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창작동화 3회 중 3회분]
질경이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문득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민들레의 모습을 찾기에 바빴습니다.
"나야, 나. 내가 물어본 거란다.”
질경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뜻밖의 놀라운 모습에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습니다.
“어머! 이상도 해라. 이렇게 쌀쌀하고 추운 날씨에 웬 꽃들이 저렇게 곱게 피었지?”
정말 이상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질경이가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개울가에는 흰색과 연보라 색깔로 소담스럽게 핀 들국화 꽃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서리를 맞은 들국화는 더욱 싱싱하고 곱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모습처럼 거룩하고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히야,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군! 찬 서리를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싱싱하고 그윽한 꽃송이를 피우고 있다니……!”
질경이가 입을 벌린 채,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자 들국화가 다시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너 왜 울고 있었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질경이는 너무 다정스럽게 묻는 들국화의 목소리를 듣자, 마치 꿈을 꾸는 듯, 정신까지 희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밀려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가슴속에서 복받쳐 올라 다시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울지만 말고 이야기 좀 해봐.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일이니?”
들국화는 계속 울기만 하는 질경이를 보자,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도 없던 질경이는 그런 들국화가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까지 억울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오라, 그래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울고 있었구나.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니? 그 마음 이해가 간다.”
질경이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난 들국화는 몹시 안됐다는 표정으로 질경이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질경아! 너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그 아픈 마음은 잘 알겠다만 이왕 그렇게 된 일이 운다고 해서 그 일이 해결되겠니?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생각을 좀 바꾸어 보렴.”
"생각을 바꾸어 보라고요? 이제 와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바꾸어 보란 말이어요?"
질경이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고 있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더욱 크게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들국화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제 그만 좀 울고 내 이야기를 더 좀 들어보렴. 네 생각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것만이 행복한 건 아니란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치스럽게 겉치레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단다. 고급 화장품으로 얼굴을 가꾸고 또 향수도 뿌리면서 말이야. 다시 말해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모든 꽃들의 생각이 다 그럴 거란다.”
“근데 그게 저하고 지금 무슨 상관이 있어요?”
질경이는 실망했다는 듯 더욱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내 말을 얼른 알아듣기는 어렵겠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은 저마다 겉으로 금방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로써 모든 행복과 보람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단다. 그러나 내 말은 꽃들의 그런 마음이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란다. 다만 내 말은 이 세상에 있는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생명이 없는 무생물들까지 모두가 저마다 행복과 보람을 찾는 방법과 길이 다르다는 것을 너에게 알려 주고 싶은 거란다.”
질경이는 들국화의 긴 이야기를 아무리 이해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럼 나처럼 꽃을 피우지 못하는 못난 질경이도 행복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요?”
"아암, 얼마든지 행복하고 보람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고말고, 바로 우리 들국화들이 그렇단다. 화려한 모든 꽃들이 이미 다 시들어 버린 이 쓸쓸한 가을에 추위를 견디며 고상한 꽃을 활짝 피우고 있지 않니?“
“그건 나도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꽃들처럼 봄이나 여름에 피지 않고 하필이면 추워지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거든요.”
질경이의 물음에 들국화는 입가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면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아마, 그게 무엇보다도 궁금했던 모양이구나. 그건 전혀 꽃을 구경할 수 없는 이 계절에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주려는 우리들의 생각 때문이란다. 생각해 보렴. 모든 꽃들이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봄과 여름에 무더기로 피어날 때 들국화들도 함께 피었다 졌다면 무슨 보람을 찾을 수 있었겠니?”
“오라! 그래서 다른 꽃들이 모두 시들어 버린 이 가을에 추위를 참아가며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말인가요? 남다른 보람을 찾기 위해서 말이어요.”
"그래, 맞았다. 바로 그거란다. 그뿐만이 아니란다. 여름철 모든 꽃들이 마음껏 저마다의 맵시와 향기를 뽐내는 한낮을 피해 어두운 밤에만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도 있지 않니?“
“그 꽃은 또 왜 그런 거예요?”
"그건 밤에 외롭게 떠 있는 달님과 별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란다. 남모르게 외로움과 고통을 참아가면서 그런 훌륭한 일을 숨어서 하고 있는 달맞이꽃들은 비록 아름답지도 못하고 향기도 적지만 그 마음씨가 얼마나 곱고 갸륵하게 느껴지지 않겠니? 그리고, 우리 들국화들보다 더욱 큰 보람을 찾고 있는 꽃으로는 한겨울의 모진 추위를 참고 견디면서 꽃을 피우고 있는 매화라는 꽃도 있단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때고 영영 꽃을 피울 수가 없는걸요.”
