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만든 장벽]
매우 깊고 험준하게 생긴 산골짜기였습니다.
수백 년씩 묵은 갖가지 종류의 나무들이 제멋대로 무성하게 우거져 하늘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너무 고목이 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뿌리가 썩어 쓰러진 채, 여기저기 보기 싫게 나뒹굴고 있는 모습들도 즐비했습니다.
이처럼 험한 산속이었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기에는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속에서는 언제나 갖가지 김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으르렁~ 으르렁~.”
“캥, 캐엥~ 캥, 캐엥~."
“까욱, 꺄우욱~.”
무섭고 사납기로 소문이 난 사자와 호랑이는 물론이고 산돼지, 여우, 너구리, 곰, 산토끼 등,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짐승들이 그 속에 우글거리며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산속에 사는 짐승들은 정말 그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이 오랜 세월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산골짜기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산짐승들에게는 몹시 불안하면서도 겁나는 소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짐승들은 틈만 나면 그 소문 때문에 겁먹은 표정으로 수군거리곤 하였습니다.
어느날, 산토끼가 가뜩이나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습니다.
“이 산속에 얼마 뒤에는 사람들이 와서 어머어마하게 큰 공업단지를 짓게 된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그러자, 너구리 역시 잔뜩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맞아. 나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깊은 산속에다 공장을 짓겠다는 거지?”
"글쎄 나도 그 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야.“
이번에는 토끼와 너구리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여우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습니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니? 너희들은 아직 그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니?“
여우가 잘난 체를 하며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토끼와 너구리는 솔깃해져서 여우의 눈치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큰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제법 거만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흥, 너희들 정말 소식이 깡통이로구나.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지에는 여러 가지 건물들이 꽉 들어차서 더이상 공장 같은 건물을 지을 자리가 없어서 난리들이란 걸 너희들은 모르고 있었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험하고 깊은 산속에다 무슨 재주로 공업 단지를 꾸미지?“
너구리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꿈벅거리며 답답할 정도로 느린 목소리로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바위들이 많고 험한 산에 어떻게 공장을 지을 수 있겠느냐 이 말이지?”
“응.”
“하하하, 정말 너희들은 아직까지도 우물 안 개구리들이로구나. 그러니까 뉴스를 좀 보면서 살란 말이야, 뉴스를……. 사람들은 재주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산속보다 몇 배나 더 험해도 다이너마이트 몇 개만 터뜨리면 그까짓 일은 식은 죽 먹기란 말이야. 알아들었니?”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우는 정말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거드름을 떠는 바람에 기분은 상하긴 했지만 토끼가 다시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물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라는 게 뭔데?”
“하하하……, 그러니까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하라구. 무식한 건 이래서 말이 안 통한다니까. 그건 말이지, 화약을 넣어서 만든 폭발물이란 말이야.”
“폭발물이라고? 그건 또 뭔데?”
“그래. 그거 한 개만 이 산속에 묻고 터뜨리기만 하면 이 산속은 삽시간에 쑥밭이 되고 만단 말이야.”
여우에 설명을 들은 토끼와 너구리는 금방 겁에 질린 얼구로 다시 물었습니다.
“오라, 이제야 알아들었다. 그걸 이 산속에 터뜨리기만 하면 이 산속에 있던 나무나 바위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 대신 쑥이 나온다. 이 말이지?”
너구리의 말에 여우는 그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히다는 듯 배꼽을 잡으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나 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쑥밭이 된다는 건 그런 게 아니고, 나무가 모두 쓰러지고 바위나 산이 무너져서 우리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결과가 오게게 된다 이 말이란 말이야, 이제 알아들었니? 이 멍청한 것아.”
"그럼 그땐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삽시긴에 모두 죽고 마는 거지.“
”그래? 그럼 공장은 언제쯤 짓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을까?“
"그걸 잘 모르겠으니까 지금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는 게 아니겠니.“
“그럼 공장을 짓는다는 소문은 확실한 것일까?”
"소문이 그런 걸 난들 어떻게 알 수 있겠니?“
너구리와 토기는 그만 결이 더럭 나서 일을 크게 벌린 채, 더 이상 묻지를 못했습니다.
그 뒤로 여러 날이 지났지만 이 불안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산골짜기에서 저 산골짜기로 널리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산짐승들은 불안하고 초조해져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모든 짐승들이 다 함께 모여 의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침내 회의는 갖가지 산짐승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소나무 숲이 우거진 아래 골짜기에 벌어졌습니다. 임시 의장으로는 제법 나이를 많이 먹은 호랑이가 뽑혔습니다.
호랑이는 큰 바위 위에 점잖게 올라서서 찌렁쩌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아시다시피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산속에 머잖아 큰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지금 자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이 산속에서 부족함이라고는 전혀 모른 채 더구나 사람들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곳이어서 마음 놓고 평화로운 나날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 산골짜기가 공장으로 변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우선 희생을 당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미리 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야만 하겠는 데 이에 대해 무슨 묘안이 있는 분은 서슴지 말고 모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산짐승들은 벌써부터 이런 회의가 벌어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별로 놀라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서로서로 수군거리기만 할뿐 아무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벌써부터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동안 긴 침묵이 흐른 뒤에 마침내 산돼지가 용기를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다른 곳에는 아무리 찾아본다 해도 여기만 못할뿐더러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죽으나 사나 이곳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여기서 조금 더 위쪽으로 가면 그 골짜기에는 집채보다도 더 큰 바위들이 많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당장 그 큰 바위 밑에 굉장히 큰 굴을 파놓고 그 속에 모두 들어가 서 생활을 한다면 좀 불편하기는 해도 훨씬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산돼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있던 여우가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습니다.
