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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n 13. 2020

지나가버린 방황의 나날들(3)

[엉터리 같은 영화 제작사들]

드디어 같이 일을 해보자는 영화 감독의 한마디에 그때의 나의 심정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뛸 듯이 기뻤다.      


다음 날 감독이 미리 말해준 대로 나름대로 부푼 기대를 가지고 약속한 장소로 출발하게 되었다. 약속한 장소는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약속된 영화사라는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한적해 보였다. 바쁜 일정에 많은 스탭진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일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직 단 한 사람이 그것도 몹시 거만스럽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많아야 나보다 두세 살쯤 위로 보였다.      


그는 나에게 자기소개부터 간단히 하였다. 이 영화사의 진행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처음부터 반말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아, 영화사라는 곳이 이런 곳이었던가! 어떻게 초면에 이렇게 쉽게 반말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처음부터 몹시 불괘할 정도로 기분이 상하고 자존심까지 상한 나는 당장 성질을 내며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의지와는 달리 그의 설명을 고분고분한 태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어떤 수모를 참아가며 그나마 어렵게 여기까지 오게 된 절호의 기회란 말인가!     


그는 감독을 통해 내 이야기를 대충 들어서 잘 알고 있다며 오늘부터 내가 할 일을 설명해 주겠다고 하였다. 감독이 그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말하는 투로 보아 이건 설명이 아니라 억압적이며 명령에 가까웠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를 잡아보고야 말겠다는 듯 석고처럼 굳은 표정으로 시종여일 무뚝뚝하고도 투박한 어조로 명령하듯 말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현재 모두 촬영 현장으로 나갔기 때문에 현재 사무실이 비어 있는 상태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 혼자만 사무실에 남게 된 것은 가끔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는 먼저 연출부 즉 조감독의 임무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 조감독은 감독을 보좌하는 직책이며 영화 전반에 걸친 촬영 스케줄 조정 관리하는 것이 주 임무라고 하였다.       


둘째, 콘티 작성을 할 줄 알아야 출연 배우의 섭외, 일정 등을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콘티 작성이란 시나리오 대본에 따라 각 장면 즉, 하나의 씬(S#,Scene)을 몇 개의  장면으로 나눌 것인가, 그리고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 등을 장면마다 자세히 세분화하는 작업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이미 나도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들이었다.      


난 거기까지 듣다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만 있기도 지루하고 분위기가 거북하다는 생각에 중간에 한 가지 묻게 되었다. 

     

“콘티는 이미 감독님과 조감독님들이 같이 짜놓았을 거 아닙니까?”     


그 말에 그는 다시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무뚝뚝한 말로 다시 말했다.       


“내가 설명하는 동안에는 아는 체하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하라니까. 알아들었어?”      


‘어쭈, 이게 나를 물로 본 모양이구나!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렇게 막 나오고 있지?’     


그야말로 인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갖춰지지 않은 막돼먹은 무식한 인간이 아니라면  그럴 수는 없었다. 


크게 잘못 걸려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일 리가 없었다. 죄인도 아닌 이상 이런 날벼락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난 그저 찔끔해서 놀라며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치 벙어리가 된 듯 그저 듣기만 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큰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그 밖에도 조감독이 할 일은 영화에 잠깐 출연하는 단역이나 엑스트라를 헌팅하러 다니는 일, 그리고 시나리오에 따라 적당한 촬영장소를 미리 찾아서 사진으로 촬영하여 감독에게 보여주며 가부를 결정하는 일 등, 일을 찾아서 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조감독이 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하였다.  

    

그는 대충 여기까지 설명한 다음 또다시 뜻밖의 선언을 내게 들려주었다. 오늘은 수고스럽겠지만 사무실 청소나 좀 해놓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연락을 할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연락을 할 때 다시 오라고 하였다.    

  

어쭈, 이게 이제는 나를 청소부로 취급하고 있나? 상식적으로 보아도 정녕 이럴 수는 없었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듯 별 수 없이 사무실을 나서긴 했지만 첫날부터 기분이 영 찝찝하고 한마디로 더럽기 짝이 없었다.     