“반드시 꽃만 피운다고 해서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니까 그러는구나. 아마, 어쩌면 너는 그 누구보다도 더 보람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단다. 너는 비록 남들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하는 대신 여러 가지 약재와 훌륭한 나물로 쓰인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는 걸.”
질경이는 들국화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좀처럼 위안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몹시 못마땅한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하였습니다.
“그런 거짓말 마셔요. 누가 그런 거짓말에 어리석게 속을 줄 아셔요?”
“또 속다니? 너 누구한테 많이 속아 본 모양이로구나?”
“그럼요.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민들레도 그런 달콤한 말로 저를 얼마나 속였다구요.”
“민들레가 너를?”
들국화는 뜻밖이라는 듯, 갑자기 둥그렇게 된 눈으로 질경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러자, 질경이는 민들레와 지내던 지난 이야기를 자세히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오라,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렇지만 민들레도 너를 속이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닐거야. 잘 알 수는 없지만 말이야.”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민들레가 원망스럽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어요.”
질경이는 이렇게 대꾸하고는, 민들레와 행복하게 지내던 지난날의 일을 다시 떠올리려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그러자, 들국화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네 이야기는 잘 알아들었다. 그러나, 나도 또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 이야기를 좀더 들어 보렴. 너 산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예, 알아요. 먹기만 하면 없던 기운이 샘솟고 무슨 병이든지 고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산삼 말이죠?”
"음, 그래 맞았어. 그런데,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단다.”
“며칠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 이 산기슭에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단다. 그런데 나도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나가더구나.”
"무슨 말을 했는데요?"
“얼핏 들어보니까 글쎄 바로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지 않겠니. 글쎄.”
“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빨리 해보세요.”
질경이는 금세 궁금함과 기대에 어린 눈빛으로 반짝이며 재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도 정말 궁금하지? 나도 그날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 소리인데, 너는 정말 훌륭한 식물 중의 식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도 깜짝 놀랐단다. 너는 여러 가지 약재와 나물로 쓰임은 물론이지만, 특히 산에서 자란 질경이는 산삼 다음으로 약효가 좋다지 않겠니? 그리고, 산삼이나 질경이는 모두가 여러 해 묵은 것일수록 더욱 약효가 좋다는 거야.“
“정말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죠?”
지금까지 들국화의 이야기에 한동안 귀를 기울이던 질경이는 그제야 약간 얼굴빛이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급히 물었습니다.
그러자, 들국화가 다시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넌 아직도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속는 셈치고 다시 한 번 내 말을 믿고 용기를 좀 내 보렴.”
"그럼 난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될까요?”
서리를 맞아 온몸이 축 늘어졌던 질경이에게는 없던 힘이 갑자기 솟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아까보다 더욱 밝은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한겨울의 모진 추위를 이겨 내면서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는 수밖에 더 있겠니?
그리고 내년만이 아니라 더 오래오래 굳세게 살다가, 몇 년 후에 그토록 값진 약초로 쓰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렇게만 된다면, 고작 그까짓 아름답고 향기로움만을 자랑하던 수많은 꽃들보다 얼마나 보람이 있는 일이겠느냔 말이야. 그러니까, 기왕에 지금까지 참았던 김에 더 참고 견디면서 다시 내년 봄을 기다려 보렴.”
“앗싸!”
들국화의 이야기를 끝까지 자세히 들은 질경이는 지금까지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던 가슴속이 갑자기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찬바람과 추위에 오그라질대로 오그러들던 온몸에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와 힘이 용솟음 치기 시작했습니다.
질경이는 이제, 그처럼 부럽게만 여겨지던, 지난날의 아름답고 향기롭기 그지없었던 그 모든 꽃들이 조금도 부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훌륭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해낼 수 있게 될 줄이야! 그래, 난 여기서 실망하고 이대로 쓰러져서는 안돼. 난 다시 굳세게 살면서 내년, 아니 더욱 먼 훗날을 기다려야 해. 그리고 그 어느 꽃들보다도 더욱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을 해내고야 말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는 질경이의 표정에는 아까와는 달리 굳은 각오와 결심의 빛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힘이 넘쳐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그래서 질경이는 지금도 해마다 추운 겨울철이 되어도 꽁꽁 얼어붙은 땅속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어가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보람있는 일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내년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열심히 그리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
[3회 중 3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