“그건 사람들의 재주와 힘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이너마이트 몇 개만 터뜨리면 이 산골짜기가 모두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고 말 텐데 그까짓 굴을 파서 무얼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아마 그렇게 하면 굴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그냥 모두 생매장을 당할 게 뻔한 일입니다.”
여우의 말에 산돼지기 이번에는 벌컥 성까지 내면서 덤벼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여우는 조금도 지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누가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고 했습니까? 내 말은 굴을 판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 말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굴이라도 파고 숨자는 게 아닙니까?”
여우와 산돼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임시 의장을 맡은 호랑이가 좀 불쾌해진 표정이 되어 여우와 산돼지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좀 조용히 해요. 지금 우린 여기에 싸우자고 모인 자리가 아니라 이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사람들로부터 희생하는 걸 막을 수 있는지 바로 그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 이 말입니다. 그럼 또 다른 의견이 있는 분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다른 동물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사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점잖게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이곳에 공장이 들어선다 해도 지대가 높은 곳에는 짓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까 산돼지의 말대로 우선 이 살골짜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큰 바위 밑에 큰 굴을 파 놓고 우리 모두가 그 속에 들어가 생활을 한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낮은 곳을 두고 굳이 높은 곳에 공장을 을 지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짝! 짝! 짝!“
사자의 의견이 끝나기가 무섭게 산짐승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좋겠다고 손뻑을 치며 찬성을 하있습니다.
”예, 좋습니다. 우린 지금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사자님의 말씀대로 당장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굴을 파기 시작합시다.“
”예, 좋습니다. 당장 그렇게 합시다!“
사방에서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는 소리로 산골짜기마다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힘찬 박수 소리와 우렁찬 함성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높은 곳에 굴을 파고 숨어있는다 해도 이 살골짜기에 공장이 꽉 들어서게 되면 우리들은 그다음부터는 굴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캄캄한 땅굴 속에서 첫째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살든 죽든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옳소!”
“옳소!”
산골짜기는 다시 시끄러운 함성으로 떠들썩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땅굴을 파자는 김승들의 소리와 그냥 이대로 살아가자는 의견이 서로 평평하게 맞서 좀처럼 의견이 모아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끌며 회의를 진행해 보았지만 별 다른 묘안을 찾아내지 못한 채 희의는 흐지부지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자 이 산골짜기에 살던 동물들에게는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마치 한 가족처럼 그토록 가깝고도 정답게 지내오던 산짐승들이 차츰 두 패로 갈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땅굴을 판 다음 그 속에 들어가서 숨어 살자는 의견을 가진 짐승들과 그것을 반대하던 산짐승들이 슬며시 서로 갈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가 결국 산짐승들은 커다란 바위로 뒤덮인 산꼭대기와 산골짜기 아래 소나무 숲이 우거진 비교적 낮은 곳에 둘로 갈라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마치 서로 큰 원수나 된 것처럼 하루아침에 대화를 끊고 과거에 정답게 지내던 우정을 잊은 듯 서로가 적을 대하듯 냉담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뜻밖의 큰 불행이며 비극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산골짜기에 누가 먼저 어디서 소문을 듣고 퍼뜨리기 시작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큰 공장이 들어서게 된다는 소문으로 인해 짐승들에게는 그야말로 둘로 나뉘어지는 큰 불행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다정했던 사이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원수나 적이 된 듯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도 괴로운 비극이었지
만,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모두의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커다란 공장 대단지가 들어서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소문만 무성하게 돌아다니고 있을 뿐 좀처럼 공장이 들어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불안함과 초조한 나날을 견디다 못한 산짐승들은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불만들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원 불안하고 초조해서 세상 살아갈 수가 있나.”
"난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문도 무섭기는 하지만, 이제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바위산 골짜기에 땅굴을 파 놓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짐승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걸. 이렇게 원수처럼 대화를 잃은 채, 서로 왕래도 못하고 있으니 그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 아니겠어?“
"아암, 그것도 그렇지만 난 그 무엇보다도 그때 헤어진 가족들이 그리워서 더 이상 못 견디겠어.“
“맞아,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겠어.”
산짐승들의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는 한도 없고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아, 어서 하루 빨리 그 옛날처럼 다시 한데 모여 다정하게 웃으면서 하루라도 재미있게 지내다가 죽는다면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네.“
"누가 아니래, 공장이 들어서게 된다는 소문은 도대체 누가 퍼뜨렸는지, 원.“
산짐승들은 한결같이 그 옛날의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쌓아올린 성, 그것은 아무 쓸모도 없고 부질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높고 육중하게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장벽은 좀처럼 무너질 줄을 모르고 오늘도 우뚝 선 채, 무서운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