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Lincoln, Abraham)(35)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1809~1865]

by 겨울나무

링컨은 켄터키주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켄터기주의 미개척지인 황야의 통나무 집에서 자라났다. 링컨이 7살 되던 해에 인디애나주로 이사했으나 그곳에 가서도 가난한 개척자의 힘겨운 생활은 계속되었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링컨의 부모는 자식들의 교육에 이해가 깊었다. 그러므로 링컨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끔 가르치고 있는 ‘이른바 ’이동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그가 받은 교육은 모두 합해 1년도 채 못되었으나, 아버지와 같이 고된 개척 노동을 하면서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였다.

어떤 때는 연필이 없어 숯으로 글씨 연습을 하는가 하면, 먼 동네까지 가서 책을 빌려와 밤새워 공부하다가 그만 비가 오게 되자 지붕이 새어 책이 비에 젖어 못 쓰게 되자, 그 책값 대신 일을 해주기도 하였다. 그만큼 링컨은 남달리 노력하는 소년이었고 또한 책임감도 강했다.

링컨은 9살 되던 해에 자신을 늘 아끼고 사랑해 주던 어머니을 잃게 되었다. 유행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아버지는 곧 재혼을 하게 되었고, 링컨은 두 번째 어머니에게서도 큰 사랑과 감화를 받고 자랐다.


그는 새로운 어머니가 가지고 온 '성서'를 외우다시피 읽었으며 워싱턴의 전기와 미국의 역사 등도 읽었다. 그를 낳은 어머니나 뒤에 그를 길러준 어머니는 다 함께 링컨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쳐 준 훌륭한 어머니들이었던 것이다.

1831년에는 미시시피강 하구에 있는 뉴우오올리안즈 항구에 다녀온 그는 새로운 경험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전보다 넓어졌다. 그때부터 집을 떠나 생활한 그는 일리노이주의 어느 잡화점의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밤새워 공부하면서 장차 정치가가 되어 자기처럼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해서 청년 시절에는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했다. 35세에 일리노이주의 하원 의원으로서 정치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점원, 군인, 창고지기, 뱃사공, 변호사 등 폭넓은 경험을 쌓기도 하였다.

1832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일리노이주의 주회 의원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그 뒤, 계속 3번을 주최 의원에 당선한 그는 통틀어 8년간의 주회 의원직을 맡는 한편 독학으로 법률학 공부를 하여 변호사 자격도 획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의원 생활을 마쳤을 때는 정치가뿐만 아니라 변호사로서도 일리노이주에서 높은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이렇게 변호사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연방 의회로 진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1846년 선거에서 지금의 공화당으로 당선되어 마침내 워싱턴의 중앙 정계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게 되자 다시 변호사 생활로 되돌아가기도 하였다.


노예 해방의 아버지


어려서부터 흑인 노예들을 사고파는 것을 보며 자라 링컨은 그때마다 사람을 마치 동물처럼 학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1856년 공화당으로 들어가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을 활발히 시작하였다.

그런데 1858년 일리노이주의 상원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더글라스와 맞붙어 7번에 걸친 토론회를 하면서 치열한 선거전을 벌였으나 그만 낙선되고 말았다.


그러나 링컨의 용기는 좀처럼 꺾일 줄 몰랐다. 성실과 끈기로 2년 후에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으로 출마하여, 당당히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는 1861년 남부의 11주와 4년에 걸친 남북 전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합중국 연방이 둘로 갈라지는 것을 막고 또 노예의 해방이 필요함을 느낀 링컨은 1862년 노예 해방의 예비 선언을 선포하였다. 이어서 1865년 헌법 수정까지 거쳐 미국의 노예 제도가 자취를 감추게 되자 링컨은 '노예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링컨은 그렇게 일생을 민주주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으며 그런 그의 사상은 남북 전쟁의 격전지인 게티즈버어그의 위령식에서 역설한 연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병사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자’


1860년 링컨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자, 그 당시 노예 제도에 의해 모든 사회가 따르던 남부는 연방에서 이미 탈퇴해 버렸으며, 그 후유증으로 곧 남북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에 링컨은 연방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총동원하여 이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1853년에는 그 유명한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하고 하면서 전쟁을 하루 속히 끝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침내 4년간에 걸쳐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링컨은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1864년에 또 다시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그 이듬해 그는 연단에 서서 취임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라가 언제 어떻게 분열될지 모르는 위험한 고비에서 겨우 미국을 건지고 큰 업적을 남긴 링컨은 안타깝게도 뜻하지 않은 암살자의 흉탄에 맞아 재선된 바로 다음 해에 연단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가난, 고생, 고통, 고독 등 평생 갖가지 역경을 몸에 달고 지내던 그는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또한 국민의 지도자로서의 업적이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지금도 그의 업적을 가장 전설적인 위대한 영웅으로 받들고 있다.




링컨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보면 대부분 턱수염을 기른 모습이 많다.


그러나 1860년 대통령 선거 전까지 그는 전혀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링컨은 남달리 키가 컸으나 몸이나 얼굴이 너무 여위어서 위엄 있는 풍채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뉴욕 주에서 선거 연설을 마친 뒤 11세의 소녀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당신의 얼굴은 너무 여윈 것 같으니 만일 턱수염을 기르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해 보일 것입니다.”

유난히 어린아이를 좋아하던 링컨은 소녀의 부탁대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부터는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취임식 때는 간신히 어울리게 다 자란 턱수염의 모습으로 취임식을 치렀다고 한다.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또한 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이 된 정치가로서 온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도 손꼽히고 있다. (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