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유정(惟政)(36)

[四溟堂, 1544~1610)]

by 겨울나무

유정은 조선 시대 선조 때의 승려이며 의병장으로 경남 밀양 출신으로 성은 임 씨이며 수성의 아들이다.


1556년(명종 11년) 13세 때 경북 김천에 있는 직지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1561년 승과에 급제하여, 1573년(선조 8년) 선종 봉은사 주지로 초빙 받았으나 사양하고 묘향산에서 휴정(서산 대사)의 법을 이어받고 금강산 등지에서 도를 닦았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휴정 휘하에 들어가 활약하다가 승군도총섭이 되어 명나라 군사와 협력하여 평양을 수복했고, 의령에서는 권율을 도와 왜군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1594년 왜장 가또오의 진중을 세 차례 방문하여 화의 담판을 하는 동안 적의 동정을 탐지했다. 그리고 1597년에는 정유재란 때 울산의 도산에서 공을 세워 1602년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604년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도꾸가와를 만나 강화를 맺었으며 그 결과 포로 3천 5백 명을 데리고 오는 큰 공을 이루어냈다. 그 공으로 행용양위대호군에 올라 어마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선조가 사마안 뒤 해인사에 있다가 해인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초서를 잘 썼으며, 시호는 자통홍제존자이다. 저서로는 ‘사명당집’이 있다.




왜란이 일어난 지 7년째 되던 해인 1598년, 전쟁을 일으켰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 나라에 있는 군대를 철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로써 그동안 감당하기 괴로웠던 이땅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해야 할 전쟁의 뒤처리가 너무도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전쟁을 완전히 끝맺음할 강화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더 급하게 서둘렀다.


따라서 선조 37년 정월, 일본의 정세도 정탐할 겸 사신을 보내기로 하고, 대신들의 천거에 의해 사명 대사를 사신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사명 대사는 수행원 120명을 거느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때 일본에서는 전쟁을 좋아하는 도요토미가 죽고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고 있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온다는 소문을 들은 일본인들은 모두 그 유명한 사명대사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떼를 지어 길가에 모여들었다.

더구나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설보화상이 오신다며 그들이 사명대사를 맞는 열정이 대단하였다. 그들 모두가 불교 신자여서 남녀노소가 길가에 들어서서 합장하며 대사가 탄 말이 다 지나갈 때까지 허리를 굽히는 예를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온 동포들이 가끔 ‘대사님, 우리 좀 살려 주옵소서’하고 외치기도 하였다.

도꾸가와는 사명 대사가 온다고 하니 도력이 얼마나 능한가를 시험해 보고 있었다. 시험에 합격하면 자기들도 감복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사명 사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조선의 거만스런 태도를 꺾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꾸가와는 자신의 생각을 곧 천황에게 알리게 되었다.


“네 마음대로 해보록 하라.”


천황은 싱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백관 귀족들도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시끌벅적하게 되었다.

사절단 일행은 말을 타고 악대들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도쿄를 향해 행진해 갔다. 도쿄 못미처 30리에서부터는 군데군데 비단 장막이 쳐져 있었고, 그 앞에는 금은 병풍이 둘러 있었다. 병풍에는 왜인이 지은 시도 씌어 있었다. 대사는 말을 타고 가면서 그 시를 모두 외었다.


그 날은 동산의 큰 절에 사관을 정하였는데 높은 중들로 대사를 대접하게 하였다.

이튿날 그들은 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들의 시를 평해 달라고 하였다. 대사는 길가 본 병풍에서 보았던 시를 한 수 두 수 외어 가며, 그 형식과 내용의 장단점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일본 중들은 하나같이 눈을 크게 떴다.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길가의 병풍에 쓰인 시를 모두 외었다는 것은 귀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두 수고 아니고 수백 수나 되는 시를 모두 외웠던 것이다.


“그래? 어디 이번에는 정말 톡톡히 시험을 해 봐야 되겠구나!”

도꾸가와 역시 몹시 놀라며 이번에는 다른 꾀를 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사에게 심부름꾼이 와서 목욕을 하라고 아뢰었다. 대사는 곧 시종들을 따라 목욕탕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 그런데 목욕탕 물 속에는 수십 마리의 독사와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들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사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곧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물속을 향해 침착하게 휙 던졌다. 순간 '짤그락' 하는 소리를 내며 염주는 뱀이 우글거리고 있는 밑에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그것을 본 대사는 곧 옷을 벗더니 물속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욕탕 안의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었고, 그 밑에 뱀을 풀어놓아 밖에서 보면 마치 물속에 뱀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도꾸가와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과연 신승이다. 그것을 어찌 알아내게 되었단 말이냐?”

그 뒤 어느 날, 이번에는 대사를 어느 별실로 모시게 되었다.


조그만 방이었지만 매우 정결하였다. 그런데 얼마 뒤부터는 방이 불처럼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그 방은 벽과 방바닥을 온통 철판으로 만든 방이었다. 그리고 방바닥 밑에 미리 숯을 몇 섬 쌓아 놓고 불을 피우니 방이 달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방문이 모두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서 밖으로 뛰어나갈 수도 없었다. 죽일 계획이었다.

