초조하고 조급해지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디서 갑자기 날아왔는지 이 산기슭에는 웬 낯선 손님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검은 바탕에 노란 색깔의 무늬가 점점이 시원스럽게 박힌 날개를 가진 손님이었습니다. 바로 호랑나비였습니다.
호랑나비는 화려한 날개를 마음껏 팔랑거리며 한동안 허공을 빙빙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들어져 보이는지 첫눈에 금방 반할 정도였습니다.
호랑나비가 맨 먼저 사뿐히 내려앉아 자리를 잡은 곳은 바로 제비꽃 위였습니다.
질경이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광경이어서 숨을 죽인 채 호랑나비의 일거일동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에이구, 저런 망측한 일이 다 있나!“
호랑나비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질경이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글쎄, 그 멋지고 의젓하게 생긴 호랑나비가 제비꽃의 뺨에 입을 대고 뽀뽀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제비꽃의 태도였습니다.
제비꽃은 조금은 부끄러운 듯, 그러나 매우 기다리기라도 했었다는 듯,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대로 얼굴을 맡기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질경이가 호기심에 가득 찬 곁눈질로 그 광경을 몰래 살펴보고 있는 동안 호랑나비는 그만 제비꽃과 떨어자면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공중을 몇 바퀴 빙빙 돌더니 이번에는 또 민들레꽃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자, 민들레의 가뜩이나 노란 얼굴이 부끄러움에 더욱 노랗게 변하면서 호랑나비에게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왕자님!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알기나 하세요? 아! 이젠 행복해요. 정말 너무너무 행복해요.”
민들레가 살며시 눈을 감으면서 이렇게 속삭이자 호랑나비는 더욱더 열심히 민들레의 얼굴에 힘찬 입맞춤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질경이는 못볼 것을 본 듯 공연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호랑나비에게 얼굴을 내맡겼던 민들레가 공연히 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다음날도, 그리고 또 그다음날도 호랑나비는 어김없이 제비꽃과 민들레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망측한 행동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또, 호랑나비뿐 아닙니다. 호랑나비에 이어 어떤 때는 벌들도 번갈아 찾아와 그 망칙한 뽀뽀를 하고 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아무리 호랑나비와 벌들이 많이 찾아와도 질경이만은 단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네!‘
질경이는 궁금함을 참다못해 결국 민들레에게 그 이유를 묻게 되었습니다.
“얘, 민들레야! 요즈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너희들한테 찾아와서 그 망측하고 못된 짓을 하는 것들은 도대체 누구니? 그리고, 너희들은 부끄럽지도 않니? 난 옆에서 그 꼴을 보기만 해도 민망해서 차마 볼 수가 없던데.”
질경이의 물음에 민들레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약간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느냐는 듯, 자세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라, 여태 내가 너한테 그 얘길 안해줬었구나. 그분들은 다름 아닌 바로 나비 왕자님과 벌님들이란다. 그분들은 특히 예쁘고 향기가 물씬 풍기는 꽃들만을 찾아다니며 뽀뽀를 해주신단다. 그러기에 꽃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라고 있는 거란다.”
질경이는 그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습니다.
“오라! 그럼 꽃들에게는 너무 귀한 손님들이란 걸 내가 아직 모르고 있구나! 그럼 그분들이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건 나에게는 아직 예쁜 꽃과 향기가 없기 때문이란 말이지?”
“그래, 맞았어. 바로 그거란 말이야. 하지만 실망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렴. 너는 그 누구보다도 더 싱싱하고 튼실한 잎을 가졌으니까 틀림없이 나보다 더 아름답고 예쁜 꽃을 피울 수 있게 될 거야.”
질경이는 민들레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들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말로나마 열심히, 그리고 친절히 설명해 주는 민들레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난 그 어느 예쁜 꽃들보다도 몇 배나 더 탐스럽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을 꼭 피워내고야 말거야.”
어금니를 꼬옥 깨문 채, 이렇게 중얼거리는 질경이의 표정은 굳은 결심의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질경이가 그렇게 벅찬 꿈에 부풀어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이 왔습니다.
그러나, 질경이는 여전히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여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질경이의 몸집은 이제 자신이 봐도 몰라볼 정도로 크고 탐스럽게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마치 안테나처럼 보기 싫게 하늘로 뻗어난 네 개의 수술과 암술뿐이었습니다.
아직도 지금까지 꽃을 피우지 못한 질경이는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고 조급한 마음에 참다 못해 다시 민들레에게 물었습니다.
“난 왜 여름이 왔는데도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걸까? 이대로 영영 아주 틀려버린 건 아닐까?”
"아니야. 틀림없이 꽃을 피우게 될거야. 그러니까 좀 답답하고 지루하겠지만 꾹 참고 더 기다려 보란 말이야.”
민들레는 여전히 자신 있는 말투로 끝까지 질경이를 따뜻이 위로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민들레는 노란 꽃잎 대신 매달려 있던 새하얀 깃털이 바람결에 하나둘씩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야!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어디로 가는 거야? 안돼! 혼자 가면 안 된단 말이야!"
질경이는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발버둥을 치며 민들레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민들레는 무정하게 아무 대꾸도 없이 마치 낙하산처럼 생긴 하얀 깃털에 몸을 실은 채, 멀리멀리 떠나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민들레와 쓸쓸히 헤어진 질경이의 마음은 몹시 허전하고 슬펐습니다. 야속했습니다. 그처럼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고 늘 용기를 북돋아 주던 민들레와 이별을 하게 된 질경이의 마음은 여간 서운하고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질경이는 머잖아 자신도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민들레의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동안 뜨거운 태양은 무쇠라도 녹일 듯 이글거리고, 날씨는 마치 떡시루를 앉혀 놓은 듯 무덥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나뭇잎들은 더욱 싱그럽게 푸르름을 자랑하고, 산새들의 합창 소리도 제철을 만난 듯 더욱 신이 나서 시끄럽게 우짖고 있었었습니다.
"아아! 모두들 저렇게 행복에 겨워서 야단들인데, 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이게 뭐란 말이야.”
질경이는 자나 깨나 오직 꽃을 피우지 못한 안타까움에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질경이의 몸이나 안색은 몰라볼 정도로 초췌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어느새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도 가고 서늘한 가을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토록 열심히 꽃을 찾아다니며 극성을 부리던 나비 왕자님이나 벌님들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되었습니다.
“후유~, 이럴 수가…?”
질경이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나날들이 모두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안타깝고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날까지 거짓말로 위로를 해준 민들레가 새삼 원망스럽고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날씨는 더욱 싸늘해지고 있었습니다.
"아! 이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버리고야 말다니!”
무서리가 내리던 어느 날 새벽, 질경이는 마침내 가슴속까지 맺힌 안타까움과 서러움에 못 이겨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며 서럽게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얘, 질경아! 너 울고 있는 모양이구나. 무슨 걱정이라도 생긴 모양이구나?"
한창 어깨를 들먹이며 서럽게 울고 있는 질경이의 귓가에 갑자기 어디선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묻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그 옛날 그처럼 다정하고 상냥했던 민들레의 음성과 거의 같았습니다. ( * )
[3회 중 2회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