오늘부터 바로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하게 될 줄로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 뒤로 며칠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기에 참다못해 사무실로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때 그 시건방졌던 그가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는 왜 그렇게 성급하게 구느냐며 조금만 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내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형편이란 말인가. 도대체 무슨 영화사가 그 모양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나중에야 다른 루트를 통해서 그 내막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영화사는 이미 제작비가 바닥이 나서 더이상 영화를 찍지 못하고 중단하고 있던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말로 기분이 참 더럽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 마음속으로 존경해왔던 감독이라는 사람도 몹시 야속하기도 하였지만, 그를 존경했던 마음마저 금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 영화사의 이름과 감독명, 그리고 촬영을 하다가 펑크가 난 영화의 제목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나마 내 나름대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 뒤로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감독을 다시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우연히 너무도 쉽게 또 다른 기회를 얻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감독은 처음으로 입봉하게 된 감독이었다. 다시 말해서 난생 처음으로 대단한 야심을 가지고 메가폰을 잡게 된 처녀작이었다. 시나리오 제목은 ' 무×지×'였다.  


영화사는 충무로 3가에 있는 어느 2층이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사무실이었다. 그 당시에는 충무로 3가를 한국의 헐리우드라고 불리울 만큼 유명 영화인들과 가수들이 모여 들끓던 곳이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정말 일을 하는가 싶게 직원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시나리오도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고, 여러 날 걸려 콘티도 완벽하게 작성해 놓은 뒤였다. 사무실 벽에는 이미 영화 제목과 함께 큼지막한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고, 촬영 등 갖가지 행사 일정도 이미 일목요연하게 정리 게시되어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신바람이 절로 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영화배우를 모집하는 날      


이번 영화는 남자 주연과 여자 조연 배우를 새로 뽑아서 출연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약간의 엑스트라도 뽑는다고 하였다. 난 좀 이상했다. 그 당시 잘 나가던 신성일이나, 엄앵란, 김지미 신영균, 김진규 등의 유명 배우를 쓰지 않고 번거롭게 새로 배우를 뽑는다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 이유를 감독에게 슬그머니 물어보니 지금까지 늘 출연하던 인기 스타들보다는 새로운 신인을 주연으로 넣어서 좀더 새롭고 참신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감독의 야심이라고 하였다.      


어쨌거나 영화배우를 모집하는 날,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나 많은 응시자들이 모여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충무로 거리와 골목이 온통 구름처럼 모여든 응시자들로 가득해서 다른 행인들은 걸어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영화배우 지망생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시험은 시작되었다.      


시험은 수험번호 순서대로 호명하는 대로 한 사람씩 2층 사무실로 들어와서 응하도록 되어 있었다. 필기시험은 별도로 없었다. 그 대신 면접에서 몇 가지 영화 관련 상식이나 일반적인 상식 몇 가지 질문을 해보는 게 전부였다.       

 

시험은 모두 3가지 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연기력 시험이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면접이었다.   

    

첫 번째 단계     


수험번호에 따라 호명을 하면 한 사람씩 일단 2층으로 올라와서 사무실 저쪽에서부터 이쪽으로 걸어보게 하는 시험이었다. 그냥 걸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처음에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재벌 회사의 회장이 된 느낌으로 걸어보라는 지시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노숙자나 걸인이 라고 생각하고 걸어보라고 하는 게 다였다.

     

두 번째 단계     


첫 번째, 시험을 마친 뒤, 이번에는 두 번째 연기 시험을 할 차례이다. 사무실 칠판에는 이미 다음과 같은 간단한 한 개의 문장의 대사가 적혀 게시되어 있었다.      


“아! 그게 정말이에요?”     


이번에는 그 한 문장의 대사를 보고 세 가지 연기를 해보라고 지시하게 된다. 가장 슬펐을 경우, 가장 놀랐을 경우, 그리고 가장 기뻤을 경우의 그 대사를 입과 표정, 그리고 액션까지 써가며 실력을 다해 표현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      


 세 번째 단계는 마지막 시험으로 간단히 말해서 면접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과 달리 이 면접이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는 것을 아는 응시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지만…….


 나중에 면접의 중요성을 알고 보니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나 역시 조감독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었기에 감독과 같은 자리에 시험관이란 이름으로 모두 네 명이 앉아서 응시자들을 대하고 있게 되었다.  이른바 출세라면 출세(?)를 한 셈이었다.    

 

지금은 그런 일은 없겠지만, 과연 인기 영화배우란 모두 이렇게 엉성하고 간단하고 시시한 시험을 통과하고 탄생하게 되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엉성하고도 우습기 짝이 없는 엉터리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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