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여 제법 많은 재산을 모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아, 나도 이제 이만하면 갑부라는 소리는 듣지 못해도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성공은 했다, 이 말이야 핫하하…….”
어느 날, 젊은이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매우 만족한 얼굴로 통쾌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사실 젊은이는 남달리 머리도 비상하고 운도 따랐겠지만, 그가 그렇게 크게 성공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남달리 쉬지 않고 땀 흘려 일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 치고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아암, 그동안 워낙 일을 열심히 하기도 하였지만, 돈 버는 재주도 아주 비상하다니까.“
사람들은 젊은이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만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모야 칭찬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착실하게 오직 돈을 모으는 일에만 정신을 팔고 있던 젊은이의 마음이 슬그머니 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 전부터의 일이었습니다. 항상 일에 파묻힌 채 살아가는 재미라고는 전혀 모르고 지내온 지내온 자신을 돌이켜 보니 갑자기 지겨웠다는 생각과 함께 바보스럽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제길혈, 이렇게 죽도록 일만 한다고 누가 알아 주기나 하나? 내 몸만 고달플 뿐이지. 나도 이제부터는 남들처럼 즐겁고 신나는 세월을 누려보고 싶다 이 말씀이야.”
젊은이는 그 날부터 다른 사람처럼 마음이 싹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멋이라고는 낼 줄 모르고 작업복 차림으로 지내던 그가 처음으로 들른 곳은 으리으리하게 큰 고급 양복점이었습니다.
양복점에 걸려 있는 갖가지 천을 이것저것 민지작거리며 살펴보던 젊은이는 제법 거만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아, 이 기지가 마음에 드네요. 이걸로 양복 다섯 벌만 맞춰주시오. 요즈음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로 말이오.”
처음에는 젊은이의 허름한 작업복 차림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던 양복점 주인의 두 눈이 금방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네에? 한꺼번에 다섯 벌씩이나요?”
“왜, 어렵습니까?”
“아, 아닙니다. 안되다니요. 자, 이리 와서 우선 치수부터 재실까요?”
양복점 주인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갑자기 친절한 태도로 젊은이의 몸을 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정신이 나간 사람한테 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조심스럼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 다 됐습니다. 그러나 계약금은 지금 다섯 벌 값을 한꺼번에 모두 내셔야 합니다 요, 손님.“
”그거 복잡하게 계악금이고 뭐고가 어디 있습니까. 전 신경을 쓰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지금 미리 한꺼번에 다 드리겠습니다.“
젊은이는 돈을 껄끔찔끔 내는 것이 귀찮다는 듯 양복 다섯 벌 값을 모두 지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양복점 주인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도부지 이상하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허어, 양복점 생활 20여 년 만에 나 원, 별 희한한 손님을 다 보겠군!“
"네에? 지금 뭐라고 하셨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틀림없이 약속한 날짜까지 정성을 다해 멋지게 지어 드리겠습니다.”
양복점 주인은 일을 끝내고 문을 나서는 젊은이에게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가며 공손히 배웅을 했습니다. 양복점 주인의 깍듯한 배웅을 받자 젊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흥, 돈만 있으면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 세상인데 이렇게 즐길 줄을 모르고 여태 괜한 고생만 하면서 살아왔단 말이야!”
젊은이는 이제 늘 작업복 차림으로 일에만 파묻혀 살던 과거의 젊은이가 아니었습니다. 전혀 몰라볼 만큼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매일 밖으로 나와 쏘다니며 거만스럽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최신형으로 유행하는 말끔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 그리고 참기름을 바른 듯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에 금테안경까지 맞추어 쓴 젊은이의 모습은 이제 누가 보아도 과거의 젊은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는지 젊은이는 어느 틈에 고급 외제 차까지 기사까지 부리며 몰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젊은이를 보자 주위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착실하던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이젠 마음이 싹 변했네, 그려.”
“누가 아니래. 저렇게 돈 무서운 줄 모르고 흥청망청 쓰다가는 얼마 못 가서 거지 신세가 되기 십상이지.”
"아니야. 그건 아닐 걸. 모르긴 해도 저 젊은이는 평생 놀고먹어도 될 만큼 많은 돈을 모았을 거야.“
젊은이는 이제 남들이 흉을 보든 말든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래든 여전히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즐기는 일에만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생을 하며 그날그날을 가난 속에 허덕이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딱하고 한심하게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뭐라든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면서 매우 만족하고 흐뭇한 나날만을 보내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날이 가면 갈수록 일을 외면하고 사치하는 일과 허영심만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젊은이가 마음껏 즐기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놀고 지낸 지도 어느덧 2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평생을 두고 써도 넉넉할 것만 같았던 젊은이의 재산은 이제 거의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허, 그렇게 오랫동안 모아둔 재산이 이렇게 쉽게 바닥이 나다니!“
젊은이는 문득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늦긴 했지만 다시 조그만 사업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돈을 가지고는 그 어떤 일도 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허어, 이거 걱정이로군. 무슨 일을 해서라도 다시 돈을 벌어야 할 텐데 그럴만한 자금은 없고…….“
어쩔 수 없이 젊은이는 돈을 좀 빌리기 위해 좀 알고 지내던 친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뿐, 며칠을 헤매고 다녀보았지만, 돈을 선뜻 빌려주는 친구라고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볼까 했지만 그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젊은이는 멀이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한테 돈을 빌리러 갔다가 되돌아 오는 길이었습니다. 젊은이는 이번에도 돈 한 푼 빌리지 못해 몹시 맥이 빠지고 기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운이 떨어진 채 차를 몰고 있던 젊은이는 문득 길가에 짐짝처럼 보이는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 소리쳤습니다. 길가에는 거지나 다름없는 몹시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앗! 웬 할머니가 어떻게 이런 곳에……?”