사명 대사는 곧 품에 품고 있던 포척차(과일명) 세 개 중 한 개는 방바닥 자리 밑에 넣고 나머지 두 개는 양쪽 손에 하나씩 나누어 쥐었다. 그리고는 영사(수은을 고아서 만든 약재)로 서리 상(霜)자와 눈 설(雪)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인 다음 정신을 통일하고 자리에 앉아 두 눈을 감더니 비밀 진언을 외우며 꼼짝도 하지 않고 게속 그대로 앉아 진언만 외우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왜인들이 이젠 꼼짝없이 불에 타서 새까맣게 타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대사의 긴 수염에는 고드름이 주정주렁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왜인들은 깜짝 놀라 모두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대사는 왜관을 보자 대뜸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희들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따뜻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간밤엔 어찌 그리도 추우냐? 그리고 사람 대접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이런 시험이 끝난 뒤, 왜인은 군신 상하 모두가 대사를 황궁으로 인도하였다. 사명 대사는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곧 궁성으로 갔다.


성문으로 들어가는 좌우에는 무쇠로 육중하게 만든 말이 양쪽으로 다섯 필씩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무쇠 말들은 이미 숯불로 벌겋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 말과 말 사이는 몸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그 틈을 잘못 지나가다가는 온몸이 삽시간이 다 타버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것을 미리 눈치 챈 대사는 당장 놈들의 흉계를 크게 꾸짖으며 물리치고 싶었으나 그들이 시험하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놈들을 감복시킬 방법을 그때마다 궁리하게 되었다.


이에 대사는 북쪽을 향해 네 번 절을 하고 비밀 진언을 외었다. 그러자 돌연 북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둥실 떠오더니 곧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져내리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불에 시뻘겋게 달구어져 있던 쇠로 된 말들은 곧 식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왜장과 귀족 백관들은 그만 코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을 하며사명 대사를 높이 우러러 받들게 되었다.

“신통이 이러하시니 대사는 참으로 산 부처님이십니다!”


그들은 곧 사명 대사를 금으로 꾸민 가마에 태워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왜나라의 군신 상하들은 대사를 ‘생불’이라 부르며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우러러보게 되었다.

이번에 대사가 일본에 간 목적은 강화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실정을 탐지하고 그들에게 잡혀간 포로들을 데리고 오는 일에 더 크 목적이 있었다.


그럭저럭 새해가 되자 대사는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왜나라의 실정을 자세히 탐지하는 일에 열을 올렸다. 그러자 가는 곳마다. 포로들이 길을 막으며 어서 구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걸하였다. 그러나 대사는 전쟁할 필요성은 별로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애타게 강화를 요구할 것도 없고, 어디까지나 놈들의 적절한 반성과 회개만 촉구하면 될 성싶어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왜인들은 속이 달아 하루 빨리 강화 조약을 맺자고 성화를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도꾸가와가 장군 몇 사람과 고승 몇 명을 통해 선물과 갖은 성의를 다해 굉장한 행렬과 준비로 대사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의 원한을 풀고 서로 사이좋게 지낼 것을 서로 굳게 약속하자고 대사에게 매달렸다.


이에 대사는 내 개인적인 원수라면 백번 풀고도 남음이 있겠으나 우리 국가 민족의 천추의 원한이니 그것을 어떻게 내 한 사람이 풀거나 맺을 수가 있겠느냐고 대답하였다.


부모와 형제를 죽인 원수를 어찌 말 한 마디로 풀 수 있겠느냐고 하니, 그들은 일본이 조선을 침범한 것은 토요토미의 잘못이었고,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지 않느냐고 하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때 우리나라를 치고 백성을 죽인 원수가 지금도 너희 나라에 멀쩡하게 살아있지 않는가? 그렇게 강화 조약을 맺고 싶다면 내 말대로 하라.


첫째, 조선 침입 주모자의 머리를 지금 당장 모조리 베고, 토요토미의 묘를 파서 그 머리를 베어 조선에 보낼 것.

둘째, 왜병의 칼날에 무참히 희생된 우리 백성의 생명과 파멸된 재산을 배상할 것.

세째, 우리 나라에서 포로가 되어 온 사람을 하나도 남김 없이 찾아 돌려보낼 것.

네째, 우리 나라에서 가져 온 보물들을 모조리 돌려보낼 것.

다섯째, 다시는 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천황의 친필로 써서 내놓을 것 등이었다.

사명 대사의 말에 도꾸가와는 목을 움츠리고 말았다.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일 것인가. 도꾸가와는 그 모든 일을 당장 처리하기엔 어려운 일이니 우서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과 보물만은 찾을 수 있는 데까지 찾아서 돌려보내겠다고 하였다.

대사는 곧 며칠동안에 걸쳐 포로 3765명을 찾아냈다. 그리고 대사가 대사가 귀국하려 하자 장군, 귀족, 선승들이 정성이 넘치는 잔치를 베풀어주고 많은 예물도 주었다. 대사는 그 예물을 받지 않고 그 대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불화를 한폭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불화를 내주지 않았다. 대사는 부처님 사리 수십 개 등 찾을 수 있는 것들만 찾아가지고 돌아왔다.


그 뒤 3백여 년 동안 일본은 두 번 다시 조선을 침범하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공을 세우고 돌아온 대사에게는 여러 가지 벼슬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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