젊은이는 곧 차를 세우고 급히 할머니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고 있는 할머니의 맥을 짚어 보았습니다.
"음, 다행히도 아직 숨은 떨어지지 않으셨군, 하마터면 이런 외딴곳에서 얼어 돌아가실 뻔 했구먼.“
일단 안심을 하게 된 젊은이는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그 길로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할머니는 다행히도 한 시간쯤 지난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눈을 뜨게 되자 젊은이에 반가운 마음에 먼저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제야 좀 정신이 드세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셨어요. 댁이 어디신데 어쩌다가 그런 외딴곳에 혼자 쓰러져 계셨어요?”
“……!”
그러나 할머니는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만 약간 저었습니다.
“집이 없으시다고요?”
젊은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이번에도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젊은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가족들은요?”
젊은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여전히 힘없이 고개만 젓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갑자기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모처럼 좋은 일을 해 보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하필이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 할머니를 만나 덤터기를 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다가오며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보호자가 되십니까?”
젊은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요. 저는 이 할머니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 추운 날씨에 길에서 쓰러져 있기에 급해 모셔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치료비는 제가 지불할 테니 우선 치료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젊은이는 조금 거만스러운 목소리로 어깨에 힘까지 주면서 대답했습니다. 어디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젊은이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기왕 내친김에 그나마 몇 푼 남지 않은 돈으로 좋은 일이라도 한번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요즈음처럼 인정이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참 어렵고도 대다난 일을 하시는군요. 간호사! 얼른 입원 수속해 드리도록 하고 잘 모시도록 해요,”
의사 선생님은 곧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입원 수속을 밟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젊은이가 입원 수속을 밟기 위해 막 간호사를 따라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손을 들어 흔들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저어어, 자, 잠깐만…….”
그 바람에 젊은이와 의사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할머니의 이이기에 귀, 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고, 고마워요. 신사 양반, 내 입원비 걱정은 말고 수고스럽지만 이, 이걸로 좀 내줘요.”
할머니는 한동안 자신의 허리춤을 뒤적거리더니 마침내 찾았다는 듯 무엇인가를 꺼내보였습니다. 그것은 할머니가 지금까지 목숨처럼 지니고 다니던 소중한 저금통장이었습니다.
"자, 어서 이걸로 입원비를 치르도록 해줘요.“
그렇게 말하면서 통장을 내밀고 있는 할머니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아,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할머니에게서 무심코 저금통장을 받아 든 젊은이는 그만 입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저금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이 상상조차 못할 정도의 너무나 큰 금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새로 큰 사업을 몇 번 벌이고도 남을만한 너무나 큰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젊은이는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은 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이, 이렇게 많은 돈이 모두 할머니 돈이란 말씀입니까?“
그러자 할머니는 가느다란 한숨을 한번 내쉬고 나서 기운없는 목소리도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네, 그래요. 그 돈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모진 고생을 다해가며 모은 돈이랍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한 일이지요?”
젊은이와 의사 선생님의 눈이 더욱 커다랗게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의사 선생님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할머니를 향해 물었습니다.
“아니, 그럼 이렇게 수백억 원의 돈을 가지고 계셨으면서도 굶주리고 다니시다가 길바닥에 쓰러지셨다는 겁니까?”
그러자 할머니의 눈에서는 너무 어리석게 고생만 하면서 살아왔다는 듯 어느 틈에 눈물이 고인 채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글쎄요. 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 되고 만 셈이지요. 그러나 지금도 후회는 하지 않아요. 오직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돼 보겠다는 어렸을 적부터의 꿈을 이 이루게 되었으니까요.“
”……!“
”……!“
젊은이와 의사 선생님은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할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참, 아까 나는 이 돈을 가지고 불쌍한 노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까 하고 교외에 있는 양로원을 찾아가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그만 그곳에 가기도 전에 이런 부끄러운 꼴을 당하고 말았지 뭡니까. 나는 이제 더 살기는 틀린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두 분한테 좀 어려운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만일 앞으로 제가 죽게 되면 그 통장에 있는 돈으로 병원비와 장례비를 치루어 주세요. 그리고 그 나머지 중에서 이 젊은이에게 어느 정도 사례금으로 드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양로원에 전해 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어느 양로원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양로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분들을 돕는 게 평생 저의 꿈이었으니까요. 참, 제 도장도 여기 있어요.“
이렇게 긴 이야기를 힘겹게 마친 할머니는 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는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다가 결국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떨결에 할머니의 도장을 받아 쥔 젊은이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이마에 댄 채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아, 이렇게 엄청난 돈을 가진 할머니도 숨을 거두는 날까지 알뜰히 저축을 하면서 알뜰한 생활을 해오셨는데 거기 비하면 나의 지난 생활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건방지며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젊은이는 지난 몇 해 동안 너무나 다음 껏 즐기고 방탕했던 과거가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뒤늦게 후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자신이 죽고 싶도록 밉고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젊은이는 갑자기 할머니의 손을 덥석 움켜잡으며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젊은이의 눈에서는 어느새 어리석기 그지없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진심어린 후회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때 두 눈을 꼭 감은 채 누워 있던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스러운 미소가 감돌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 * )